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주성내에서 규방체험을 하다 규방체험을 위한 재료들이다. 바늘에 실 꿰는 그 순간부터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진주 소싸움 상설경기장을 출발한지 얼마되지 않아 진주성에 도착했다. 진주성을 둘러보기 앞서 규방체험이 있었다. 규방은 부녀자들이 기거하는 방을 말하는데, '규방에서 부녀자들이 일궈낸 바느질과 자수문화'라고 하면 적당하려나 모르겠다. 체험수준이라고는 하지만, 빠듯한 시간과 쫓아가기 바쁜 순서로 만들어놓은 핸드폰 고리는 영 폼이 나지 않는다. 바느질 한번 제대로 못해본 나에게는 특별한 체험일수도 있겠지만, 어색하기 그지 없다. 임진왜란 3대 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 그리고 이곳 진주의 진주대첩이다. 3800여명의 관군으로 일본 정예군 3만명을 격퇴시키고 일본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전투였다. 500여년이 흐른 지금 진주성은 진주시민의 평온한 휴식처이자 진주를 찾은 여행객들이 꼭 둘러보는 유적지가 되었다 ![]() ▲...촉석루 아래서 바라본 진주성 진주성 남쪽으로 남강이 흐르고, 이는 자연 해자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1592년 10월 1차 진주성싸움은 조총으로 무장한 3만여 왜군을 상대하는 힘겨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진주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았다. 진주성의 남쪽을 흐르는 남강은 자연 해자 역할을 해줌으로서 왜군이 쉽게 진주성을 공략하지 못하게끔 했고, 임진왜란 이전에 석성으로 개조하면서 파놓은 곳곳의 인공해자 역시 큰 역할을 해주었다 ![]() ▲...조선시대때 쓰였던 화포들 진주성내 전시된 조선시대의 화포들로, 맨 오른쪽이 진주대첩때 쓰였던 현자총총이다 ★...그 뿐 아니라 조총에 맞선 조선군 최대 무기였던 승자총통, 현자총통같은 대형화포와 요즘 시한폭탄과 같은 비격진천뢰가 있었고, 각지에서 몰려온 의병들의 호응과 왜군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게릴라식 군사작전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가장 큰 승리의 이유는 바로 민관군이 합심하여 목숨을 버려가며 지켜낸 용기가 아닐까 한다. 불행히도 1차 진주성싸움에서 김시민 장군은 부상을 입고 2달 뒤 안타깝게 순절하고 만다. 이듬해인 1593년 명나라의 참전과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활동으로 임진왜란은 장기전이 된다. 목사의 목을 베어오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특명(그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김시민 장군의 죽음을 모르고 있었던 듯하다)과 함께 교두보 확보, 곡창지대인 호남지역으로의 침략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진주성을 공략하게 된다. 무려 10만의 대군이었다. 결국 진주성은 함락되고, 성 안에 있는 7만여 민관군이 전멸을 당하게 된다. 한명도 살려두지 말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 때문이었다. 성안에 있던 가축들도 모두 도살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그날 진주성에는 슬픔으로 우짖는 빗줄기가 하염없이 퍼부었으리라... ![]()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뛰어든 의암 논개의 슬픈 순절을 가득 안은 의암과 유등축제장의 풍경입니다 ★...이곳 진주성의 큰 슬픔은 아마도 충절의 상징인 논개의 그늘에 가린 듯하다. 2차 진주성싸움 후 지아비를 잃은 논개는 기생으로 위장해 촉석루에서 펼쳐진 승리연에 참석하게 되고, 의암으로 왜장을 유인해 껴안고 투신함으로써 순국하게 된다.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촉석루 옆에는 논개사당인 의기사가 마련되어 있고, 의암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의기논개지문'의 현판을 가진 의암사적비가 자리잡고 있다. ![]() ▲...진주성에서 바라본 유등축제장 진주성 내부에서 유등축제장이 바라다 보인다 ★...진주성은 모든게 평화롭다. 외국 유명한 공원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무릎 베고 누운 연인들,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계시는 어르신들 모습속에는 500여년 전 죽음을 불사한 용기와 맞바꾼 평화가 느껴진다. 유등축제 기간인지라 입장은 무료였고, 그래서였는지 어느때보다 북적이는 진주성이었다. 역시 생각대로 빠듯한 일정이다. 그냥 여유롭게 진주성 한 번 돌아보고, 박물관에 들러 보고 싶었는데, 결국 진주성은 절반의 답사가 되버려서 조금은 아쉽다. ![]() ▲...진주 남강유등축제장의 전경 사람이 많은게 두려워 부교를 건너지 못했다. 아쉬움이 많다 ★...이번 진주여행에서 최고 하이라이트는 바로 유등축제가 아닌가 한다. 유등축제의 유래는 역시 임진왜란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3800여 관군과 지원을 위해 출전한 의병들간의 상호 교신용으로 쓰였을 뿐 아니라 왜군이 진주성을 둘러싸고 있을 때 성안에 있는 병사와 백성들이 진주성 바깥이나 멀리 떨어진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띄운데서 유래한다. 남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을테니 왜군이 도하하려하면 등을 밝혀 의병들에게 알려 배후를 치게했을 것이고, 남강은 흐르는 물이었을테니 유등을 띄우면 흘러흘러 내려가 정겹고,풋풋한 소식을 전했을게다. ![]() ▲...유등축제장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유등 상상의 동물부터,만화캐릭터에 이르기까지 형형색색 수놓은 화려한 유등이 가득하다 ★...어둠이 서서히 내리자 촉석루 아래로 너그러이 흐르는 남강 위로는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원색 화려한 유등에 불이 밝혀지고, 그 불빛은 남강의 흐름을 타고 또다른 빛을 발한다. 촉석루도 이에 질세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웅장한 몸매를 자랑한다. 눈이 즐겁다. 어느 하나 소홀하게 볼 수 없을 정도로 감각적이고 개성적인 유등이 많다. 부교라도 한번씩 건너다니며 돌아봤으면 싶었지만, 막 어둠이 내린 진주성과 남강 주변에는 사람들의 발길에 발 디딜틈이 없을 정도였다. ![]() ▲...진주 남강유등축제장의 쓰레기통 하나의 소홀함이 없어보인다. 쓰레기통 마저도 유등으로 만들어 개성만점이다 ★...동화속의 주인공도 있고, 재밌는 만화 캐릭터들도 있다. 재치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유등으로 만든 쓰레기 통이다. 이렇게 이쁜 쓰레기통은 생전 처음이다. 공작, 봉황, 용, 복돼지들에도 나름대로의 색이 입혀지고, 어렸을 적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태권브이도 멋진 자태로 서 있다. 변기 뚫는 도구를 머리에 쓰고 있는 마시마로 유등은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 ▲...촉석루 건너편에 마련된 유등 터널 전문가의 손길이 아닌 일반 참가자들의 독특하고 개성넘치는 유등으로 만든 터널이다 ★...역시나 시간이 촉박하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천변을 둘러보고, 다리를 건너면서 촉석루 아래로 펼쳐진 유등축제의 전경도 감상했다. 줄서서 입장하는 부교를 건너지는 않았다. 문득 소시적 수학여행가서 무령왕릉이나 석굴암 보듯 할 것 같아서 말이다. 반대쪽으로 넘어오니 개인창작품으로 만들어진 유등으로 터널을 만들어놓은 곳도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하고 소박한 모양새가 이내 정겹다. 저 유등을 만들면서 어떤 소원을 담았을까? 혹시 애틋한 한조각의 편지가 들어있진 않을까 싶다. ![]() ▲...진주 남강유등축제장의 전경 잔잔한 남강위로 화려한 유등들이 가득 하다. ★...남강유등축제가 펼쳐지는 진주는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고 화려했다. 눈부시지 않는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고, 그 아름다움에는 진주로 찾아오게끔 하는 달콤한 유혹이 있다. 문득 코나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정말로 진주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웠다. ⓒ 문일식 |
![]() ★...진주유등축제는 전국 유일한 축제이자 이 고장만의 유래가 있는 알찬 지방문화제이다 ![]() ★...임진왜란 때에 진주성에 고립된 김시민 장군은 멀리 있는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방법으로 등을 사용하였다. 남강을 사이에 두고 전쟁을 치르는 가족을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불을 밝힌 등을 물에 띄워 보내기도 하고 그 속에 사연을 적어 넣기도 했다는 전통을 가진다. 유등은 또 하나의 큰 임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밤중에 몰래 강을 건너는 왜군들을 감시하는 일이었다 ![]() ★...30,0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진주성을 에워싼 적장은 꼼짝도 하지 않는 진주성을 바라 볼 때 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밤중에 몇 명의 특공대를 보내어서 진주성문을 열개해보려는 전술은 당연히 해볼만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더구나 그들은 물에 익숙한 섬사람들이고 수병들이 아닌가? ![]() ★...이런 적장의 전술을 충분히 알아차린 우리 군에서는 유등을 띄워서 적군들이 헤엄쳐 건너는 것을 감시하고,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지혜롭고 알찬 작전이었던 것 같다 ![]() ★...점심을 먹은 [갑을 웨딩가든]은 바로 이 유등축제가 열리는 상류 쪽의 천수교 곁에 있었다. 일찍 점심을 마치고 카메라를 들고 유등축제장으로 가보았다. 여러 가지 모양의 유등 들이 멋진 모습을 자랑하면서 물에 떠 있었다. 밤에 훤하게 불이 켜진 모습과는 달리 환한 낮에 보는 모습 또한 이채로웠다. 정말 진주만의 특별한 여건 때문에 유등 축제를 할 수 있는 것이란다. ![]() ★...유등 축제가 다른 곳에서는 열리지 못하고 진주만의 독특한 자랑이 되는 것은 남강이라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진주 남강은 시내 부근에서 강폭이 불과 200-300m 정도일 뿐이다. 서울의 한강은 그 폭이 너무 넓어서 유등의 모습이 환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또한 물이 흐르는 속도<유속>이 거의 정지 상태나 다름없기 때문에 유등을 띄워 놓아도 흘러가지 않는다. 강 하류에서 유속을 조절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있기 때문이란다. 다른 도시에서 이 유등 축제를 흉내 내어 보려고 해도 이런 조건들이 맞지 않아서 쉽게 행해지기 어려운 형편이란다. 하긴 진주처럼 유등에 얽힌 역사적인 조건도 없이 유등만 띄운다고 유등축제가 살아날 수는 없을 것이기도 하다. ![]() ★...점심을 먹고 소싸움을 보고, 진주성을 관람하고, 박물관에서 구방체험을 하는 등으로 한나절을 보내고 저녁을 먹으러 다시 갑을가든으로 모였다. 저녁을 먹는 동안 차차로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였고, 저녁 6시부터 불을 밝힌 유등은 점점 그 화려한 모습으로 물위에 물그림자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강을 건너는 부교<작은 배를 띄워서 위를 덮어서 만든 다리>를 건너는데 상당히 많은 흔들림 때문에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기회가 다시 있을 수 없으니 잠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 나갔다. ![]() ★...다리 중간쯤에 잠시 쉬어가는 자리가 있어서 그곳에서 오늘 여행에서 나란히 앉게 된 의정부에서 오신 박병석님과 함께 기념사진도 한 장 남겼다. 강을 건너가자 강의 둔치가 나와서 여기서는 유등을 마음 놓고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모여들어서 불야성을 이룬 유등과 함께 축제의 분위기를 북돋아 주었다. 군데 군데에서 폭줄을 날리면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시내 학교의 학생들이 자신들이 만든 축제용 등을 달아 놓은 곳에 와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 ★...진주에서는 앞으로 2차 진주성 싸움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70,000여명을 추모하기 위해서 등을 70,000개가 되도록 축제의 규모를 더욱 키워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금년에는 약 30,000여개를 넘어서 40,000개에 육박하지만 70,000개를 밝히는 것이 목표이고 이 진주성을 지켜내기 위해 순절한 조상들의 넋을 위로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니, 그냥 등불 축제가 아닌 역사의 현장을 멋지게 이용한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
![]() ★...2007 남강유등축제가 펼쳐지고 있는 경남 진주 남강변이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다. 8일 진주시에 따르면 2007남강축제가 시작된 지난 1일 39만여명에 이어 휴일인 지난 6~7일은 50여만명의 관광객들이 축제가 펼쳐지는 남강변 일대를 가득 메웠으며 매일 2~3만명이 찾고 있다. 실제 지난 6일의 경우 오후들어 외지에서 진주로 들어오는 대전-통영고속도로와남해고속도로 등 3곳의 톨게이트가 모두 가동됐지만 밤 12시 넘어서까지 지.정체현상을 빚었으며 평소에도 도심지는 외부 관광객의 차량으로 붐비고 있다. 이처럼 관광객들이 몰려들자 진주시와 축제 관계자들은 매일 밤 12시까지인 축제시간을 관광객들이 남강에 띄워진 유등 등을 관람할 수 있도록 새벽 2시까지 연장했다.진주/연합뉴스 |
진주 남강 유등축제 현장으로 초대합니다 ![]() ▲...남강유등축제 영롱한 모습의 연꽃 유등 ★...진주의 10월은 밤이 아름다워진다. 크고 작은 유등들이 남강에 띄워지면서 장관을 이루면 촉석루에서 시민회관 사이의 도로는 사람과 차들로 붐비며 정체를 이룬다. 하지만 흔하지 않은 이런 장면을 보기 위해 이 정도의 정체는 문제가 안 된다. 매년 10월 1일부터 14일까지 보름동안 펼쳐지는 <진주 남강유등축제>의 기원은 임진왜란의 진주성 전투에 기원하고 있다. 진주시에 따르면 1592년 10월 충무공 김시민(金時敏)장군이 3800여명에 지나지 않는 적은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 '진주대첩'을 치를 때, 성밖의 의병 등 지원군과의 군사신호로 풍등(風燈)을 하늘에 올리며 횃불과 함께 남강에 등불을 띄워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 전술로 쓰였으며, 진주성내에 있는 병사들과 사민(士民)들이 멀리 두고 온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이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김시민 장군의 군사신호로,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의 도하작전을 저지하는 전술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두루 쓰였던 진주 남강 유등은 1593년 6월, 진주성이 12만 왜군에게 함락 된 '계사순의(癸巳殉義)'가 있고 난 뒤부터 의롭게 순절한 7만 병사와 사민의 얼과 넋을 기리는 행사로 꾸준히 이어져졌고, 현재 진주남강유등축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유등축제기간에는 세계 17개국의 대·소형 유등 200여기(한국, 중국, 일본, 대만, 태국, 인도, 싱가포르,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집트, 네팔, 미얀마, 캄보디아, 미국, 루마니아, 칠레, 그리스,네덜란드, 터키)가 전시되기도 한다. 또한 10월 3일 개천절을 시작으로 진주성에서 펼쳐지는 <개천예술제> 와 중복되면서 진주의 10월은 그야말로 축제의 현장으로 변한다. 특히 남강에 띄운 유등은 진주성 주변에 몰려있어 예술제를 관람하려는 시민들은 성벽 너머의 강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 ▲...형형색색의 유등들이 남강의 밤을 아름답게 수 놓는다 ![]() ▲...남강을 걸어서 가로지르는 임시다리를 건너기위해 시민들이 길게 줄 서 있다. ![]() ▲...유등 전시물은 강과 강변에 분산 배치돼 있다. 입구에 있는 해태상. ![]() ▲...이 유등은 쓰레기통이다. 애벌래의 몸통마다 분리수거를 하도록 했다. ![]() ▲...시민들도 자기의 이름과 소원을 적은 유등을 직접 달기도 한다. ![]() ▲...한국 작품 ![]() ▲...한국 작품 ![]() ▲...충무공 이순신 모양의 유등 ![]() ▲...진주성의 모양을 한 유등 ![]() ▲...강물 아래에서도 견우와 직녀는 사랑을 나눈다 ![]() ▲...밤이라 더욱 아름다운 유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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