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선생님 !
대산선생님의 80회 생진을 기념하기 위해서 문하생들이 선생님을 뫼시고 學易址 탐방에 나섰다
대산선생님은 야산선사의 수제자이시며, 야산선사는 율곡 선생님께서 정리 다 못하신 대학을 정리하신분이시라 하며, 6.25가 날 것을 날짜와 시간까지 예시하시었다하며 주변에 300호의 주민 1500명 가량을 안면도로 피난 시켜서 다 무사했다하며 그중에 군에 갔던 분들도 한명도 빠지지 않고 무사귀환을 하게 되었다함
대산선생님 탐방준비위원장이신 변호사님, 야산선사님의 손자님, 대산선생님 ,대산선생님 바로 등뒤의 보라색옷을 입으신분은 대산선생님 사모님이심
대둔산 석천암 가는길
야산선사와 인연이 깊은 석천암 ---더많은 내용은 한겨레 신문에 날것으로 알고 있음 --이번 여행에 기자님과 사진기자님 동행 하였었음
석천암 계곡을 오르다 보면 선녀탕이 있는데 ......
석천암 오르는 길은 돌길로 험하다
어떤분도 힘든가보다 여기저기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나는 사진 찍기 바빠서 쉴 시간이 없다 ㅎㅎㅎㅎㅎㅎ
한시간쯤 올라오니 석천암이 보인다
대둔산 석천암은 대산선생님께서 주역공부를 하고 싶어서 야산선사님을 찾아가시어 처음 만남을 가지신 곳 --이때 이곳엔 야산선사님과 제자 15~6명이 함께 주야로 열심히 공부하고 계시었다함
이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石泉水 그래서 石泉庵
마이크를 잡으신 분이 야산 선사님의 손자 되시는 분으로 대전에서 주역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 !
나는 이 모임에 자격은 없지만 친구가 이모임에 간사이다보니까 친구빽으로 좋은 모임에 동참을 할 수 있었음
옛그림이 좋은데 사진이 흔들려서 아쉽지만 ~
석천암 -- 예전에 야산선사께서 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셨다함 이곳을 거처간 제자가 일만 몇 천명이 넘는다 하며 한때는 108명이 함께 이곳에서 공부를 하였다함 서향으로 된 집이었었는데 지금은 남향인지?
그곳에 상주하시는 스님께서 앞으로 예전 모습으로 다시 수리할 예정이라는 말씀을 하셨음
소똥구리 라는 벌레인데 , 나는 생전 처음 보았고 실제로도 귀한 벌레라고함
앞쪽이 보고 싶어서 뒤집어 달라고 부탁을 하여서 --- 사진만 찍고 다시 풀어주었음
이곳은 대산선생님께서 젊은시절 한의원을 하시면서 동네 주민들의 병을 치료해주시던 곳이라함
대산선사께서 사시던 곳을 찾아보며 지금도 그곳에 살고계신 어르신도 만나뵙고~
선생님 댁 툇마루에서 보이는 아랫집과 앞산
선생님댁을 본후,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을 이런길로 걸어서
대산선생님께서 서당을 하시던 집 -- 지금은 집이 비어있음 .
개태사 입구 문
대산선생님의 댁을 나와 얼마를 다시 논산으로 와서 개태사라는 절엘 온것입니다
개태사 입구 두 번째 문
개태사 앞에서 대산선생님께서 이곳과 야산선사에 관한 역사를 말씀하여 주시고 계심
이절은 야산선사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이곳에 단군을 모신 전각이 있는데 그 전각은 야산선사의 힘?으로 짓게 된 것이라함
개태사 용화대보궁 안에는 석불 입상이 계십니다
용화대보궁 안에 모셔진 석불 삼존불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보물 219호
위치 :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108
고려 초기 개태사 건립(940년)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미타삼존석불이다. 아미타불은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부처님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신체가 원동형으로 처리되어 신체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다. 머리는 소발에 정수리가 큼직하며, 얼굴은 둥근 역삼각형이나 큰 눈에 비해 코와 입은 작은 편이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만 둘렀고, 손 모양은 중생을 보호하여 모든 두려움을 물리쳐준다는 시무외인이다. 좌. 우 협시보살은 본존불과 같은 수법이나 어깨와 가슴 등은 좀더 부드럽게 표현되었다. 天衣 자락도 형식적이지만 뚜렷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단정하면서도 통통한 몸집, 큼직한 두 손과 부피감 있는 팔, 다소 두꺼워진 옷자락 등 전반적으로 조각의 선이 굵고 강하여 후삼국을 통일한 초기의 굳건한 기상이 드러나 있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석불로 그 가치가 크다 할 수 있다
개태사 內 한 편에는 특이하게도 단황(단군을 일컷는 말)을 모신 전각이 있습니다
창운각 --단군상을 모신곳 --야산선사의 청으로 모셔지게 되었다함
나한전인것 같습니다
개태사에서 사용하던 철제 솥으로 민속자료 제 1호 이며 고려시대 것임
철확을 한 바퀴 돌며 찍어 봤음
다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
대산선생님 조상님 묘소
대산선생님 고향길 너무 즐거우신지 날으듯 가시는 모습 어찌나 빨리 가시는지 ?
함적2리
대산선생님 고향마을
대산선생님께서 사시던 집
야산선사의 묘비
이곳은 야산선사의 묘소로 ---야산선사께서는 사후에 산소를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자손들이 말을 않듣고 이렇게 모셔 두었다함
이곳은 야산선사의 묘소로 ---야산선사께서는 사후에 산소를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자손들이 말을 않듣고 이렇게 모셔 두었다함
하루 종일 강행군으로 다닌후 부여 청소년 수련원에서 하룻밤을 자고
계백문 위의 공원
어제 하루 종일 강행군으로 다닌후 부여 청소년 수련원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아침부터 탐방은 계속 되었음
이곳은 부여 계백문 위의 언덕에 야산 이달선사님의 講易事績碑 (강역사적비)를 모셔 놓은 곳임.
사적비를 보고 마지막 코스인 안면도에 삼봉해수욕장으로 해신제를 지내러 갔음
대산 선생님 수하에 계셨던 분들이 대산선생님께 질문을 한다 " 선생님 생전에 해신제라는 것이 처음인데 왼일이신가요?" 하고 묻자
예전에 야산선사 생전에 이곳에서 해신제를 지내신적이 있다는 말씀을 하시며 그때에 야산선사와 함께 제를 올렸던 분(오늘 이자리에 참석 하셨었음 )이 알려 주셨다하며
대산선생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히시네요."어떤일을 일부러 하려고 함이 아니고 그렇게 하게됨이 바로 주역이다! "고 말씀하신다 . 묘하게도 올해가 정해년이며 그래서 그렇게 하게 되었나보다고 말씀하신다.
해신제를 지내려고 삼봉용굴 앞으로 모여드는 일행들
해신제를 지내시는 모습
삼봉용굴
야산선생님 손자분과 기념사진도 한장
삼봉용굴 앞에서
이날 한겨례 신문에 난 대산 선생님에 관한 기사를 보시려면 http://blog.daum.net/hyeanj/13584581= 클릭하세요!
http://blog.daum.net/hyeanj/13567264 대산선생님 학이지탐방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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