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작품

7,900원 어치의 사랑

백합사랑 2007. 1. 8. 20:20

                      

 

나병춘님 새시집 [ 하루 ]에서 옮겨왔습니다.

 

 

                 7,900원 어치의 사랑

 

 

                                     나병춘님의 시

 

문방구에 가서

편지지 봉투 그리고 스카이블루 잉크를  산다

할아버지의 단순한 주름살도 산다

단돈 1,800원을 주고서

과일가게에 가서

사과 세 알과 오렌지 두 알 그리고

시골처녀의 수줍은 미소를 산다

단돈 3,300원을 주고서

만물상에 가서

빗자루 빨강 쓰레받기를 산다

텁석부리 총각의 튼튼한 어깨도 산다

단돈  2,800원을 주고서

그리고 집에 와서

켜켜이 쌓인 먼지와 슬픔 한 쪽

말끔히 쏟아낸다

사과와 오렌지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너를 본 듯 싱싱한 향기를 음미하며

편지지를 펼친다

이 화목한 골목길에

과일가게와 문방구와 만물상을 지으시고

골목 끝 쓸쓸하고 은밀한 곳에 푸른 뜰을 주시고

맛깔 나는 칠월과 산들바람을 허락하신

당신께 두 손을 모은다

창문을 열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하늘보랏빛 도라지 향기를 들이마신다

하늘하늘 새털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나비들을 무연히 바라본다

편지지에 따로 쓸 언어도 필요 없다

나는 너에게 저 보랏빛 향기와 하얀 나비

황홀한 춤을 동봉해 넣을 것이다

  

 

봄날

 

봄엔

몸살이 난다

봄은 몸인 까닭에

 

가만 있던 몸에

연꽃이 핀다.

내 몸은 봄나무인 까닭에

 

매운 황사로 잠 못 들던

진달래 살구 개복사꽃들아

너희들도 감기 몸살을 앓는구나

 

나의 사랑스런 가족들아

콜록 콜록 기침할 때마다

난데없는 꽃들이 화들짝 피어나는구나

 

언어

 

언어는 연어보다 작고 씩씩한 물고기

깊은 계곡에서 태어나

수평선 지나 머나먼 난바다로 갔다가

다시 맑고 시원한  고향으로 돌아오는 물고기

 

그 싱싱한 언어를 찾아

수많은 시인과 화가 음악가들이

천년 하늘 땅을 샅샅이 찾아 헤매지만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부도 낚시꾼도

그 희한한 물고기 낚으러

어제도 오늘도 바다와 호수를 찾아다녔지만

아무도 그 얼굴 모습과 색깔과 향기를 모른다

 

다만 그 언어라는 물고기 지느러미를 느껴본 자는

어린아이뿐

배고파 울 적에 제아무리 멀리 가 있는 어머니라도

그 안타까운 소리 찾아 냉큼 달려온다는 오묘한 물고기

 

그 물고기를 언젠가 잠깐 본 적이 있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밤

물고기자리 별자리로 떠서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젖은 눈썹을 본 적이 있다

 

 

언어는 새끼연어보다 물방울보다

더 은은하게 빛나는 신비로운 물고기

나의 입술에서 태어나 너의 하늘로 헤엄쳐가는

아무도 본 적 없는 풍경소리 같은 물고기

 

 

 

 나병춘시인은  전남 장성 출생으로

1994년 계간 [시와시학] 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새가 되는 연습]이 있습니다.

 

 

 출처: [우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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