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싶었던 두물머리 오늘 드디어 딸과 함께 갈 수 있었다.
여기는 남한강과 북한강 줄기가 하나로 만나 한강을 이루는 뜻 깊은 곳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곳 양서면 양수리 일대를 큰 물줄기 둘이 머리늘 맞대는 곳, 즉 "두물머리" 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여기서부터 발원지까지의 거리는 남한강 즐기가 394.25Km, 북한강 줄기가 325.5kM에 이릅니다
이곳 두물머리 느티나무는 수령 400여년의 양평군보호수로 높이 30m 둘레 8m이며 , 한말 당시에는 말죽거리로 불렸습니다.
냇물을 건너 말에 죽을 먹이고, 느티나무 밑에서 쉬고, 주막집에서 목을 축이는 서울로 오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 느티나무 아래를 말을 타고 지나가면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아, 누구나 말에서 내려 공손히 걸어서 지났다고 합니다.
자연을 아끼는 우리 선조들의 미덕이 담긴 전설이며 오늘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전설이겠습니다.
****아래에 있는 계시판글을 읽기 불편하실까봐 적어 놓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말에서 내려 걸어가게 했다는 느티나무 ! 두물머리 느티나무는 수령 400여년된 양평군의 보호수 !
두물머리가 맞닿은 한강 !
두물머리 고인돌
한강 변에 연꽃밭이 있다 .여름에 연꽃이 필때 가야할 것 같다.
왼쪽은 한강 두물머리이고 오른쪽은 여름에 이쁘게 피었던 연꽃대가 보인다
두물머리 가는 길목이 아름다워서.....
두물머리 근처에 애벌레 생태공원이 있었다 . 생태공원에 살고 있는 거위 오리 청둥오리 멀리 닭장에 닭도 있고 .....
여름에는 유치원생이나 초등생들이 학습장으로 많이 온다는데 지금은 겨울에다 공원을 정돈하는 중이라고.......
드라이브 하는길에 아름다운 옛집이 있어 우릴 멈추게 했다 . 그곳에 신추당이라는 제사가 있었다
신추당 전경
위치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226-1
본 재실은 제정공 휘 신효창의 묘소와 인근에 산재한 현손까지 묘소 15위의 수호관리와 향사를 위해 만들어진 齊舍이며, 愼追堂이라 한다 .
제정공 휘 신효창[1136(공민왕13)~1440(세종20)]은 시조 장절공 휘 신숭겸의 15세손으로 평산신씨 제정공파의 파조이시다.
공은 1364년 탄신하시고 1383년에 급제 하셨으며, 1398년에 정난공신이 되셨고, 1420년에 좌군도총재, 1438년 풍수학제조를 하시고 1440년 8월 6일에 76세의 일기로 고종하셨으며, 사후에 좌의정에 추종되고 제정의 시호를 받았다. 配는 안동김씨 익원공 상락부원군 김시형의 女이시며, 두분 슬하에 4남 3녀를 두셨는데 장남은 인순부윤이고 차남은 지중추원사를 지내셨고 삼남은 증 좌의정이시고 사남은 현감이시다. 또한 임영대군(세종대왕의 4남)이 그의 외손서이시고 광평대군(세종대왕 5남)이 그의 손서이시다.
재실은 원래 마주 보이는 마을 중간에 있었는데 협소하여 1994년에 이 자리에 신축하였으며 건평은 73평 목조 건물로 동서제와 대문을 갖푼 전형적인 한식 건물이다.
후손은 현재 약 8만명이며, 향사는 매년 양력 4월 3일에 봉행한다.
명현후손으로서는 정국공신 평월군 신수린, 기묘영헌 신광록, 백의정승 송계 신계성 해동명필 신효중, 육우당 신경진, 삼도수군통제사 포도대장 신유 , 국무총리 신현학 , 내무부장관 신현돈 등이 있다.
평산신씨 종중
왼편 건물이 신추당의 뒷모습
신추당의 대문
신추당--낮으막한 담장 덕에 들어가지 못하게 자물쇠 해놓았지만 담장너머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맞은편에 보이는 집이 신추당
담장위에 지붕에도 신추라는 글이 .......
신추당의 담과 대문의 모습
신추당 아래 입구에 보이는나무와 정자.......
저녁놀이 아름다와서......
신추당 건너편에 있는 아름다운 옛집 그집엔 까치가 주인으로 집을 지키는듯 많은 까치가 있었다.
아마도 이집이 옛적에 쓰던 재실이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