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광개토대왕비
우리나라 최대의 비는 고구려 제 19대 왕인 광개토대왕의 비이다. 414년 건립 , 높이 6.39m, 너비 약 1.5m인 광개토대왕비는 중국식의 명칭으로 '호태왕비 ' 라는 이름 아래 호호각 속에 서 있다. 집안시 한 마을 내에 있는 이 대왕비에서 고구려인의 웅혼한 기개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광개토왕비는 거대한 자연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물론 광개토대왕 (375~413년)의 치척을 비롯 고구려인의 숨결이 스며있는 우리 겨레의 소중한 금석문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이 비는 4면에 각행 41자씩 총 1,800여 자에 이르는 명문이 한대의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장군총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동네 골목을 따라 뒷동산으로 오르면 (약 1.5km) 장군총이 나온다 .고구려 석조건축의 대표작으로도 꼽히는 이 무덤은 피라미드식으로 7층 계단의 화강암으로 축조되어있다. (높이 12.4m, 한 변의 길이 31.58m ). 묘실에는 장발형의 석관이 두 개 놓여 있으나 부장품 등은 없이 텅비어 있다. 특히 관람객을 위하여 무덤 측면에 설치해 놓은 철제 계단이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화청지
서안의 화청지는 당나라의 현종황제와 양귀비의 로맨스가 있는 이궁이다. 원래 이 자리는 2천여년전부터 온천지대로 유명했던 곳을 현종이 화청궁을 짓고 양귀비와 밀어를 나눈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양귀비가 목욕하던 곳을 포함 대중온천 시설이 있으며 젊은 남녀의 발길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양귀비의 무덤
원래 양귀비는 현종임금의 친아들인 수왕의 아내였다, 그러나 아들의 아내를 빼앗고 사랑의 포로가 된 현종은끝내 나라까지 망하게 했지 않았는가, 경국지색은 양귀비를 두고 일컬음인가 , 안록산의 난에 의해 사천으로 도피중이던 현종은 끝내 양귀비로 하여금 죽음을 택하게 했다, 검은 벽돌로 봉분을 뒤덮은 양귀비의 무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진출처 :윤범모 선생님 실크로드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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