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아침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으로 조출하게
유람선에서 낙화암과 고란사가 보인다
배에서 내리면 부소산 후문쪽이다. 뒤에 보이는 고란사
낙화암에 세운 백화정
낙화암아래 전망대
낙화암 유래 읽어보기
고란사
극락전에 모셔진 아미타불과 관음.세지보살
고란사에서 보이는 백마강
금동향로를 찾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부여박물관
박물관에 특별전으로 원전시실에서 옮겨졌다는 안내 - 그러나 바로 옆건물이라 안도의 한숨!
왕흥사 사리공양구
왕흥사 목탑 심초석의 사리기를 넣은 구멍 위에는 돌 뚜껑을 덮었습니다. 이 뚜껑 윗부분과 심초석 주변에는 많은 장신구와 진귀한 구슬. 동전, 금판 등이 흩어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사리에 대한 공양을 위한 사리공양사리공양구입니다 . 공양은 불교에서 부처에게 공경의 마음으로 진귀한 것을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탑을 세우는 발원자들은 사리를 탑 안에 넣을 때 사리를 모시고 꾸미기 위해 공양구를 탑 아래에 묻거나 탑 안에 같이 넣습니다
왕과 왕족을 비롯하여 많은 귀족이 왕흥사 사리공양에 참여하였고, 이들은 아끼던 장신구 등을 공양하며 개인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였을 것입니다 . 왕흥사 목탑터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는 당시 백제의 불교의례와 불교공예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예입니다
-박물관에서 옮긴글 -
왕흥사 사리기
2007년 왕흥사 목탑 터를 발굴하던 중 탑 중심기둥의 기초인 심초석을 발견하였습니다. 심초석의 남쪽에서 돌 뚜껑이 드러났고, 뚜껑을 열자 사리기를 넣은 네모난 구멍이 나타났습니다. 그 안에는 바깥부터 청동제 사리합 은제 사리호금제 사리병 3겹으로 겹쳐진 사리기가 있었습니다. 불교 경전에는 사리를 탑 안에 넣을 때 여러 재료의 사리용기를 겹쳐서 사용하고, 안쪽으로 갈수록 귀한 재료로 만든용길 쓰도록 적고 있습니다. 왕흥사 사리기도 경전 내용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바깥 사리기인 청동제 사리합에는 6행 29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글 내용으로 577년 (정유년)2월 15일 창왕이 죽은 아들을 위해 왕흥사를 세우고 목탑에 사리기를 넣은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왕흥사 사리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銘文명문에는 사리기에 사리를 넣었다고 하지만, 실제 사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丁酉年二月十五日百濟王昌爲亡王子立刹本舍利二枚葬時神化爲三
정유년2월15일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찰(절)을 세우는데 사리 2매를 묻으려 하자 신의 조화로 사리가 3매가 되었다.
-박물관에서 옮긴글 -
금동관음보살입상 국보293호
백제불교사
사비백제에 불교문화가 꽃피다
백제의 불교는 사비시대에 크게 성행하여 聖王은 사비도성 중심에 정림사를 창건하였고, 양나로부터 佛經 과 工匠공장. 畵師 등을 청하기도 했다 .
법왕은 왕흥사를 세워 왕건강화를 추구하였고, 무왕은 익산에 거대한 미륵사를 창건하여 용화세계를 이루려고 하였다. 불교가 성행하면서 교리 연구도 활발해 율학이 발달하고 삼론학 . 성실종등이 연구되었다.
백제의 불상으로는 金銅佛과 石佛 塑造불 등이 남아 있다. 사비천도 후에는 부여 규암면에서 출토된 금동관음보살입상을 비롯하여, 鄭智遠이 죽은 처의 명복을 비는 글이 새겨진 부소산 출토 금동삼존불입상, 부여 군수리 사지목탑의 心礎石에서 발견된 납석불좌상과 금동보살입상을 대표적인 불상으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불상은 중국 南北朝와 백제 사이의 문화적 친연성을 잘 보여주는 한편. 풍만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양감 표현은 백제 불상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사비백제에 불교문화가 꽃피다
-박물관에서 옮긴글 -
드디어 만난 백제금동향로!
백제 금동대향로 발견 과정
위대한 발견, 백제금동대향로
1993년 겨울, 국립부여박물관은 능산리 사찰 터를 발굴하였습니다. 12월 12일.이날은 사찰의 운영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수리하였던 공방 터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공방 안의 나무 수조를 조사하던 중, 그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토기. 기와. 금속 조각 등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를 조심스레 치우자, 그 아래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드러났습니다
왜 백제금동대향로는 공방의 작은 나무 수조 안에 뉘어져 있었을까요?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숨겨놓은 것은 아닐까요? 660년, 신라와 당나라의 공격을 받아 위기에 빠진 백제 사람들은 백제의 상징과도 같은 금동대향로를 이곳에 숨긴 것으로 보입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왕실이 주관하는 의례에 사용하는 특별한 향로였으며, 백제 사람들은 위기를 극복한 후 다시 이를 꺼내 돌아가신 백제왕께 제사 지낼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1400여 년이 지난 1993년 12월 12일, 백제금동대향로는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박물관에서 옮긴글 -
백제금동대향로 향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재현품)
백제금동대향로는 능산리 사찰에서 거행된 의례와 제사에 사용하였습니다. 나쁜 기운을 없애고 경건함을 더하기 위해 향로에 향을 피웠습니다. 봉황의 가슴과 뚜껑의 산 사이사이에 있는 구멍으로 향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향로는 높이 61.8cm, 무게11.85kg으로, 뚜껑 . 몸체 . 받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뚜껑 꼭대기에는 상상 속의 동물인 봉황이 있습니다. 신선이 살았던 神山세계를 묘사한 뚜껑에는 다양한 인물과 동물, 신비한 힘을 가진 괴수 등이 장식되었습니다. 불로장생하는 신선의 삶을 동경하였던 고대인의 세계관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습니다.
연꽃모양의 몸체에는 물고기와 새, 상상 속 동물이 연꽃잎 사이사이에 있습니다. 진흙 속에서도 유유히 피어오르는 연꽃은 만물의 탄생과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받침은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용이 거대한 향로를 받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한쪽 다리를 치켜세우고 몸을 감아올린 용의 역동적인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옮긴글 -
사또국밥집
점심은 정림사지 근처에 있는 사또국밥집에서 - 정말 맛있었던 집 - 부여여행중에 가장 맛있게 먹은집
정림사지와 오층석탑
정림사지와 5층석탑은 국보 제 9호이며 유네스코 등재
정림사지 석불좌상 보물제108호 높이 5.6m / 고려
정림사지내에서 부여축제 기간에 충청도내 사찰들에 계신 스님들이 수륙대제를 지내고 계셨다
백제문화단지로 가는 길 양쪽에 소나무가 아주 멋지다
롯데아울렛에서 잠시 쉬고
정양문을 들어오면 문화단지 내에 천정문과 능사와 5층탑이 보인다
먼저 문화단지내에 생활관 관람부터
지게 지기 체험
위례마을? 생활모습 재현
위례성의 궁 입구
위례궁 - 내부에선 동영상 상영중
위례궁 침전
천정전쪽으로 가는 길
곳곳엔 체험관들이 중간중간 있다 - 활쏘기 체험
천정전옆에는 능사라는 절이 있다
천정전 안에 있는 당시 왕족이 입었던 옷모형
큰 통나무를 톱으로 톱질체험
능사 앞에서
우리 손자 활쏘기에 빠져서 하루 종일 오며가며 활쏘기를 한다
능사에 대웅전
대웅전 내에 불상
밤 10시까지 야간 개장이 있어서 밤에도 화려하다
능사와 5층탑
야간 개장이라 궁관람도 있지만 한편에선 음악무대도 있고 한편엔 열기구 벌룬을 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마도 딸도 이곳에 온 목적중에 벌룬을 타고 싶었던것 같은데 7시가 되서 벌룬 사장님 나오셔서 준비하시니까
언제 하늘로 오를지? 기다리다 지쳐서 우린 포기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8시가 다 되도 매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저녁을 먹어야해서 포기하고
8시 넘으면 식당문 닫는 곳이 많아서 멀리 연잎밥집까지 가서 저녁을 먹었다
10월 5일
아침은 어제처럼 먹고
부여군 사비도성에 있는 구부여박물관 가상체험관을 찾았다
구부여박물관 건축물
이곳에도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가상체험관이 많이 있다
난 가상체험관보다 유적지를 보고싶어서 오자고 한것이었다
칼국수집인데 돌솥비빔밥도 있어서 각자 먹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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