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중국- 북경 영광사의 불 아사리탑!

백합사랑 2006. 8. 19. 00:27

塔院 山門殿前의돌계단

 

불아사리 탑(佛牙舍利塔) 외형

본래 이 불아사리탑은 석가모니불 입멸 다비후 그 영아(靈牙)를 5세기 중에 중국에 가져 왔으며 1071년, 8세기에 만들어진 북경 영광사의 초선탑속에 그 영아(靈牙)를 모셨던 사리탑이라 한다.  그러나  이 탑은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북경에 침입한 8개국 연합군의 포화에 파괴되고 절은 황패해 졌다. 이 후 1964년 중국불교연합회와 인민정부의 큰 원조로 부흥되어 그 경관을 되찾게 되었다.    

사리탑은 예전 탑의 기단 침향목 상자에 들어 있던 영아를 현 탑내 칠보 금탑연좌위에 안치시켰으며. 언제라도 참배할 수 있게 했다.

새로운 불아사리탑은 금빛  찬연한 8각13층탑으로 높이 51m의 장엄한 자태를 보여주며, 탑내 1층에는 금강반야경의 동판이 새겨져 있는데 이 것은 원대의 서예가 조자양이 쓴 글이다

 

 

불아사리탑 외형

 

불아사리탑앞에서

 

 

 

위의 전탑속에 들어가면 앞에 보이는 금탑이 있고  그 탑 속에 부처님의 치아사리 두과가 들어있다.

전탑 속은  작은 법당 만큼 넓었다 우리나라 칠성각 정도의 크기

우리 일행 몇십명이 다 들어가서 절하고도 남는 공간.

이곳은 아무나 갈수없는 곳이고 지금은 모르지만  10년 전쯤만해도 높은 사람의 허가가 있어야 했으며

입장료도 일인당 110 원 (중국돈 100원은 이당시 우리나라돈으로 환산해서 1만 5천원 정도 )정도 했던걸로 기억 됨.

이곳에 들어갈 때는  카메라를  밑에다  다 맡겨야만 탑 안으로 올라갈수 있으며,'

저 금탑이 있는곳 까지는 5-=6층을 올라가야만 됨 .

이곳은 경찰 2-3명이  늘 경비를 서고  있었음.

 

 

이탑과  똑같은 것 두개를 만들어서 자금성에 한 개 두고 이곳에 부처님 치아사리를 모셔 두었다함.---

이금탑의 가치는 그당시 5000억원정도라 하였씀--보석이 모두  원석이라함 -

 

탑에 밖힌 보석 확대

 

 

 

연꽃장식위에 하얗게 보이는것이 부처님 치아사리.

탑 속에서는 돋보기로 볼수있게 해 주었음.

 

 

 

 

 

 이 하얀 돌계단 위에 탑이있음.

 

멀리서 보이는 불아사리탑

 

이곳은 접견실 --이곳에서 그윽한 맛의  차를 스님이 주셨음

 

 

 

 

 

 

 

 

 

 

 

지금은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우린 , 카메라  함부로 꺼냈다간 아무말 못하고 뺏기던 시절 .

방송국 기자라고 사정을 해도 소용 없었다.

무조건 않된다고한다.

그래서 난 카달로그로 대신 할수 밖에 없는 .......

 

 

북경 와불사와 벽운사 종쳐보기

와불사(臥佛寺)

커다란 석가열반상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반적으로 와불사라고 불리어지지만 十方普覺寺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명칭이다.    북경 주변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서 창건은 당나라의 貞觀년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원나라 영종은 불교를 신봉하여 즉위 때(1321년)부터 절을 확장시켰으며, 그 때는 50만근(약 3백톤)의 동을 사용하여 만든 대와불이 있었다고 전설은 전한다.

대웅보전에는 12체의 원ㄴ각입상이 고요히 가로누운 불타를 둘러싸고 있으며 현재의 와불은 명나라 때 것으로 옻칠로 채색된 주동불로서 신장은 5m나 되는 거상이다 경내에는 당나라 때 인도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두 그루의 사라수 노목이 매년 여름이면 흰 꽃을 피운다.

벽운사(碧雲寺)

산 전체가 푸르름으로 뒤덮여 있는 향산중턱에 대가람을 펼치고 있다.   북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의 하나로 넓은 경내에는 인도 양식을 모방한 형식의 백옥으로 만득어진 높이 35m의 금강보좌탑이 서 있다.    이 절의 창건은 일찍이 징기스칸의 재상인 야율초재의 자손이 원나라 말인 1366년 이 땅을 기증하여 건립되어졌다.

그 후 명나라때 확장되고 청의 건융 13년(1748년)에 백옥의 금강보좌탑이 만들어졌다 .   항주의 정혜사를 모방했다는 나한당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508체의 불상이 겹겹이 줄지어 앉아 있는 것도 경관이다.

이 외에도 소문기념당이 있다.  1925년 3월 12일 북경에서 사망한 손문을 남경 중산릉으로 이장하기전까지 5년을 이 곳에 안치했었고, 이 절이 있는 향산은 단풍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