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여동안 불로그 친구로 소통만했었는데 드디어 구름재님과 만남을 가진 날~
구름재님은 내가 불자임을 아시고 수종사를 데려가 주시겠다했는데, 여러번 가기도 했고 그냥 이쁜 가을 하늘아래 물길을 걷고 싶기도 하고 다산선생님묘가 있는 곳도 가고싶고해서 그곳을 가고싶다고 했더니 실학발물관과 다산선생님묘지 그리고 두물머리까지 종일 날 위해 봉사해 주시고 맛있는 양수리추어탕까지 사주셨다.
처음 만나서 신세를 듬뿍지고 왔다.
감사합니다! 구름재님!
실학박물관내에 있는 확대한 사진
예전에 갔을때는 박물관도 없었는데 새로 생긴것 같아서 언제 생겼느냐고 물었더니 2009년에 생겼다고 ~~
다산선생님 묘소가 있는 곳
여유당 건물
여유당 건물 뒤에 다산선생님 묘와 묘비가 있습니다
여유당 뒷쪽에 있는 건물
자찬묘지명(자찬묘지銘 - 광중본)
정약용 선생이 회갑이 되던 1822년, 선생의 생애와 사상 . 업적을 묘지명(墓誌銘) 이라는 문채를 빌어 사실대로 적은 것으로, 문집에 넣기 위한 집중본(集中本)과 무덤 속에 넣기 위한 광중본(壙中本)이 있으며, 아래 명(銘)은 광중본으로 민족문화추진회의 국역글이다.
이는 열수(洌水)정용(丁鏞)의 묘이다. 본명은 약용(若鏞), 자를 미용(美鏞), 호를 사암(俟菴)이라 한다. 아버지의 휘(諱)는 재원(載遠)이다. 음직(蔭職)으로 진주목사(晋州牧使)에 이르렀다. 어머니 숙인(淑人)은 해남윤씨(海南尹氏)이다. 영조(英祖) 임오년(1762) 6월 16일에 용(鏞)을 열수(한강의 별칭)가의 마현리(馬峴里)에서 낳았다. 용(鏞)은 어려서 매우 총명하였고 자라서는 학문을 좋아하였다. 22세 (정조7, 1783) 에 경의(經義)로 생원(生員)이 되고 여문(儷文)을 전공하여 28세(정조13, 1789)에 갑과(甲科)의 제2인으로 합격하였다. 대신(大臣)의 선계(選啓)로 규장각(奎章閣)에 배속되어 월과문신(月科文臣)에 들었다가 곧 한림(翰林)에 선입(選入) 되어 예문관 검열(檢閱)이 되고 승진하여 사헌부 지평(持平), 사간원 정언(正言), 홍문관의 수찬(修撰)과 교리(校理), 성균관 직강(直講), 비변사 낭관(郎官)을 지내고, 외직으로 나가 경기 암행어사(暗行御史) 가 되었다. 을묘년(정조 19, 1795) 봄에 경모궁 상호도감 낭관(郎官)의 공로로 사간(司諫)에서 발탁되어 통정대부(通政大夫 )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제수되고 우부승지를 거쳐 좌부승지에 이르고 병조 참의(參議)가 되었다.
가경 정사년(정조21, 1797)에 곡산부사(谷山府使)로 나가서 혜정(惠政)이 많았다. 기미년(정조23, 1799)에 다시 내직으로 들어 와서 승지를 거쳐 형조 참의가 되어 원옥(寃獄)을 다스렸다. 경신년(정조24, 1800) 6월달에 [한서선(漢書選)]을 하사받았다. 이달에 정조대왕(正祖大王)이 승하하니 이에 화(禍)가 일어났다.
15세(영조52, 1776)에 풍산 홍씨 (豊山洪氏)에게 장가드니 무승지(武承旨) 화보(和輔 )의 딸이다. 장가 들고 나서 서울에 노닐 때 성호(星湖) 이익선생(李瀷先生)의 학행(學行)이 순수하고 독실함을 듣고 이가환(李家煥). 이승훈(李承薰)등을 따라 그의 유저(遺著)를 보게 되어 이로부터 경적(經籍)에 마음을 두었다.
상상(上庠) 하여 이 벽(李蘗)을 따라 노닐면서 서교(西敎)의 교리를 듣고 서교의 서적을 보았다. 정미년(정조11, 1787) 아후 4~5년 동안 자못 마음을 기울였는데 , 신해년(정조 15, 1791) 이래로 국가의 금령이 엄하여 마침내 생각을 아주 끊어버렸다. 을묘년(정조19, 1795) 여름에 중국의 소주(蘇州) 사람 주 문모(周文謨)가 오니 국내가 흉흉하여졌다. 이에 금정도 찰방(察訪)으로 보임되어 나가 왕지(王旨)를 받아 서교에 젖은 지방의 호족(豪族)을 달래어 중지시켰다.
다산선생님의 자찬묘지명 - 광중본
사당
다산정약용선생상
다산선생님 묘를 돌아보고 점심을 먹은후 두물머리 물래길을 걸었습니다
평일인데도 두물머리 관광객들이 어찌나 많은지?
함께 사진 찍기도 쉽지 않아 지나가는 학생에게 부탁하여 한장 찍었습니다
가을 하늘이 맑아서 물이 바다처럼 파랗습니다
백년을 보여주시겠다했는데 연은 다 이미 지었어요
배다리 재현해 놓은 것
일반인은 입장료가 5천원 그밖에 할인되는 분은 3천원
배다리
배다리를 건너면 세한도 같은 풍경이 보입니다
추사선생님의 세한도를 목각으로 해놓은 집
세한도가 있는 집 한 편에 이분들 사진이 어떤 연유인지는 ?
손수 그림을 그리시고 글을 쓰신 부채까지 만남의 기념으로 주셨습니다.
구름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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