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실천 삼제(三題)
나이 들어서도 외출이 잦다. 이럴 때 유혹을 받는 것은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하고 싶은 것이다. 집에서도 그렇게 권한다. 그러나 대중교통 이용과 걸어 다니는 것을 생활화하려고 노력한다. 늙어서 사회에 특별한 봉사를 못할 바에야, 공해라도 줄여주는 것이 자가용 이용을 삼가려는 이유다. 그래서 인왕산 밑에 소재한 집에서 서울시청까지의 거리 정도는 걸어 다닌다. 건강에 좋고 공해유발 요인을 줄이니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자부한다.
한번은 서울시장을 만나 걸어 다니기에 적당한 거리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동의하면서 내가 건의한 조치를 이미 취하고 있다고 했다. 건의의 하나는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대기 오염도를 줄여달라고 했다. 그는 시내버스를 완전연소형으로 바꾸고 있다면서 하루밖에 입지 못하던 와이셔츠를 이제는 2-3일간 입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하나는 큰 거리에도 건널목을 많이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 동안 건널목이 늘어나고 지하도와 고가도가 사라지는 것은 서울시를 보행자를 위한 거리로 만들려는 배려라고 생각한다.
대중교통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첨언한다. 노인들의 지하철 이용과 관련된 것이다. 몇 년 전에 사석에서 서울시장은 노인들의 지하철 이용비용이 연간 1600억 원이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그만한 돈을 들여 노인들을 집안에 가둬두지 않고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 사회적 비용이 덜 들 것이라고 했다. 노인들을 집안에 처박아 두면 가정불화에 운동부족 등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더 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왕 무임승차토록 할 바에야 노인들이 매표와 승차에서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요즘 노인들이 지하철 이용에서 일일이 표를 타지 않고 시니어카드를 이용하게 된 것은 노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당국의 배려도 있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부터 겨울철에 실내에서도 내복을 입고 있다. 겨울철에 내복 입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동안 갑갑하다는 이유로 입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겨울에는 집안에서도 내복을 입었다. 서재에서는 방한복까지 입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난방온도를 낮추기 위함이다. 개인의 경제도 돌보고 사회적 비용도 줄여보자는 뜻에서다.
모두들 경제 걱정을 하면서도 아파트 실내에서 팔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생활한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관공서에서도 겨울철에 와이셔츠 바람으로 회의하는 모습이 더러 보였다. 아파트와 관공서의 온도를 얼마나 높였으면 저런 모습으로 생활하는 것일까. 내 돈 더 쓰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생활습관에 무관심하다면 그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이 난방 온도 1도를 낮추면 몇 억 달러의 난방유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하더라?
절약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나는 환경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인간의 절약과 절제에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지구를 살리는 길이다. 이런 작은 실천이 환경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지난해 12월 중순에 결혼 40주년을 맞았다. 아들 둘이 우리 내외를 위해 결혼40주년기념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가지 않았다. 환율 문제에다 외화유출이 겁이 나서다. 12월 초에 공무수행을 위해 4박5일간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왔는데, 예전 같으면 그만한 돈(한국화폐)으로 핍절하지 않게 임무를 수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율의 상대적 하락은 우리의 여행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국내에서 우리 돈을 쓸 때는 몰랐는데, 해외에 나가보니 부아가 날 정도로 우리 화폐의 경쟁력이 형편없었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국내정치가 해외에서는 이런 파장으로 연장되는데도 책임을 세계경제 탓에 전가하는 뻔뻔스러운 위정자들에 대한 분노도 잠시 일었다. 해외에서 우리 일행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 ?것은 부족한 외화, 고환율의 외화를 해외에서 쓰고 있다는 자책감이었다.
돌아와서 아내와 의논하고 아들들에게 우리 내외 해외여행을 미뤘으면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앞선 공무여행보다는 더 장기간의 여행이어야 할 터인데, 여행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불편하게 된다면 차라리 여행을 하지 않는 것이 낳겠다는 생각에서다. 벼르고 별렀던 결혼40주년기념해외여행은 ‘리만브러더스’ 덕분에 물 건너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도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며 후회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