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가는 길
창경궁 문
창경궁 문 밖에서 명정문과 그안에 명전전 까지 보인다.
명정전 전경
명전전 (明政殿)
국보 제 226호
명전전은 창경궁의 중심 건물(正殿)로 성종(成宗) 15년(1484)에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린 것을 광해군(光海君) 8년(1616)에 다시 지었다. 동쪽의 명정문을 위시하여 남쪽의 광정문(光政門), 북쪽의 광범문(光範門)이 있었으나 지금은 명정문만 남아 있어 조선시대의 궁중 건물이 대부분 남향인데 명정전만은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은 길게 다듬은 돌로 쌓은 2단의 넓은 월대(月臺) 위에 따로 기단(基壇)을 두고 세웠다. 목조각으로 짜여진 구조 형식은 처마를 받치도록 기둥 위에 짜 맞추어 올리는 공포를 기둥 위뿐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배치한 양식이고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달아 지은 팔작지붕 단층집이다. 건물 뒤쪽에 햇빛을 가려주는 벽이 없는 긴 집체가 달려 있는 것과 건물 내부 양쪽으로 높은 기둥이 있는 것은 특이한 예이다. 건물 앞에는 다른 궁의 정전 (精殿)에서와 같이 품계석 (品階石)이 좌우 양측에 놓여 있다 .
명정전 앞에 임금님만 다니던 길
명정전과 행랑
명정전 뒤의 모습
명전전 안에 임금이 앉아서 정사를 하던 자리
명정전 용상 위의 천장 닷집
명정전 뒷건물
명전전 뒷건물
명정전 뒤에 있는 숭문당 崇文堂)숭문당은 제3대 경종(景宗) 때에 세운 건물인데, 순조(純祖) 30년(1830)의 큰불로 타 버린 것을 그해 가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숭문당의 현판(懸板)과 '일감재자(日監在玆' 라고 새긴 게판(揭板)의 글은 영조(英祖)가 쓴 것이다. 영조는 특히 학문을 숭상하고 영재를 양성하였는데 이곳에서 친히 성균관의 학생들을 접견 하여 시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주연(酒宴)을 베풀어 그들을 격려하기도 하였다.
이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집으로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단 팔작지붕을 얹었고 공포가 새 날개 모양인 익공식(翼工式)이나 간결하여 둥그런 굴도리와 모가 난 장여 밑에 접시받침만을 끼워 장식하였다. 처마는 덧서까래를 달지 않고 처마 서까래만 걸어 꾸민 홑처마이고 지붕 마루도 양성을 하지 않고 용머리 장식만을 놓아 전체적으로 검소한 모습을 하고 있다.
명정전과 문정전
문정전은 임금이 나랏일을 보던 건물로서, 명정전(明政殿)을 임금이 신하들을 모아 조회를 하고 공식적인 행사를 하는 정전(正殿)이라 한데 대하여 임금이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는 편전(便殿)이라 하며 건축 수법도 명정전에 비해 간결하고 소박하다. 문정전은 창경궁 창건(1484) 당시 처음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때 다시 지었고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8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문정전 안에 어전회의 (御前會議) 하던곳
담 너머 보이는 곳은 창덕궁
보이는 나무는 '주목'으로 : 주목과
목재가 붉어 주목(朱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긴 세월을 살며 목재로 쓰인 뒤에도 잘 썩지 않아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나무'라고 불린다. 가을에 앵두 같은 붉은 열매가 달리는데 독이 있다 . 수령은 300년 정도이다.
향나무 : 측백나무과
줄기에서 독특한 향이 나는 향나무는 느티나무와 더불어 가장 오래 사는 나무 중의 하나이다. 옛날 대부분의 향은 나무에서 만들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향나무이다.
부정을 씻어주는 나무로 사랑받아 궁궐 등에 널리 심겨졌다. 수령은 200년 정도이다.
함인정
이 정자는 본래 함인당이었는데, 인조 11년(1633)에 이곳에 옮겨 세우면서 함인정이라 하였다. 이곳에는 원래 성종 15년(1484)에 지은 인양전이 있었는데,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인조가 인경궁의 함인당을 이곳에 옮겨 세운 것이다.
그 후 순조 30년(1830) 창경궁에 큰불이 나 타 버린 것을 3년 뒤(1833)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함인정은 영조가 문무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경춘전(景春殿)
경춘전은 성종 15년에 창경궁을 창건할 때 내전으로 지은 건물인데,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광해군 8년에 다시 지었다. 그 후 순조 30년에 불탄 것을 3년 뒤인 1833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춘전의 현판은 순조의 글씨(御筆)이다. 경춘전은 제 22대 정조와 제 24대 헌종이 탄생한 것이며, 성종의 생모인 소혜왕후 한씨를 비롯하여 인현왕후 민씨, 현경왕후 홍씨 등이 등이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다.
건물은 주춧돌의 면과 면을 맞추어 3단으로 쌓은 세벌대 기단 위에 지었다.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단 팔작지붕을 얹었고 처마의 무게를 받치도록 기둥 위에 짜 맞추어 올리는 공포가 새 날개 모양인 익공이 2개인 이익공 집이다.
환경전은 성종 15년에 창경궁을 창건할 때 지은 건물이다.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8년에 중건하였으나. 인조 2년 이괄의 난때 다시 불타 버렸고 난이 평정된 후 곧 중건하였다. 순조 30년에 다시 화재를 입은 것을 33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 건물은 창경궁의 내전 건물 중 하나로 임금이 생활하던 곳이며, 제 11대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하였고, 그 후 순조의 효명세자 문조가 승하하였을 때는 발인 때까지 관을 두던 빈궁으로 사용하기도 한 곳이다. 길게 다듬은 돌을 쌓은 기단 위에 세워졌으며, 처마의 무게를 받치도록 기둥 위에 짜 맞추어 올리는 공포가 새 날개 모양인 익공이 2개 상용된 전형적인 이익공 형식의 집으로 지붕은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단 팔각지붕이다.
아름다운 탑이 있었는데 아무 설명도 없다.
영춘헌과 집복헌 전경
영춘헌과 집복헌
영춘헌은 정조가 거처하던 곳으로 재위 24년(1800) 6월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집복헌은 영춘헌의 담 역할을 하는 긴 집채인 행각 중 서행각으로 영조(英祖) 11년(1735) 정월 사도세자(思悼世子)가 태어났으며 정조 14(1790) 6월에는 순조가 태어난 곳이다. 순조 30년(1830) 8월 환경전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하여 여러 건물과 함께 불타 버려 순조 34년(1834)에 다시 지었다. 그후 건물의 퇴락으로 1999년 5월부터 2000년 7월까지 대대적인 해체 보수 및 복원 공사를 시행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비하였다. 이 건물은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새 날개 모양인 익공 양식이 사용 되었으며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단 팔작지붕을 얹었다.
영춘헌
영춘헌의 안쪽의 모습
영춘헌의 뒷쪽의 모습
영춘헌의 뒷쪽의 모습
ㅇ
이곳은 미음자형 집으로 되어있다 --모두 작은 방들로 이루어져 다. --아마도 궁녀들의 방이였지않나싶다.--키가 큰 사람은 머리를 부딛히기 십상이다.
머리조심 이라고 써붙였다.
이곳은 미음자형 집이다 . 작은 방들로 이루어졌다.--아마도 궁녀들의 숙소가 아닌가 싶다.
영춘헌과 집복헌의 전경 ---아름다운 색의 조화
이곳의 소나무들은 좋은곳 답게 다 적송이였다.
통명전과 양화전
양화당
양화당은 왕비의 생활 공간으로 성종 15년(1484)에 지었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1624) 병자호란으로 인해 불에 탄 것을 매번 다시 지었으며 순조 30년(1830) 또 다시 불에 탄 것을 1834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가 이듬해 돌아와서 이 곳에 거쳐하기도 하였으며, 철종비인 철인왕후는 고종 15년(1878 )에 ) 이 곳에서 승하하였다. 현판은 순조의 글씨이다. 양화당은 정면 6칸, 측면 4칸 규모의 단층집으로 네귀에 모두 추녀를 단 팔작지붕을 얹었고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새 날개 모양의 익공 양식이다.
통명전
보물 제 818호
통명전은 왕비의 생활 공간으로 연회를 열기도 하던 곳이다.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었으나 임진왜란 ? 불에 타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는데, 그 후 여러 차례의 화재를 당하여 현재의 건물은 순조 34년(1834)에 다시 지은 것이며 현관은 순조의 글씨이다. 통명전은 창경궁의 내전 건물 중 규모가 크고 꾸밈이 화려하여 내전을 대표할만한 건물이며,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단 팔작지붕에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새 날개 모양인 익공 집으로 지붕에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전면에는 길게 다듬은 돌을 높고 넓게 쌓은 월대를 두어 격식을 높였으며, 서쪽에는 연못과 돌다리 등을 두어 주위 공간도 아름답게 꾸몄다.
통명전 안에 보존된 현판
통명전 방안의 모습
지붕위의 삼장 법사 --궁에서는 삼장법사 제자들이 자기들을 잘 지켜주길 기원한듯 싶다.---맨앞이 삼장법사 .......
멀리 남산의 송신탑이 보인다.
앙부일구는 조선시대에 사용한 해시계로 그림자가 비치는 면이 오목한 가마솥과 같은 반구형으로 되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동지에서 하지에 이르는 24절기를 13선의 위선으로 나타내어 절기를 알게 하였으며 , 수직으로 시각선을 그었고 영침은 북극을 향하여 꽂았다. 특히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글자 대신에 짐승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세종 16년 (1434)에 처음 만들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7세기 후반에 제작한 것이다.
규격 : 직경 352m , 높이 14m 보물 제 845호의 모조품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보물 제 1119호
이 탑은 조선 성종 원년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일제 강점기인 1911년에 창경궁에 이왕가 박물관을 건립할 때 상인으로 부터 구입하여 세운 것이다.
성종태실과 태실비
이 태실은 성종의 태를 모신 태실로서 원래 경기도 광주 경안면에 있었는데 1930년 5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역대 임금의 태실을 서삼능으로 옮기면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동쪽에는 거북이 모양의 받침대를 갖춘 성종태실비가 있는데 뒷면에 성화 7년 윤 9월에 세우고 그후 세번에 걸쳐 다시 세웠다는 글이 새겨져있다. 성종은 조선 제9대왕으로 1469년 13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25년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경국대전의 반포 등 조선의 문물 제도을 완비하였다.
식물원
이 식물원은 대한제국 순종 용희 원년(1907)에 기공하여 융희 3년(1909) 11월 1일 준공하고 일반에 공개 되었다. 식물원의 규모는 넓이 534.6제곱m 높이 10.5m로서 건축 당시에는 한국 최대의 목조 식물원이었으며 진열 식물은 열대지방의 관상 식물에서부터 희귀한 동 . 서양란 및 온대 지방의 산초류까지 약 1400종 18,000분을 전시하였다.
1983년 2월에서 1986년 8월 사이의 창경궁 정비중창 공사를 계기로 고궁과 조화되지 않는 야자과 등 외국식물 733종 218분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우리나라 자생란을 세계의 각종 난을 진열하여 난과 식물 단일식물원으로 특성화하였다가 현재는 남부 지방의 자생 식물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식물원 내부 일부
백송 :소나무과
예로부터 중국을 다녀온 사신들이 씨앗을 구하여 심으면서 귀한 대접을 받던 나무이다. 나이가 들수록 새하얘지는 수피로부터 이름이 유래되었고 백색을 좋아하는 우리민족이 상서롭게 여긴 수종이다. 수령은 100년 정도이며 서쪽으로 심하게 기운 것을 2005년에 바로 세웠다.
광덕문 이름이 참 아름답다 .---문에 한번 드나들 때마다 덕을 빛내는 사람이 되면 좋겟다.
명정문과 옥천교
옥천교 보물 제 386호
옥천교를 건너서 명정문이 있고 명정문을 지나서 명정전이 있다.
작은 나라인지라 너무 가깝다는 느낌이다.
명정전과 회랑
명정문 및 행각보물 제 385호
명정문은 창경궁의 중문이며, 명전전의 정문이다. 명전전과 부속 건물들이 모여 있는 일원은 임금이 나랏일을 하던 곳이며 국가적인 의식을 거행하던 곳인데, 이 구역은 담 역할을 하는 긴 집채인 행각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건물들은 창경궁 창건(1484) 당시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때 다시 지었으며 남쪽 및 북쪽 행각 일부는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어 1986년 복원하였다.
멀리 보이는 북악산?과 회랑?
창경궁 입구 회랑에는 앉아서 쉴수 있는 툇마루를 만들어 두었다---힘든 어른들 앉아서 쉬고 계셨다.
왼쪽 회화나무와 소나무
회화나무는 하자수라 불리며 영어이름도 Scholar Tree 이다 . 중국에서 회화나무 세그루를 조정에 심고 삼공(三公)이 그 아래서 정사를 돌보았다 하여 상서로운 나무로 귀히 여겨져 궁궐에도 많이 심었다. 수령은 300년 정도이다.
창경궁 맞은편에 있는 서울대학병원 구건물로 앞뒤가 같은 시계탑과 뒤의 흰 건물은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건물
우리의 지석영 선생님
서울대병원 옛건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존경하는 히포크라데스님!
- 택사랑 택사랑 http://blog.daum.net/fokomforsejinhang Y
- 2006.09.25 17:28
- 나무사랑 나무사랑 http://blog.daum.net/hyeanj Y
- 2006.09.25 18:04
어린 시절을 되돌릴 수 있음 좋겠어요.
타임머신을 타면 돌아갈 수 있음 정말 좋겟어요.
어릴때 어른들이 하신 말씀 곧 타임머신을 발명할것이라고
그것이 발명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것이라 하여서
타임머신 발명하기만 기다렸는데
지금와서 보니 그것은 너무 허무한 기대였어요.
후후후후
- 求道者 求道者 http://blog.daum.net/shinyero Y
- 2006.09.25 17:36
한 이쁜 여인사진으로 인해
전체사진이 다 이쁘게 보입니다...ㅎㅎㅎ
- 나무사랑 나무사랑 http://blog.daum.net/hyeanj Y
- 2006.09.25 18:05
누구지요?
가봐야겠네요.
오늘 사진 깨끗하게 나왔지요?
하늘이 너무 이뻣었어요.
파란 하늘이 .........
감사합니다.
- 해탈로 해탈로 http://blog.daum.net/galluccy Y
- 2006.09.25 19:39
삼족오를 그렸는지
오늘 하늘 이 마에들어요
나무님에 여유있는 삶도 맘에들고요 ㅎㅎㅎㅎㅎ
병원 까지 ..
저는 분당에 서울대 병원에 매주 가는데...
아파서가 아니구 일 때문에요
그때 보는 하늘도 정말좋아 가끔찍어요
- 나무사랑 나무사랑 http://blog.daum.net/hyeanj Y
- 2006.09.25 22:45
전 창경궁만 그렇게 아름다운줄 알았네요.
오늘 창경궁 참으로 조용하고 좋았어요.
창경궁은 월요일 놀지 않는데 보통 고궁이 월요일 놀기 때문에
일반인들 노른 줄 알고 안온듯, 조용하고 좋았어요.
외국인들이 좀 있을뿐.......
외국인들은 질서를 잘 지키니 있는둥 없는 둥 ........
- 이 하 이 하 http://blog.daum.net/47leejok Y
- 2006.09.26 10:55
좋은 자료도 보배입니다. ^ ^
- 나무사랑 나무사랑 http://blog.daum.net/hyeanj Y
- 2006.09.27 16:06
그날요.
감사합니다.
- 한나무 한나무 http://blog.daum.net/namuhalu Y
- 2006.09.26 15:29
자태고운 반가운 얼굴하나..^^
- 나무사랑 나무사랑 http://blog.daum.net/hyeanj Y
- 2006.09.27 16:07
자태?
감사합니다.
잘 보아주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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