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북악산 서울성곽 : 1.21 김신조 사태이후 40년이 가깝게 북악산의 출입이 금지 되었었는데 2007년 4월 5일 식목일을 기점으로 국민에게 개방은 되었으나 초기에는 절차가 좀 까다로와서 가기를 망설였으나 7월 초에 개인도 주민증만 가지고 가면 등산이 허락 된다하여 아름다운 북악산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북악산 서울산성은 돌계단이 많아서 등산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나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 들은 오르기가 좀 힘이 드신다 그래서 힘이 덜 드는 . 말바위 쉼터(와룡공원 )쪽 (안국역2번 줄구나 -초록버스 종로 02번 탑승하여 종점 -성균관대 후문에서 하차 후 걸어서 10분 와룡공원 -에서 오르는길 )이나 , 홍련사 쉼터 쪽 (삼청각 옆)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 초록버스 1111번, 2112 번을 탑승하여 종점(명수학교)에서 하차 오르는 길로 가심이 좋을것 같다.
창의문(자하문)쪽은 내려오기도 힘든 계단으로 되어있다 ( 약 20분 정도 내려 와야 하는데 층계 사이가 높아서 매우 힘이 듦 )
위사진은 성균관대 후문쪽으로 올라가서 보이는 성곽 입구쪽
서울성곽
지정번호 : 사적 제 10호
시대 : 조선 태조 5년(1396)
소재지 : 서울 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일원
1392년 개성 수창궁에서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는 즉위한 지 한 달도 못 되어 한양천도 계획을 명하고, 태조 4년(1395) 경복궁, 종묘, 사직단의 건립이 완성되자 곧바로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축조 계획에 따라 서울성곽을 수축하기 시작하였다.
평지는 토성, 산지는 석성으로 계획되었다. 이 방대하고 시급한 사업을 농한기에 완성하기 위하여 이듬해인 1396년 1,2월의 49일 동안 전국에서 11만 8천 명을 동원하여 성곽의 대부분을 완공하였고, 가을 농한기인 8,9월의 49일 동안에 다시 79, 400명을 동원하여 봄철에 못다 쌓은 동대문 구역을 완공하고 4대문과 4소문을 준공하였다.
그 후 27년이 지나 세종은 서울성곽을 전면 석성으로 수축하는 대대적인 보수 확장 사업을 벌여 세종 4년(1422) 1월 겨울 농한기에 전국에서 약 32만 명의 인부와 2,200명 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완공하였다. 당시 서울의 인구가 약 1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공사였고 , 사망자만 872명에 달했다. 이것이 지금 서울 성곽의 골격이다.
이후 서울 성곽을 재정비 했던 숙종 30년(1704)까지 260년간 서울 성곽은 부분적인 보수만 있었을 뿐 큰 붕괴는 없었다, 본래 서울 성곽은 도성을 방어할 목적으로 쌓았지만 정작 임진 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울성곽은 큰 전란에서는 제구실을 할 수 없어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였기 때문에 전란으로 인한 큰 피해는 없었다.
임진왜란의 경험을 토대로 인조는 서울 성곽과는 별도로 전쟁에 대비하여 남한산성과 강도성(강화도 산성)을 수축하였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삼전도 맹약 중에는 조선은 앞으로 기존 성곽을 보수하거나 새로 성곽을 쌓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어서 서울성곽은 방치된 상태로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704년 숙종은 일부 신하들이 청나라와의 조약을 들어 반대하는 것을 물리치고 서울성곽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나아가 북한산성까지 쌓으며 도성의 방어체제를 정비하였다. 이것이 근대사회로 들어오면서 의도적으로 헐어내기 이전의 서울 성곽이다.
이후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 전차를 부설하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곽 일부가 헐려 나갔고 , 이듬해는 용산과 종로 사이 전차 부설을 위해 남대문 부근을 철거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서대문과 혜화문(동소문)이 헐리며 사실상 서울의 평지 성곽은 모두 철거되어 오늘날에는 총 길이 8.2km 중 산지 성곽 10.5km만 남게 되었다.
2006년 문화재청과 서울특별시는 서울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하여 서울 성곽을 가능한 한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그 정비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곳곳에 시민을 위한 전망대가 있다.
성벽 아래로 보이는 마을
전망대에서 보이는 경복궁 --투명하게 맑은 하늘은 아니지만 북악산의 맑음 때문인지 전망이 아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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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에 이어진 숙정문과 소나무 !
숙정문의 뒷모습
북안산의 아름다움은 소나무들의 푸르름 때문에 더욱 빛나는 것 같았다 ---곳곳에 소나무 색깔이 환상이다!
숙정문 전면을 찍으니까 빛이 들어가서 .....
숙정문 루각에 들어가는 문 --누각에서 보이는 시내와 삼청각은 매우 아름다왔다.
숙정문 루각에서 보이는 삼청각(9시방향에 제일 큰집)과 서울시내
이곳은 촛대바위 전망대 ---북악산에는 3개의 유명한 바위가 있는데 촛대바위, 해태바위, 말바위 ---
촛대바위! (12시 방향"쯤에 자세히 보면 바위 위에 초를 꽂은 것 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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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맑아짐인지 서울시내가 더욱 선명해 보인다.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는 대신 많은 계단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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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이 눈앞에 펼쳐진다 !
북악산 위의 소나무들은 보기 드문 아름다운 소나무들이었다. 말그대로 군자송이었다.
북악의 식생
경복궁의 진산인 북악은 높이 342m에 이르며 화강암으로 주를 이룬 돌산으로, 산 능선을 따라 조성된 성곽 주위로 수목이 00(글씨가 파손되어 않보임)어져 있다 .
특별히 소나무는 조선 개국초부터 특별 보호 대책을 세워 관리 되었다.
조선조 내내 잘 보존 되어온 소나무 숲은 일제 강점기 이후 숲이 방치 되면서 능선 주위에만 주로 살아남아 오늘에 이른다. 북악산은 근 40년간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은 덕분에 식물들이 잘 보존된 천연의 공간이 되었다.
지금 자라고 있는 식물은 208종류이고 그 중 나무는 81종이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 키 큰 나무 (교목류)로는 소나무, 팥배나무, 때죽나무, 산벚나무 등이 있고 키 작은 나무 (관목류)로는 진달래, 철쭉, 쥐똥나무, 국수나무 등이 있다. 바늘잎나무로는 소나무가 대부분이며, 넓은잎나무는 참나무등 여러 종류가 섞여 자라고 있다. 그외 성곽 주변에 아까시나무 , 은수원사시나무, 리기다소나무 등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하여 심은 나무와 최근 조경수로 심은 스트로브잣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팥배나무 군락은 숙정문 일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북악산 특유의 식생이다. 팥배나무를 비롯한 새먹이가 될 수종이 많기 때문에 새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1. 21 사태 소나무 : 1968년 1월 2일 북한 124부대의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할 목적으로 침투 하였을 때 우리 군경과 치열한 총격전이 벌여졌다. 이때 수령 200년이 된 이 소나무에는 15발의 총탄 자국이 남게 되었다. 이후 이름이 1.21사태 소나무라 명칭 되었다.
북악산 정상에 있는 표지석 !
백악산(북악산의 옛 이름 ) 정상이다 !
북악산성에서 보이는 주변 산들은 참으로 웅장하고 멋져 보였다.
제가 욕심이 많은 탓에 사진을 너무 많이 올려서 인지 가끔은 이곳 사진 아래에 있는 사진들은 보이질 않네요.
만약 아래 사진이 보이지 않으시면 [목록열기] 다시 클릭하신후 다시[북악산 서울성곽]을 클릭해서 오세요.
오르는 계단도 힘이 들었지만 이런 계단을 약 20분간을 내려 왔더니 무릎이 아파요!
층계 사이가 너무 높아서죠.
근데 이계단이나 성곽을 쌓으셨던 분들을 생각하니까 마음 아파요.
농한기에 쉬지 못하고 일을 하셨던 분들 ,
빈몸 오르내리기도 힘든 상황인데 돌을 져서 나르며 쌓으셨을 분들
감사하고 죄송하고 .......
돌고래 바위라는 -- 자세히 보니까 고래를 닮았어요!
마지막 관문인 창의문 !
클릭하면 더 자세히 보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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