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는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세계문화 및 자연 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 ]에 의거하여 유네스코에 세계 유산으로 등록 되었다.
세계 유산이란 당해 문화재가 세계적으로 특출하고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보호되어야 할 유산을 말한다.
종묘는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후의 신위를 모시고 祭享을 올리는 유교적 전통 신전으로 정전은 1395년 (조선 태조 4년) 에 완공되어 신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증축하면서 옆으로 길어진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동시대 단일 목조건물 중 세계에서가장 길다. 현재 매년 5월 첫째 일요일 종묘제례를 올리고 있으며 ,
1995년 12월 9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공민왕 신당(恭愍王 神堂) --얼마전 까지만해도 공사중이었는데 오늘 운좋게 문이 열렸다
이 곳은 고려 공민왕의 신위를 모신 신당이다. 공민왕은 고려 31대 왕으로 원나라 세력을 내몰고 나라의 자주권뿐만 아니라 잃었던 북방 영토를 회복하였다. 또 예술적 재능도 뛰어나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 등 훌륭한 그림을 남겼다.
조선 태조가 종묘를 지을 때 공민왕의 업적을 기리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당을 짓도록 하였다. 신당에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함께 그린 영정, 준마도(駿馬圖)를 그리게 하셨는데, 현재는 복제품이 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다시 지었으며, 봄 가을 제사를 지냈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초상화인데 영인본이며 전각안으로 들어 갈 수 없도록 나무바리�으로 막아놓아서 .....
이건물은 망묘루 -건물 왼쪽으로 연못이 있음
망묘루(望廟樓)
망묘루는 임금이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망묘루라는 이름은 제향시 임금이 종묘의 정전을 바라보며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언제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고 현재 건물 가운데 1칸이 누마루로 되어있다.
망묘루 옆에 있는 ' 연못은 세종 25년(1443)에 조성된 것으로 사각형의 못 가운데 둥근 섬이 잇는데 이는 .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함) 사상에 의한 것이다.
대부분의 궁궐 연못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으나 여기에는 향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다음에 연못을 찍어다 놓아야 겠습니다.
망묘루 측면 -- 연못옆쪽이다
어숙실
어숙실은 왕이 제례를 올리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재례를 준비하던 곳이다. 종묘의 정전 동쪽에 자리한 어숙실은 제궁(齊宮) 또는 어제실이라고도 부린다. 담으로 둘러진 이 구역의 북쪽은 어재실., 동쪽은 세자제실, 서쪽은 어목욕청(御沐褥廳이다. 제례시 왕과 세자는 어숙실 정문으로 들어가 목욕제계하고 서협문으로 나와 정전과 영녕전으로 들어가 재례를 올렸다. 이 건물은 태조 4년(1395)에 정전과 함께 지었으나 , 임진왜란 중 불에 탄 것을 광해군 즉위년(1608)에 다시 지었다. 정전의 규모가 커질 때마다 이건물은 동쪽으로 옮겨지어졌다ㅣ,
' 드므 '
'드므' 란' 넓적하게 생긴 큰 독' 이란 순수한 우리 말로 그 안에 물을 담아 놓으면 불귀신(火魔)이 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달아난다는 주술적 의미가 있으며 화재가 났을 때 실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종묘 정전의 동문
정전신위봉안도
정전 동문 옆에 있는 건물과 '찬막단 -Stay Back'
찬막단(饌幕壇)이라는 돌로 만든 단이 있는데 이곳에서 정전에 음식 차림 [진설 :陳設]을 하기 전에 제물을 심사하였다.
전사청 (典祀廳)과 청오른쪽 앞에 찬막단
종묘 제례 때 사용하는 그릇 물건 운반기구 등을 보관하고 음식을 준비하던 곳이다. 이 건물은 태조 4년(1395) 종묘를 지을 때 함께 지었는데 임진왜란 중 불에 탄 것을 광해군 즉위년(1608)에 다시 지었다. 이 건물 앞에는 찬막단(饌幕壇)이라는 돌로 만든 단이 있는데 이곳에서 정전에 음식 차림 [진설 :陳設]을 하기 전에 제물을 심사하였다.
이곳이종묘 정전으로 위패를 모시고 제를 지내는 정전 동쪽 끝 계단이다.--예전엔 이위도 올라 갈 수 있었는데 세계문화유산이 되어서인지 이제는 주춧돌 위도 오르지 못한다고 되어있다 --동쪽문으로 들어오면 보이는 곳
종묘의 정전 :왼쪽 끝건물에는 태종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임
위의 건물에 이어진 정전 동쪽 끝
동문으로 들어와서 보이는 종묘정전 , 앞에 보이는 흰푯말은 [들어가지 못함]임
종묘의 정전
국보 제 227호
정전은 종묘의 중심 건물이다, 조선시대 초에는 태조(太祖)의 4대조 신위(神位)를 모셨으나, 그후에는 당시 재위 왕의 4대조와 역대 왕 중에서 특히 공적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하였다. 정전은 원래 종묘라 불렸으나, 영녕전이 세워지면서 태묘(太廟)라 불리기도 한다. 현재 정전에는 서쪽 제 1실에서부터 시작하여 태조(太祖)와 왕비 태종(太宗)과 왕비, 세종(世宗)과 왕비, 세조(世祖)와 왕비, 성종(成宗)과 왕비, 중종(中宗)과 왕비, 선조(宣祖)와 왕비, 인조(仁祖)와 왕비, 효종(孝宗)과 왕비, 현종(縣宗)과 왕비, 숙종(肅宗)과 왕비, 영조(英祖)와 왕비, 정조(正祖)와 왕비, 순조(純祖)와 왕비, 문조(文祖)와 왕비, 헌종(憲宗)과 왕비, 철종(哲宗)과 왕비, 고종황제(高宗皇帝)와 황후, 순종황제(純宗皇帝)와 황후의 신위까지 모두 19실에 49위가 모셔져 있다.
건축양식은 단순하지만 우리나라의 단일 건물로서는 가장 긴 건물이며, 전면에 길게 다듬은 돌을 쌓아 만든 넓은 월대(月臺)를 놓아 사묘(祠廟) 건축으로서의 품위와 장중함을 나타내고 있다.
위의 건물과 같은 것인데 건물 아래 문이 정전을 들어오는 동문임
정정전 서쪽문
공신당 --조선시대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곳으로 정전 바로 맞은편 아래에 있음
종묘 정전 맞은편 아래에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공신당이 있음.
클릭하면 이름이 보임 !
정전을 들어오는 정문
악공청 --정전 서쪽에 있음. 지붕과 기둥만 있음 --지금은 마루도 만들어서 관람객들이 그곳에서 종묘제례 영상물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음
영녕전 입구
영녕전 (永寧殿) 보물 제 821호
영녕전은 정전에 계속 모시지 않는 왕과 왕비의 신위를 옮겨 모시고 제사하는 별묘(別廟)이다 세종 3년(1421) 정종의 신위를 종묘에 모실 때 정전의 공간이 부족하여 별도로 건립되었다. 현재 영녕전에는 중앙의 4실을 양 곁방(夾室)보다 높게 꾸미고 각 실에 태조의 4대조인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 (度祖) 환조(桓祖)와 왕비들의 신위를 모셨으며, 서쪽 제 5실부터는 정종과 왕비 , 문종과 왕비, 단종과 왕비, 덕종과 왕비, 예종과 왕비, 인종과 왕비 , 명종과 왕비, 원종과 왕비 , 경종과 왕비, 진종과 왕비, 장조와 왕비 , 의민황태자와 황태자비의 신위가 제16실까지 모두 34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이나 영녕전의 일부 구조에서는 옛날 법식을 따라 입구에 널판문짝을 달고 발을 쳤으며, 내부 각 실 사이에는 벽을 세우지 않고 발을 늘여 경계를 삼고 신위를 모셔 두는 감실(龕室) 앞쪽에는 휘장을 늘이는 방식을 썼다. 이는 지상의 건물이지만 신위를 모시는 특별한 집이므로 예로부터 전통수법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연녕전에 모신 신위봉안도
영녕전 들어가는 문 밑에 문양이 특이해서......
영녕전 신위 봉안한곳
영녕전 서쪽문을 나와서 본것
봄에 갔을 때만해도 공사중이었던 전시실 건물이 이젠 완성 돼 가지고 제사 지낼때 썼던 제기와 영상을 보여준다
이건물이 영상물과 제기를 전시한 곳임
이곳에서 상영 되는 영상물을 보시려면 이곳을 클릭--> 종묘제례 (동영상) 하세요.
제기를 둔 전시실--날이 흐린날이라 사진이 선명하지 못함
종묘 .....
저 앞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면 창경궁임--문밖으로 보이는 집은 창덕궁임 --창덕궁은 이곳에서 못감
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창덕궁 하지만 지금은 열리지 않는곳 --이곳은 예약을 해야 갈 수 있음 하루 5번정도
창덕궁안의 정자 ---담장 너머로 본것
종묘쪽 담장너머에서 찍은 낙선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