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지만 중국 최초로 외국인 기념관을 만들어 주었다는 최치원 기념관을 꼭 보고싶어서 찾아나섰다
신라시대 대학자 최치원 선생의 기념관이며, 2007년에 중국 최초로 건립을 승인한 기념관이다.
외국인 기념관으로, 고국인 신라보다 당에서 더욱 실력을 인정받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됨
최치원 기념관은 당 성 유적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최치원 기념관 및 기념비와 동상들이 있고,
최치원 선생이 양주에 있던 5년간의 업적과 신라-당 간의 문화 교류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중국버스 거울에는 시계가 나온다
정문을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 연화각
이곳엔 양주 당성에서 나온 유물들인듯 한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비각 내에는 삼절비가 있다.
비석에는 당나라 오도자가 그린 남조 고승 寶志화상 의 화상 및 엄진경이 쓴 이백의 찬시가 새겨져 있는 비 3대 명가의 시, 서. 그림이 혼연일체를 이루어 " 삼절" 이라고 불린다. 원래의 비석은 이미 소실되었으며, 이 비석은 명나라 초본 스님이 탁본에 따라 다시 세운 것이다. 원래는 상방선지사 장랑벽에 상강되어 있었고, 청나라 양주 "죽서팔경"의 하나였으며, 현재는 양주 당성 유적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최치원선생님 기념관
기념관 내에 최치원선생님상
1층 양쪽 벽에 동판으로 그려진 그림들
2층으로 올라가면 최치원선생님의 경행지를 그림과 글로 보여주고 있다
당나라시대 양주는 교통이 편리하고 경제가 번영하며 문풍이 창성하여 개방과 포용성을 겸한 "양일익이" 의 도시였다.
또한 당나라 중요한 대외무역 항구로 중동국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아랍등 지역
과 교류가 빈번했고 신라와 각별히 친근했다
당나라시대 양주는 회남도 도청소재지이며 동남지역의 정치, 경제 및 문화의 중심지이다. 회남도는 양주 , 초주(회안), 서주(서성), 여주(합비), 수주(수현), 저주, 화주(화현), 호주(봉양)등 8주를 관활했으며 당왕조의 제일 부유한 지역이다.
당나라와때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와 장보고
최치원선생님의 입당구학
최치원 선생님이 급제후 비로자나불의 용문석굴이 있는 낙양, 변주, 담주, 요주 등
지방을 유력하여 詩作으로 생활해 나갔다.
당 乾符 3년(876) 겨울 최치원은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회남도 선주 율수현위에 임명되었다.
당 광명 원년(880) 겨울, 황소의 반란군은 낙양, 장안을 공략하여 조정을 깜짝 놀라게 했다 . 당광명 2년(881) 7월, 정치와 민심 안정을 위해 최치원은 토황소격문을 지어 반란군을 회유하였다. 이로써 최치원의 문장 솜씨가 천하에 떨치게 되었다.
최치원 기념관 2층에는 최치원님의 많은 자료가 사진과 설명등으로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한편에
조선시대 성리학자 정몽주의 흉상과 설명이 있다
신라최치원선생기념비가 있는 비각
신라최치원선생기념비
정몽주선생동상
정몽주는 일찌기 중서문하시중을 역임하면서 명나라에 6번 사행을 다녀왔고 명태조 주원장을 3번 알현하였다고 설명 있다~~
唐城엘 왔으니 성에도 한 번 올라보자고
성옆이 바로 전날 왔던 관음사다 .어제 알았으면 관음사 왔다가 들렸을것을
한국에서 떠날때부터 최치원님기념관엘 가야 된다고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건만 소통이 안됐다.
선배친구인 중국현지인에게 말했지만, 상해 어딘가에 있다고 하고 별로 관심없는것 같아 보였다
그러다간 못보고 올것 같아 내가 찾아간 메모를 자세히 보니 양주가 맞고 당성내에 있다고 했더니
젊은 중국인이 인터넷을 찾아 관음사 부근이라고 위치를 대강 알려주었다(그녀 역시 한국어를 못하니까
적당히 알아들어야 했다)
난 멀리 보이는 성이 당성 같다했는데 선배는 길가에 있는 이정표를 보고
관음사서 먼 1.4km나 되는 곳 韓나라 무슨 기념관 쪽으로 가잔다 .
비도 오는데 멀리 가기 싫어서 난 400m에 무슨 스포츠쎈터가 있는곳에 가서 물어보자고 했다 .
스포츠쎈터앞 교통순경에게 최치원 기념관을 물었지만 잘모른다.
그는 무전기까지 동원하여 여기저기 알아본후 알려준다
역시 내가 맨처음본 성이 맞았는데 비를 맞으며 헛고생만 하고 다시 왔다 ㅎㅎㅎ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은 중국인들일 너무도 친절하다는 것이다
정말 몇번을 감사할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당성 회고
당성에 오르면 양주 천년고성 유적지, 수양제 행군 유적지, 고당 아성 유적지 서남각 등 역사 유적이 풍부하며, 문화 분위기가 짙은바, 우아하고 소박한 풍모로 하여 천년고성 유적지를 탐방하고, 당나라의 운치를 체험하며, 문물을 감상할 수 있는 최상의 장소이다.
수당시기의 성, 수나라 궁전 유적지, 당성 성벽 유적지가 한눈에 안겨오며, 당난라으이 운친가 여전히 남아 있어, 당시에서 느끼는 옛날에 대한 회포가 가득하다. - 옮긴글 -
성옆에 바로 관음사 , 내뒷편에 있는 절이 관음사다
관광을 위한 버스인데 우리와는 방향이 달라서 타보지는 못했다
비를 맞으며 고생을 했지만 최치원 기념관을 찾아 보고 갈 수 있어서 숙제 한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
점심을 먹고나서 선배님 친구의 사위가 기차역이 있는 젠짱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젠장에서 친구는 상해로 우리는무석 (우시)으로 각각 가기로 했다
젠짱에서 무석으로 왔고 , 모래 상해로 갈 기차표를 예매한 것이다
내 기차표
전철역에 있는 여행사에 들어가 여행정보지를 보고 내일은 영산대불이 있는 곳을 가기로 결정
선배님은 낼모래 상해갈 기차표 예약도 하고 역주변 호텔을 알아보러 가고 우리 둘만 남아 서성이다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되어 빵집으로 들어갔다
빵 한 개가 10원이 넘는다 우리나라 돈으로 2천원 가량이다. 선배님도 오셔서 호텔을 못찾았다고 다같이 나가잔다
택시정류장은 역 지하에 있다 중국은 건물들이 너무 크다보니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어떤곳은
엘리베이터가 연결이 되지 않아서 무거운 여행가방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올라갔다 해야된다 .
그렇게 힘을 빼고 내려가 택시를 탔는데 며칠동안 중국인들의 친절함만 보다가
이분은 말이 안통하는 선배님과 둘이 신경전을 벌이다가
결국 우리의 목적지도 못가고 중간에 내렸다 .
그를 탓하기 보다 말이 안통하는 우리에게도 미쓰가 있다. ㅎㅎㅎ
암튼 기본료 10원도 않되게 탔다가 20원을 주고 내렸다 .
선배가 예전에 갔었다는 호텔에 갔지만 올해부터 그호텔 역시 외국인은 숙박이 않된다고 한다
우린 다시 여행 가방을 끌고 관광 안내소에서 알려준 금강지성호텔을 겨우 찾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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