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스님의 생가 문학 제험관
만해 한용운스님의 초상화
홍성을 빛낸 위인들
야송의 님의 침묵 산실 배경도
보는 쪽에서 왼쪽 사진 설명 :변절자를 길에서 만났는데 변절자라며 모르는 사람이라고 거절하고 돌아서 가는 만해.
보는 쪽에서 오른쪽 사진 설명 :만해는 심우장으로 거처를 옮긴 이듬해인 1934년 9월, 아내가 딸 영숙을 낳았다. 하지만 만해는 일제가 만든 호적 따위는 거뜰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라에서 주는 곡식이며 신발 옷감따위를 타올 배급표조차 받지 못했다. 물론 딸 영숙이 학교 갈 나이가 되어도 취학 통지서가 나올리가 없었다.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가르치는 학교에 안보내기로 결심한 만해는 딸 영숙에게 직접 한문과 한글을 가르쳤다.
만해의 글씨와 다른 스님들의 글과 전각
서당에서 대학을 배울때 그 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붓으로 지우고 있는 유천(만해의 아호)의 모습
주(註)란 : 내용이 어려운 책에다 유명한 학자가 알기 쉽게 뜻풀이를 해 놓은 것.
그 후로 신동이란 소리를 들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제안을 받아들여 서당에서 한학을 가르치는 유천
학생들 중에 유천(만해의 아호)보다 나이가 위인 사람도 있었으나 모두 유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어머니와 부인이 앞마당 멍석에 벼를 널어놓고 잘 살피라고 신신당부하고 밭일을 나갔다. 그러나 방안에서 책만 읽고 있던 유천(만해의 아호)은 참새들이 다 쪼아먹고 빈 쭉정이만 남아 있는 것도 몰랐다. 유천은 한 번 책을 읽었다 하면 옆에서 굿을 해도 몰랐다고 한다.
총에 맞고 마취도 않고 수술하고 있는 모습
보는 쪽에서 :왼쪽부터 만해스님 . 송만공스님. 백용성스님
만해 한용운스님의 글씨 " 전대법륜"
만해 한용운스님의 생가 동상곁에서
집안에 있는 우물 그르고 뒷쪽 사당이 보인다
만해스님의 사당
사당
사당문이 잠겨서 들어 갈 수 없는데 찢겨진 문 틈으로 찍은 만해초상
만해 생가에서 3~40분 거리에 간월도가 있기에 내가 좋아하는 굴과 굴밥도 먹을겸 그곳을 가고싶다했더니 친구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친구는 언제나 참 고맙고 좋다!
굴밥이 12000원인데 반찬도 맛있고 좋았다. 생굴은 천수만에서 딴것으로 따로 사 먹은것이다
멀리 간월암이 보인다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면도에 있는 안면암 (0) | 2016.12.29 |
---|---|
간월도의 간월암 (0) | 2016.12.28 |
안면도 김좌진 생가 (0) | 2016.12.28 |
계룡산 갑사 (0) | 2016.11.30 |
천안광덕산의 가을 (0) | 2016.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