화병(옮긴글)
화병 무엇이 문제인가?
"아야 하느니라" 언제까지?
' 인내의 미덕' 이 만들어낸 한국형 질병
화병은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화, 분노, 좌절, 적개심 등을 억누르며 살아왔던 우리나라의 중년 여성들이 흔히 느끼는 병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자기 위치를 찾지 못하고 화를 억누르며 살아가는 중년 남성에게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마음을 좀먹는 화병, 대체 어떤 질병인지 살펴보자.
' 참을 인(忍)' 세다가 내가 병든다.
화병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주변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다. 분노를 일으키는 일이 많은데, 그것이 처리되지 않을 때 화병이 생기게 된다. 화병은 대체로 우울증과 증상이 비슷하지만, 우울증이 우울감, 식욕저하, 불만증 등의 증상에 그치는 것과는 달리 화병은 호흡곤란, 불특정 신체부위의 통증, 소화불량 등 구체적인 신체질환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특이한 점은 '화병'이란 질병이 외국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자들은 화병의 원인 중 하나를 우리나라만의 문화적, 관습적 배경에서 찾는다. 요컨대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으며, 특히 분노, 좌절, 적개심 같은 감정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짓눌린 감정과 스트레스가 신체적, 정신적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고부관계 갈등' 이 화병 부르기 쉬워
더 심해지기 전에 병원 찾아야
아주대학교 병원 정신과 노재성 교수(주임교수 겸 임상 과장)
Q '화병은 공식 영어 포기도 'Hwa-byung'으로,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과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특수한' 요인이 무엇인가요?
A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고부관계에 갈등이 있는 경우 며느리가 약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전쟁과 같은 격변기를 겪으면서 국민 전체가 사회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도 겪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심리적으로 병이 생기면 그 원인으로 '화'의 원인이 되는 과거의 사건들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질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개 우리나라 환자들이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지 못하고 쌓아두면서 그 스트레스가 여러 신체증상으로 발현되는 것이라 생각해왔습니다.
Q 자신에게 화병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A '화병' 이라는 것이 특별히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다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참아오던 중 다치거나 감염되지 않았는데 여기저기 몸이 아프고, 가끔 심장이 격렬하게 뛰면서 소화가 잘 안 되는 한편 종종 억울한 기분이 들곤 하다면 화병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으면 원인에 따라 우울증이 될 수도 있고 부안증, 공황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Q 실제 화병이 있었던 환자가 전문적인 치료를 받은 뒤 호전된 사례를 얘기해주세요.
A 최근 만난 여성 환자 중 젊어서 시집살이를 심하게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시어머니나 시가 식구들을 너무도 무서워 해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환자였죠.
일 년쯤 전부터 늘 불안한 기분이 들고, 속이 울렁거리면서 '이렇게 살아 무엇하나' 싶은 억울한 감정이 많이 생기셨다는 겁니다. 잠도 잘 오지 않고, 식욕도 없으며,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매사에 의욕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미 돌아가셨는데도 시어머니 생각만 하면 화가 나고, 바보처럼 왜 그렇게 당하면서 세월을 보냈나, 후회가 밀려오는 겁니다. 진단해보니 우울증으로 나타났습니다. 면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한 끝에 지금은 몸과 마음이 모두 호전되어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억울하고, 답답하고, 화나는 일 뿐
속타는 '가슴앓이'
화병,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화병은 심리적인 증상과 신체적인 증상이 동반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진단과 치료도 두 가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진단은 대개 의사와의 상담으로부터 시작되며, 치료는 상담, 심리치료와 약물치료가 병행된다. 화병을 어떻게 치료하는지 예방하는 법은 무엇인지 알아보고, 한의학에서 화병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살펴본다.
불만을 얘기하는 것이 먼저
화병을 해결하려면 우선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가슴앓이 '라고도 하는 화병은 심장병이나 식도염 등 여러 신체적인 증상을 동반하므로 의사의 자세한 문진과 진찰, 그리고 위내시경 및 심장 검사를 롱해서 실제 어떤 병이 있는지를 감별해내야 한다. 실제 몸에 병이 있는데 마음의 병으로만 치부해서 중요한 병을 놓쳐서는 안된다.
첫 단계는 의사에게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분노나 억울함을 의사나 상담가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의사는 환자의 병력과 증상을 잘 듣고, 생활사나 스트레스에 대해 조사한 뒤 이런 요인들이 환자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판단하게 된다. 많은 경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환자의 증상이 호전된다.
상담에 이어 신체적인 검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기본적인 혈액검사나 심전도 검사, 흉부 X레이 사진 촬영 등의 검사를 통해 화병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삶의 변화를 스스로 이끌어내라
이제 화병의 원인인 스트레스를 해결할 차례다. 의사는 상담을 통해 환자가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성격과 대인관계는 어떤지 등을 파악해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러한 '정신치료'는 대개의 경우 장기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정신치료는 환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다시 말해 의사가 여러 조언을 하면 거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간 뒤 삶의 방식을 스스로 바꾸어보려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예컨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라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내가 좋아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맡지 않아야 한다. 또 단호함을 키워서 상대에게 받은 상처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나의 요구사항을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주위에 알려야 한다. 이때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가족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평소 속을 터놓고 얘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은 화병을 예방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처방받은 약물은 꾸준히 복용해야
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우는 정신치료만으로 증세가 상당히 호전된다. 그러나 증상이 심하면 약물치료를 기본적으로 시행하게 된다.
약물 치료는 항우울제가 주로 사용되며, 항불안제, 위역류를 줄이는 약 등이 사용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 불면 등의 증상을 조절하기 위해 신경안정제나 수면제가 처방되기도 한다. 이런 약은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재발을 막기 위해 수개월 이상 사용해야 효과가 있으므로 의사의 복약지침을 잘 따라야 치료에 도움이 된다. 약물치료는 약물에 따라 부작용이 동반될 가능성이 있으나 대개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하게 되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화병 자가 지니단법
1) 자주 가슴이 답답하거나 울화가 치민다.
2) 자주 머리가 아프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신경질이 난다.
3)잠이 잘 안 온다.
4)항상 피로하다.
5)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일이나 사람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6) 내 인생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답답하고 야속한 마음이 든다.
7) 화가 나면 참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진다.
* 위 항목에서 4개 이상 해당한다면 화병이 의심되며, 전문가와 상담이 필요하다.
샌드백을 때리고 축구공을 차라
화병을 예방하는 방법은 익히 알려져 있는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갖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운동'이 가장 권장되는데, 운동은 근력을 키우고 혈액순환을 좋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분노를 파괴적으로 쓰지 않고 건전하고 창조적으로 쓰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화가 나서 사람을 때리면 범죄가 되지만 샌드백을 때리면 운동이 될 것이다. 미운 사람 생각하면서 공을 차거나 골프채로 골프공을 때리면 실제로 기분이 상당히 후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축구, 야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의 '타격운동'은 스트레스와 화병을 가라앉히는 데 아주 좋은 것들이다.
격렬한 운동을 할 만큼 기력이 없다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 수도 있고, 명상을 배워보는 것도 좋다. 꼭 운동이 아니라도 화초를 기르거나 애완동물을 키워보는 것도 분노를 순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마찬가지로 음악을 듣거나 좋은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등 , 뭔가 삶에 활력소가 될 만한 것을 찾으면 화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이런 활동은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도 더 없이 바람직하다.
병 깊어지기 전에 보호자가 먼저
화병을 앓는 환자는 술이나 커피 등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은 피하는 것이 원칙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는데, 잘 알다시피 음주가 습관이 되면 장기적으로 병을 악화시키며,없던 병도 생기게 된다.
환자 뿐 아니라 보호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환자들은 종종 자신에게 병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런 경우 치료받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또 화병은 많은 경우에 우울증이 동반되는데, 증세가 심해지면 최악의 경우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까지 생기므로, 보호자는 환자의 병이 깊어지기 전에 치료를 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화병 전문 한의사의 조언
"불(火)은 만병의 근원
정(精), 기(氣), 신(神) 함께 다스려 꺼야"
압구정 경희한의원 김균태 원장
*출구 없는 '불'이 병을 부른다
한의학에서는 화병을 말 그대로 화(火), 즉 '불'이라고 본다. 화병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일반적인 증상이 바로 몸이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눈이 충혈되고, 심장이 뛰고, 입이 마른다. 불은 아래에서 위로 타오른다. 몸의 열기가 머리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받친다는 표현도 그렇고, 실제로 TV 드라마에서도 등장인물들이 화가 났을 때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흔히 화병은 화를 참아서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면 화를 참지 않으면 화병이 생기지 않을까? 아니다. 화가 날 떄마다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려봐도 화병은 생기게 된다. 게다가 자꾸 화를 내면 주위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나빠지고 자신에 대한 평판이 나빠질까봐 속으로 참게 된다. 화는 속성상 안에서 밖으로 터져 나오는 정서이므로 화가 억눌리면 갈곳을 잃고 갇혀서 내 안에서 타오르게 된다. 그렇게 내 몸을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 정, 기,. 신 다스리고 음식은 담백하게
화병은 신체증상과 정신증상을 모두 고려해서 이해해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인간'을 몸과 마음의 복합체라 보고 있으므로 모든 질병을 치료할 때 정, 기 , 신을 함께 다스리는 방법을 쓴다. 쉽게 말해 우리의 신체가 정, 몸이 살아 활동하는 것은 기, 감정과 의식이 신이다. 신체는 한약으로 기는 침으로 의식은 대화와 상담으로 치료한다.
화병은 근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다. 과거를 들추어보고 그중 어떤 기억이 상처가 되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먼저다. 화병이 있으면 음식도 담백하게 먹는 것이 좋다 불을 끄는 것은 물이므로 걸죽하고 맵고 짠 것보다는 맑고 담백한 음식이 화병을 가라 앉힌다. 김치를 먹더라도 백김치나 물김치를 만들어 먹으면 좋고, 육식보다는 채식이 흥분을 가라앉힌다. 마찬가지 이유로 뜨거운 것보다는 어느 정도 찬 음식이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좋은 웰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