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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학(揚州鶴)

백합사랑 2008. 4. 1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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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4조 원’보다 ‘한국어에 2조 원’을


                                                            남 영 신(국어문화운동 회장)

영어에 4조 원 투자하는 것보다 한국어에 2조 원 투자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더 효과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4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그 돈으로 외국에서 많은 영어 선생을 구해 올 모양이다. 이 때문에 미국 교포들이 영어 선생이 되어 국내로 금의환향할 계획에 들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문제는 이 4조 원이 우리 국가 경쟁력을 얼마나 강화해 줄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5년 동안 몇 명의 영어 능통 교포나 원어민 교사들이 강단에 설 수 있게 되고, 이들에게서 현지 영어를 접한 학생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능력을 얻게 되는 정도일 것인데, 이것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요소를 지나치게 아마추어 감각으로 판단한 결과일 것이다.

외국어 능력이 아니라 국민의 지적 능력이 국가 경쟁력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의 외국어 능력이 국가의 경쟁력이 되었던 시기는 없었다. 만일 국민의 외국어 능력이 국가 경쟁력을 길러 준다면 선진국은 자국의 언어를 타국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사용료를 내고 쓰도록 강요할 것이다. 근대 산업 사회의 발전이나 자본주의 발전의 과정을 보면 국가의 경쟁력은 국민의 지적 능력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과학 지식, 생산 기술, 사회 발전 이론 등 국민의 지적 능력이 앞선 국가가 그렇지 못한 나라를 음으로 양으로 지배해 왔다.

모든 후진국은 선진국의 앞선 문물을 배우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하여 겨우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은 대체로 일부 능력 있는 지식인들이 선진국에 유학하거나 선진국의 언어로 선진 문물을 배워 이를 자국민에게 전달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을 너무나 소홀히 다루었고 마구잡이로 진행했다. 돈만 있으면 아무나 외국에 나가서 영어 몇 마디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면 국내에 돌아와 영어로 행세하는 반지식적 행태를 용인하여 왔다. 이런 영어는 국가 경쟁력과 별 관계가 없고, 개인적 출세 수단으로만 조금 유효할 따름이다. 이런 영어에 4조 원을 쏟아 부으려는 이명박 정부는 속칭 1% 부자를 위한 정책을 벌이는 귀족 정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국가 경쟁력은 국민의 지적 능력에서 나오고, 국민의 지적 능력은 모국어로 축적된 지식의 질과 양에 비례한다. 한국어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지식과 정보의 질과 양이 영어나 일본어에 비해서 떨어진다면 한국어와 한국인의 경쟁력이 그만큼 낮을 것이고 당연히 한국의 국가 경쟁력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천재가 사회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옳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잘 살게 된 사회는 그 한 사람이 잘못되면 즉시 활력을 잃고 만다. 그래서 한 사람의 천재를 기르기보다는 온 국민이 고루 지적 능력을 갖추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데 가장 좋은 것이 한국어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지식과 정보의 질과 양을 극대화하는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외국의 선진 문물을 정확하게 한국어로 번역해 놓는 일이다. 이 일을 하는 데는 2조 원만 투자하면 충분하다.

역전문가를 육성하고, 모든 지식 정보를 한국어로 저장하라

자, 이제 선진 문물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방안을 강구해 보자. 우리 사회에는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태리, 중국 등지에서 유학을 한 지식인이 매우 많이 있다. 이들 가운데에서 유능한 사람을 번역 전문 교수로 활용하자. 각 분야의 전문가들 가운데에서 외국어(한문 포함)에 능통한 사람을 3000명 정도 선별하여 번역 전문 교수 자격을 주고 이들이 번역 작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며, 이들이 번역한 성과를 학문적 성과로 인정해 주자. 번역과 관련된 모든 사업의 계획을 세우고 추진할 수 있는 기구로서 ‘국가 번역청’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외국어에 능통하다고 해서 번역을 거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어 능력도 겸비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갖추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번역청 안에 국립국어원, 한문 번역원, 외국어 번역원 같은 기구를 함께 둘 필요가 있다. 우리 조상들이 한문으로 이룩해 놓은 자료들을 현대어로 번역해 놓으면 우리 문화 콘텐츠의 경쟁력은 지금보다 10배 이상 높아질 수 있다.

외국의 앞선 지식과 정보를 한국어로 잘 번역해 놓으면 한국인의 지적 수준은 지금보다 10배 이상 높아질 수 있다. 세계의 모든 정보와 지식을 동시적으로 번역할 수 있는 국가 번역 체계를 세우는 데는 10년간 2조 원을 투입하면 충분할 것이다. 앞으로 10년간 집중적으로 번역에 투자를 하면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전문 서적이 없다는 말이 나올 것이고, 한국어만 알면 세계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한국어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갖춘 언어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한국인의 지적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높아지는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이때 비로소 우리가 강력한 국가 경쟁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명박 정부에게 제안한다. 안 쓰면 곧 사라질 영어 교육 효과를 위해 4조 원을 들이지 말고, 10년 투자하여 200년의 영화를 누릴 수 있는 번역 사업에 2조 원을 쓰는 계획을 수립해 보시라. 국민소득 4만 달러 목표도 이 번역 사업의 바탕이 있다면 별로 어렵지 않게 이룩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남영신
· 서울대 법대 졸업
· 국어문화운동 회장
· 국어단체연합 국어상담소장
· 저서: <남영신의 한국어 용법 핸드북><4주간의 국어 여행>
          <국어 한무릎공부><문장 비평>
          <국어 천년의 실패와 성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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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학(揚州鶴)


                                                    송 재 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적벽부(赤壁賦)」의 작자로 널리 알려진 송나라 때의 문호(文豪) 소동파(蘇東坡)의 시에 「녹균헌(綠筠軒)」이란 시가 있는데 지금도 음미해볼 만하다.

     식사에 고기가 없을 수는 있어도                         可使食無肉
     사는 곳에 대나무는 없을 수 없네                        不可居無竹
     고기 없으면 사람을 야위게 하지만                      無肉令人瘦
     대나무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다오                   無竹令人俗
     사람이 야위면 살찌울 수 있으나                         人瘦尙可肥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 없는 법                           士俗不可醫
     옆 사람 이 말을 비웃으면서                               傍人笑此言
     고상한 것 같으나 어리석다 말하지만                   似高還似癡
     대나무 앞에 두고 고기 실컷 먹는다면                  若對此君仍大嚼
     세상에 어찌 양주학(揚州鶴)이란 말 있었겠는가    世間那有揚州鶴

이 시에 나오는 ‘양주학’이란 말의 유래는 이렇다. 옛날에 손님들이 서로 노닐면서 각자 자신의 소원을 말했는데, 어떤 자는 양주자사(揚州刺史)가 되기를 원하고 어떤 자는 재물이 많기를 원하고 또 어떤 자는 학(鶴)을 타고 하늘에 오르기를 원하였다.

관직과 많은 돈을 갖고, 학을 탄 신선까지? 다 누릴 순 없다

그러자 그 중 어떤 자가 말하기를 “나는 허리에 십만 관(貫)의 돈을 차고 학을 타고서 양주의 하늘을 오르고 싶다”라 했다고 한다. 양주는 자고로 살기 좋은 곳으로 이름난 도시이다. 그러니 이 말은, 양주자사라는 관직과 십만 관의 돈과, 학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 신선이 되겠다는 욕망을 모두 가지려는 것으로, 실현 불가능한 욕심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인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다 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소동파의 시에서는 고기와 대나무를 대비시키고 있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관직을 가진 돈 많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사람이 동시에 대나무와 같은 고고(孤高)한 품성을 지닐 수 없다는 말이다. 고기와 대나무를 다 가지는 것은 양주학과 같이 실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대나무를 택하겠다는 것이 소동파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속되고 사람이 한 번 속되면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새 정부의 각료들을 보노라면 소동파의 시와 ‘양주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옛날의 군자(君子)가 대나무를 심어 가까이 하는 것은 대나무의 곧은 기품을 본받고자 함이다. 사실상 대나무와 같이 맑고 곧은 품성은 군자가 갖추어야 할 최대의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덕목은 고기 먹는 일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위 시의 내용이다. 고기를 먹으려면 재산을 모아야 하는데 재산 모으기에 힘쓰다 보면 맑고 곧은 품성을 기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산의 속성이 원래 그러한 것이다.

고기 먹느라 대나무 심을 틈이 있었겠는가?

일국의 장관이면 옛날의 군자에 해당하는데, 새 정부의 장관들은 어쩌면 그리도 한결같이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 많은 것이 험이 될 수는 없지만, 일반 서민들이 위화감(違和感)을 느낄 정도의 재산이라면 문제가 없지 않다. 어느 여성 장관 후보자의 경우와 같이, 유방암 검사에서 ‘깨끗하다’는 진단을 받은 기념으로 아파트 한 채를 살만큼 많은 재산을 모았다면 어느 겨를에 맑고 곧은 품성을 닦을 틈이 있었겠는가? 아마도 이들은 대나무 심는 일보다 고기 먹는 일에 더 많은 공력을 들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서도 깨끗한 마음으로 국정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세상에 어찌 양주학이란 말이 있었겠는가”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송재소
·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 저 서 : <다산시선>
            <다산시연구>
            <신채호 소설선-꿈하늘>
            <한시미학과 역사적 진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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