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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사는법

백합사랑 2019. 1. 19. 09:00

인간답게 사는법

 

보통 세상 사람들은

물질을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정신을 제이의(第二義)로 삼는데서 삶의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정신을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물질을 제이의(第二義)로 삼아 정신과 물질을 조화시키는 데서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물질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권력자나 갑부는 고통이 없어야 하겠는데, 그들 역시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은 정신적인 양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현미경이 아니면 미균(黴菌)을 볼 수 없고 망원경이 아니면 원거리를 볼 수 없듯,

 

인간의 죄악상(罪惡相)은 성인(聖人)의 경전(經典)을 통하지 않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의 경전을 보아 자기의 주체성을 믿고 거기에 따라서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고해중생(苦海衆生)을 건지기 위해 상중하(上中下)의 그물을 쳐놓은 것이 불교의 교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상근대지중생(上根大智衆生)을 건지기 위해서는 고래를 잡는 것과 같은 그물,

 

중근기(中根機)를 건지기 위해서는 대구나 명태를 잡는 것과 같은 그물,

 

하근기(下根機)를 위해서는 멸치나 새우를 잡는 것 같은 그물을 쳐서 한 중생도 남음 없이 다 제도(濟度)하려는 것이 불타(佛陀)의 원력(願力)입니다.

 

상근기(上根機)는 문자를 의지하지 않고 바로 참선을 통해 도(道)에 들어가고,

 

중근기(中根機)는 교리적으로 문자에 의지하여 일심삼관(一心三觀) 삼관일심(三觀一心)의 도리인 관법(觀法)으로 도(道)에 들어가고,

 

하근기(下根機)는 참선(參禪)에도 교리에도 해당되지 못하므로 관세음보살·석가모니불등의 명호(名號)를 외거나 기독교의 주기도문과 같은 주력(呪力)으로 도(道)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전문가처럼 입산수도(入山修道)를 해야만 도(道)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근기(根機)에 따라 상중하(上中下) 어느 문호(門戶)든지 알맞게 택하여 수시수처(隨時隨處)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밤새도록 가는 길에 해 돋을 때가 오는 것이지요.

 

비록 도(道)에 들어가는 문이 상중하(上中下)의 차별이 있다하더라도 들어가고 보면 한 자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인(古人)의 말씀에 발심(發心)은 유선후(有先後)어니와 오도(悟道)는 무선후(無先後)라,

 

즉 발심(發心)은 선후(先後)가 있을지라도 도(道)를 깨닫는 데는 앞뒤가 없다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