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중국 불교의 역사

백합사랑 2014. 10. 18. 20:18

기원전 1세기경부터 타림분지에 전해진 중국불교는  13세기에 이슬람교가 전래될 때까지 1300년에 걸쳐 서역지방에서 번성하였다.

서역에 있어서 많은 경전을 번역하여 중국불교사에 불멸의 업적을 남긴 사람이 구마라집이었다.

구마라집은 불교사상 새로운 시기를 그은 사람일 뿐만아니라  移植의  시대에서 발전의 시대로 나아가게 한 공적자이자  인도의 중관불교와 주요한 대승경전을 중국에 전한 최대의 공헌자이다 (성실론, 십송률, 대품 반야경, 묘법연화경, 아미타경, 중론 등 번역)

후한의 멸망에서부터 삼국(220- 265),  서진(265-316)시대에 서역인의 도래와 더불어 불교도 번성하여 불도징, 도안등이 나타나 불교를 급속히 전파시켰다.   불도징의 제자 도안은 중국불교의 교의연구의 기초를 다졌고,  도안의 계승자인 혜원(334-416)은 도안이 확립한 중국불교의 기초를 더욱 확고히 했다.   구마라집이나 불도징은 서역에서 중국으로 와 불법을 펼쳤는데 반해 이 시대에는 중국인 스님도 구법의 여행에 나섰다.  최초의 인물은 삼국시대의 주사행이었고,  동진시대에는 법현,  법운, 지맹등이 있었다.

 구마라집이 장안에서 번역사업을 추진하고 있을 무렵 각현이라는 인도 스님이 와 화엄경을 번역함으로써 중국불교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에 한반도에도 불교가 전파되었는데 전진왕 부견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6월에 사자와 함께 순도스님 및 불상, 경문을 보냈다  한다. 더욱이 소수림왕 5년에 아도스님이 이불란사를 , 순도스님이 소문사를 지었는데 이것이 해동불교의 시초이다.

 중국측 자료에 의하면 후진의 황초 3년(396)  중국의 불교 지도자가 고구려에 건너 갔다고 전해진다.

백제는 침류왕 1년(384)  7월, 동진에 사절을 보내 조공을 했고,  9월에는 멀리 인도에서 온 스님인 마라난타가 백제의 왕실로부터 맞아져 존경을 받고, 이듬해 2월에는 한산에 절이 건립되고, 스님 10인이 출가했다.

남북조시대에는 석각문화가 발달했는데, 4세기말에 산서성 대동에 도읍한 북위 (386-534)는 운강석굴을 조성하였고, 494 효문제가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용문석굴을 열어 북위, 동위, 서위. 북제, 북주 , 수,  당의 7조에 걸쳐 약 400년간 조성하였다.

 운강석굴이나 용문석굴 모두가 북조때 만들어진 불교예술의 보고인데, 남북조시대야말로 찬란한 수, 당 불교를 만들어낸 시대였다.  남북조시대에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왔을 무렵, 중국에도 많은  선수행자가 있었는데, 소림사를 연 佛陀禪師와   僧調禪師등이었다.  또, 남북조시대에는  새로운 대승불교의 경전인 [법화경] [화엄경] [열반경]등도 번역되고, 교리적으로도 인도불교의 교설이 대부분 정비되었던 시대였다.

중국불교사의  4대 폐불사건중 가장 규모가 컷던 北周 武帝에  의해서 단행된 폐불정책은 북위이래 융성의 길로만 걸어 온 중국불교가 외래불교의 단절과 동시에 신선한  생명력을 지닌 종파불교로 싹틔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 폐불이야 말로 중국불교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수를 건국한 문제는  불교부흥정책을 폈는데 , 그 중 사리탑 건립 사업은 중국불교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업이었다.   수대에도 많은 스님이  천축과 중국을 왕래하였고,  민중불교인 삼계교와 새로운 종파인 삼론종과  천태종이 성립되었다. 또한 , 점찰행법이 유행하여 광주, 산동반도를 경유하여   신라에 전차되었다.  북위시대에 신봉되던 제위파리경(提謂波利經)이 수대에도 성행했고,  호국경전, 관음신앙등 다향한 신앙형태가 나타났다.   수의 불교는 남북조 불교의 총결산인 동시에 당의 불교를 여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1997년 불교방송에서 갔던  중국불교 성지순례지 지도

 

당대에는 현장, 의정등이 활약했고,  不空이나  善無畏등이 밀교를 전했다.    남북조시대에 기반을 확립했던 중국불교가 당대에 이르러 일제히 개화하여 窺基의 법상종,  도선의 율종, 법장의 화엄종,  선도의 정토종, 혜능의 선종등이 성립되었다.    중국불교사상 최정점을 이룬 당의 불교는 발해,  한반도, 일본, 월남을 포함한 동아시아 불교권을 성립하였고,   [ 한역대장경]이 동아시아 각지에 전파되었다.  독경법도 성행하여 신라 사원인 적산법화원에서는 講經儀式, 一日講儀式, 誦經儀式등이 행하여졌다.    당대에 와서는 신라풍과 당풍의 교류가 성행해서 적산법화원에서는 당풍의 송경의식이 행하여졌고 , 용문석굴의 한 동굴은 신라인이 축조하였다.

  불교문화는 서역에서 중원, 화북지방으로 옮겨 오면서 북위, 수, 당에 이르는 기간동안 대형 석굴사원들이 축조되었는데, 4세기 중엽의 돈황석굴을 위시하여 병령사석굴, 운강, 용문, 鞏縣(공현) 석굴등이 축조되었다.

  송대에 이르러 3무 1종(三武一宗)의 法亂중에 최후에 일어난  후주 세종의 폐불은 국가의 재정압박과 타락한 교단의 숙청을 위해 현덕 2년(955)에 행해졌다.

  송대에는 대장경의 주조가 대규모로 행해지고, 불교사서의 출현, 정토종의  확산,  염불결사의 태동, 5가 7종(五家七宗)이  성립되었다.

 

요, 금시대에는 화엄과 밀교가 융화되고 북방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은 화엄밀교가 번성했다.

요대에는 千人邑會가 행하여지고 수많은 사탑이 건립되었다.     금대에는 산서성 조성현 광승사에서 금각대장경이 조판되어졌고,  원대에 와서는 선과 율의 각 종파와 민간신앙과 결합한 여러분파가 생겨 났으나  선종이 가장 성하였고, 불교사찰의 건립이 크게 성하였다.

  명대에는 유, 불, 도교의 삼교합일사상이 두드러졌으며 불교의 4대가이며 居士불교를 이끌어 낸 운서 주굉(1535- 1615)과 자백 진가(1543-1603),  감사 덕청(1546-1623),  우익 지욱(1599-1655)등이  활약했다.        4대가의  출현으로 교학의 부흥이 일어나고 그 대세는 선정일치와 유불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청대에서는 강희 황제와 옹정 황제가 불교를 숭상함으로써 은거하고 있는 고승들을 국사에까지 참여시켰다.     청말기  홍수전의 불교배척으로 불교는 그 명맥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었는데 양인산거사의 활약으로 간신히  그 명맥만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광서 말년에는 신학문을 보급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현존하는 불교사원의 재산을 몰수하여 각종  학교를 설립하였다.    그리하여,  사원의 재산은 국가나 호족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중화민국의 건국을 맞이하여 불교계에서는 그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중화민국불교총회]를 창립하고 남경 임시정부의 손문대총통에게 청원하는 한편 불교도 자신도 반성하여 새로운  국면을 대응토록 하였다.    천동사의 경안(1851-1921)은 사원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일신의 목숨까지도 버리면서 민국정부에게 사원재산의 보호를 요청하였다.

   불교계의 혁신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로는 경안, 도계 체한, 원영들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이는 남경 비로사의 태허(1890-1949)였다.     태허는 학원을 설립하여 젊은 스님들을 교육하고,  세계 불교도들의 협력을 목적으로 세계불교연합회를 조직했으며, 월간지[해조음]을 발간했다.

 

민국시대의 불교는 선방에서 좌선하는 스님은 거의 없었고  선승들은 經懺師로 전락했다.

이러한  점에서 민국불교는 선종의 진면목을 상실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경참사와 염불로 시종일관한 것이  민국불교였지만 일부에서는 뜻있는 스님이나 재가신자에 의해 불교학의 연구와 잡지의 발간이 행해지기도 했다.

  현재 마르크스, 레닌주의 및 모택동사상에 의해 사회주의 건설에 매진하고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에는 불교나 도교의 사원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한다고 해도 종교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외의  지역 즉,  홍콩이나 대만,  동남아시아의 화교사회에 사는 중국인들 가운데는 지금도 도교나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이 많다.

  중국인들은 신앙에서도 현세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인들은 인생의 3대 행복을  福, 祿, 壽에 두는데 종교신앙에 있어서도 그것의 성취를 신불에게 빈다.

 중국불교권에서는 도교의 묘든, 불교의 사원이든 현세이익의 신으로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것은  관음보살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 함께 불교는 개인의 신앙의 자유로 한정하였다.

문화대혁명과 4인방시절에는 사원의 건물과 불상이 파괴되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불교사원과 불교문화재에 대한 보수작업이 행해지고 있다.

현재 중국불교계는 1953년 성립한 중국불교협회에 의해 통일되어 있다.

 후한이래 약 2천년간  중국인의 정신생활의 양식이 되어 온 불교는 이제 다시 중국 대지에서 부흥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수 없이 거듭된 박해와 탄압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견디어 온 중국불교는 앞으로도 그렇게 쉽게 스러지지 않으리라 믿어진다.

 

이글은  중국 불교성지 순례를 위해 마련된 중국 불교 역사와  97년 현재까지의 상황을 알려준 것으로  좋은 글이라 남겨두고 보려고 올렸습니다

주관  위동 마린투어,  후원 불교 tv 에서 간 불교 성지 안내서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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