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사천성 (금사유적박물관, 세계문화유산인 도강언과 청성산)

백합사랑 2008. 4. 24. 11:58

3000년전 고대 촉(蜀)나라  도읍지 금사(金沙)궁전 유적지

 

사천성 성도  아파트 건설을 하기위해 부르도자로 땅을 파던중 유적지를  발견하게 되어 공사는 못했지만 인류문화역사의 귀중한 보물들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천성 성도에서는 2006년 8월 16일, 금사유적지에서 출토된 태양신조 금장식문양이 중국문화유산의 상징으로 공포되면서 사천성박물관 문을 닫고 금사유적 박물관을 더욱 확대 전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무사랑이 정식 회원은 아니지만 동행하게 된 분들은 한국전통예술학회 회원님들로 홍박사님을 중심으로 인간문화제님들을 비롯하여 여러 예술가님들과 카리스마 강국장님의 추진으로 이번 여행에 많은 역사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가면 (金沙)금사유적지에서 출토된 태양신조 금장식문양

(태양신조의 금장식 문양은 중국 문화유산의 상징문양이기도 하며.

이 문양을 보면  圓의 한 가운데 태양을 상징하는 불꽃문양이 있고, 가장자리에는 세 개의 발톱을 가진 날으는   새(鳥)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을  왕모래?(모래가 굵고 지압하기 좋게 보였음 ㅎㅎ) 위에 세워 있었습니다.


 3000년전 고(蜀)촉  도읍지 금사(金沙)궁전 유적지 --금사박물관1관  지하관


 3000년전 고촉  도읍지 금사(金沙)궁전 유적지 --금사박물관1관  지하관

 

 사진은 신선생님작

 

 3000년전의 생활 모습을 아주 큰 벽에 그림(일부)으로 전시

 

 금사유적박물관 안에 있는 유물로 솥인줄 알았는데 뒤의 그림을 보거나 설명을 보면 우물 입구인것 같음


 중국에서 발굴된 고대유적 중 제일 오래된 것으로  그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흙으로 만들어진 제기들


 금으로 만든 제기의 조각들 --

 

천연옥돌

 금사유적지에서   발굴된  미이라 -- 유적지 지하층에  안장 되있음

 

 금사유적지에서 발굴된  코끼리의  상아(2m크기임)

 

 

 거북-  점괘를  볼때 사용 되었던 것으로 보임

 

 甲卜--이라는 명제가 붙어 있었음 -- 거북의 등을 뒤집고 그 곳에 하도의 숫자를 적어 놓은 것

 

 옥으로 만든 장도

 

' 태양신조 금장식문양'이  잘 보존 되어 있어서 금방 만든 것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왔음

 

 

 금면구와 금관대

청동 인형상 

 

 

 

 

 

 (이나무 뿌리는 화석인지?  유물관 지하층에 잘 보존 되어 있으며 위에는 유리로 덮개를 씌워서 우리가 밟고 서서 내려다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음 얼마나 큰지? 사진이 흔들려 아쉽네요.)

 

일일이 많은 유적 사진들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1500여점이 넘으며 희귀하고 진귀한  보불들로서 위에 올린 몇개의 사진에 있는 태양신조, 황금가면 , 금관과 금띠 등과 그밖에 은행나무, 메타쉐쿼이아(수삼나무) , 녹나무 등의 고목들이 있으며 유적관 건축면적이 7588평방미터라고 함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다시 도강언(都江堰)으로 발길을 재촉

2000년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인 도강언은 전국시대(BC 403-221) 진국(秦國)의 관개시설로 사천성의 성도(成都 Chengdu)북쪽 민강에 위치하며 .오늘날에도 5,300km의 토지에 용수를 공급하는데 사용하고 있으며 . 그옛날 도강언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해마다 홍수로  민강주변 주민들을 못살게 만들었었는데 이곳 태수 이빙(李氷:Libing)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물의 흐름을 조사하여 수원을 찾았다.

초여름에 민산의 녹은 물이 민강으로 흘러 넘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 이빙은 강을 나누어 한 쪽을 농장지대로 흐르도록 했다.  하지만 커다란 문제가 있었는데, 성도평원의 입구를 가로막고 Yulei Mountain(바위산)이 그것이다. 그는 산을 관통하는 길을 내기 위해 바위를 깨려고 했으나, 바위가 너무 단단했다. 그래소 그는 나무와 풀들을 가져다 바위에 불을 놓은 후 찬물을 부었다. 바위는 약해져 금이 갔고 이를 깰 수 있게 되었다. 이 공사는 6년(BC 256- 251) 이 소요되었고 마침내 평원에 이르는 20m 폭의 수로를

완성했다. 농부들은 보병구(寶甁口: Baopingkou, Bottleneck) 라 불렀다. 이빙이 강의 물길을 나누었으나 평원쪽으로 흐르는 물의 양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빙은 인공섬으로된  제방을 쌓아서 보다 많은 물이 보병구쪽으로 흐르도록 했다.

 

강의 한가운데 인공제방을 쌓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빙은 자갈과 점토를 이용하여 기초공사를 하였으나 물에 휩쓸려 나갔다. 그는 커다란 호박돌을 사용했으나 이 역시 홍수 때 흩어져버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각기 수십m 길이의 거대한 대나무 바구니를 만들어 그 안에 호박돌을 놓았다. 이것을 수백 개 만들어 강 가운데 설치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빙은 여성들이 대나무 바구니에 옷을 담고 빠른 물살에 씻겨나가길 기다리는 것에서 이를 착안했다고 한다.

이런 견고한 기초 위에 이빙은 큰 섬을 건설할 수 있었다. 사나운 물살을 억제하면서 기존 강 줄기를 따라 섬을 곡선지게 만들었다.  섬은 Yulei산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제방 공사가 끝나자, 더 이상 홍수의 발생이 생기지 않았다. 이 관개사업은 사천지방의 농업생산에 막대한 기여를 하였다. 이빙은 이 곳 사람들에겐 위대한 지도였다 도강언 동쪽엔 이빙을 기념하는 사당이 있다


*오늘날 도강언은 유명한 관광지며, 독창성으로  세계 학자들이 감탄하는 곳이다.   오늘날의 댐과 다르게 거대한 벽으로 막은 도강언은 아직도 물을 자연적으로 흘러가게 하고 있다.   오늘날의 댐에선 물고기가 상류로 올라 가는데 제약이 많은데,  수면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2000년 도강언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번 5월 12일 대지진으로 이곳 이빙의 사당인 이왕묘도  많은 피해를 입어서 가슴 아프고 빠른 복구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빙과 그의 아들을  모신 묘'로서 이왕묘라함 . -- 태수 이빙과 그의 아들이 도강언을 만들어 홍수로 부터 많은 주민을 구해주어,    그곳 주민들이 그를 왕으로 받들었다함

 

도강언 입구에 있는 공중전화가 눈에 띄네요 

 

 진언루-- 도강언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진언루의 조각,  이사진은 김치중선생님작

 

 진언루에서 보이는 도강언 --사진 중간 오른쪽 끝이 도강언 저수지 공사를 한곳

사진 왼쪽에 있는 것은 흔들다리로  나무사랑 걸어가다가 중국인들의 장난기로  혼이 난곳 ㅎㅎ


 

 

 진언루 지붕끝이 뾰죽하고 아름답다. 처마 끝마다  위로 뾰죽 올리고 그 옆엔 각각 다른 동물상들을 두었다.

 도강언 전경 - 신선생님작

 

 이다리는 길이가 261m로서 명나라 말기에 훼손 되었으나 서기 1803년에 하선덕부부의 창도하에 다시 세웠으며 당시"부부교"라고도 불리었다함.

강언 위에 부부교 (흔들다리 )- 이다리를 건너는데 어찌나 흔들리는지 물로 빠지는줄 알았는데...  장난꾸러기 중국인들이 나무사랑 힘들라고 ~~~  참내 !

 

 

다리 위에서 바라본 도강언 서쪽 --왼쪽 산꼭대기에 정자들이 동양화에서나 봄직한데 ..... 날이 흐려서 조금 아쉽지만

사진 클릭하면 산위에 정자가 잘 보여요!

 

  도강언 위에 다리(부부교- 흔들다리)를 다시 세워준 하선덕부부상

 

 수십m 길이의 거대한 대나무 바구니를 수백 개 만들어 그 안에 호박돌을 넣어서 강 가운데에 넣었던 , 모습을 재현해 보여주고 있는 것  

 

  아래에서 본 5층루각 진남루

 

 진남루를 지나 이왕묘로 가는 다리

 

  다리 위에 나무를 살리기 위해 담장을 뚫어준 모습

 

 이빙과 그의 부인을  불상처럼 만들어 모신 전각

 

이왕묘 부속 건물들의 지붕엔 여러가지 동물로 장식을 했는데 그중에, 김치중선생님작

 

 

 이왕묘 부속 건물들의 지붕엔 여러가지  장식을 했는데 그중에, 김치중선생님작

 

  이왕묘 부속 건물들의 지붕엔 여러가지  장식을 했는데 그중에, 김치중선생님작

 

 

 이왕묘 정원- 여행에서 만난 멋지고 아름다우신 언니(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 이수자)

 

 이왕묘 경내

 

 이왕묘 경내

 

 

 

 

 문위 장식 확대 사진 , 김치중선생님작

 

 

 이문을 나가면 왼편에 도강언이 있습니다.

 

점심을 먹은 식당 문앞에 호도로 만든 커다란 호도병? 내키보다도 크다 ㅎㅎㅎ


 점심을 먹었으니 다시 청성산 도교인들이 살고 있는 도교의 발원지를  향해서 .......볼것은 많고 시간은 자꾸만 간다

청성산은 년 강우량이 1500~2000mm, 아열대 기후로 제주도 보다 남쪽이며 여름덥고(때론 45도) 겨울 춥다

 

 짼푸꿍(建福宮)

짼푸꿍, 원명은 짱런꽌(丈人觀)이고, 宋孝宗 춘시년간에 짼푸꿍으로 개명되었습니다. 짼푸꿍은 팔백리칭청의 제일봉이며 천하에 이름을 떨친 천년경관이기도 합니다.

짼푸꿍은 뒤로 암복을 등지고 아래로 시내물을 림하고 있으며 녹나무가 우거지고 전당이 우람차며 많은 고적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짼푸궁 정전에는 벽화가 있는데 그중 송조 쑨타이구(孫太古)가 그린 판창썽정꽌투 그림이 제일 유명합니다. 시인 루여는 벽화글 보고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신선으로 되여 하늘을 날지만 세속을 잊지 않으며, 금표는 마치 위사중의 왕 같기도 하구나> . 건복궁 후전에는 천하제3으로 불리우는 청조사람 리산찌(李善濟)가 지은 394자나 되는 대련이 있습니다. 이 대련은 情과 景이 적혀져 있으며 기세가 넘쳐납니다.

짼푸꿍옆에는 또 명경부 왕비께서 쓰던 화장대가 있으며 궁뒤에는 워이신팅(委心亭)과 乳泉이 있습니다.

 

 청성산(靑城山) 입구

청성산은 도교발원지의 하나로 중국의 유명한 도교명산이며 도강언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곳으로. (청성산의 뜻은 나무가 울창하게 둘러 쌓임이 나무로  성을 쌓은 것처럼 푸르다는 의미)

사천성 도강언시에 위치한 청성산은 동천복지(洞天福地) 인간선경(人間仙境) 청성천하유 (靑城天下幽)라는 미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의 기후는 아열대기후임 .

청성산은 앞산과 뒷산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앞산은 경치가 수려하고 문화유적이 많고 뒷산은 자연경관이 신비하게 아름답고 아늑하여   무릉도원처럼 보입니다.

앞산은 청성산 풍경명소의 중심부분으로 면적은 약 15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데 아름다운 산수속에 많은 문화재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중 대표적인 것은 짼프궁(建福宮) 천연도화(天然圖畵) 천사동(天師洞) 조양동(朝陽洞) 조사전(祖師展), 상청궁(上淸宮) 등.  당(唐)조에 건설된 건복궁(짼프궁)은 규모가 아주 큰데 장인봉 기슭에 위치했고 앞으로 맑은 시내물이 흐르고 주변에는 울창한 고목이 에워싸고 있는 그윽한  환경으로 송(宋)조 시인 陸放翁은 시를 써서 이 궁전을 노래했는데 이 궁전은 또한 청성산 등반의 입구에 있습니다.

 

 

 청성산 입구 문의 지붕 장식 --중국 지붕에는  많은 장식  한것을 보게 된다,  김치중선생님작

 

 

 칭뤼쑤(情侶樹)- 앞에 보이는  두 그루의 나무에 대한 전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날 칭청에는 차녀 남향과 소동 쓰난이란 한쌍의 연인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신혼날 산톱이들이 길을  막아 신부를 체포하였고 온갖 힘을 써서 남향을 구하려던 쓰난은 나중에 상처투성이가 된채 길옆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밤중

 산톱이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남향은 산을 내려 신랑을 찾다가 이미 숨 진 쓰난을 보고 비분한 나머지 목매여 자진해 버렸습니다.   한 밤 큰비가 지난후 두사람은 자취를 감추었고 큰길 한가운데 쌍을 이룬 두그루의 나무가 생겼는데 한그루는 옷이 다 망가졌고 다른 한그루는 상처투성이였답니다. 

 

 

 天師洞--청조에 건설된 곳


 청성산을 오르기 위해 월성호에서 1분정도 배를  타고 건넘  ㅎㅎ

멀리 12시 방향에 있는 배 마치 집처럼 생겼음

 

 이 배를 1분 정도 타고  월성호를   건너서 

 앞에 보이는 육지에 도착하여 조금 올라가면 다시 리프트를  30분 정도 타고 내려서   

 

 


 리프트를 타고 가다보면 산기슭에 불화나 전설을 그린 그림이 보임

 

계단을 한참 걸어   도교암자 들을  보고 또 다시 계단을 오르면 또 암자 .........

이렇게 40분 가량에 많은  계단을 오르며 암자를 보게 된다.

 

 분위기는 마치 불교사원 같지만 도교사원은 주로 검은 색을 많이 썼으며, 도인들의 복장도 검정색으로 입고 있었으며 머리는 위로 올려 묶었거나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신선을 모셔놓은 곳

 

 

 上淸宮! 드디어 제일 꼭대기 층까지 왔네요 .

청성산의 많은 도관(도교 사원)들 가운데 '宮'이란 말이 들어간 곳은 本殿임을 의미하는 상청궁이 유일하다

정도릉이 수행했고, 지금도 여전히 도교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天師洞,  천사동의 '天師' 란 장도릉을 일컫는다. 천사동은 그가 도를 닦았다는 천연동굴 앞에 7세기 초에 세워진  도관으로, 그가 이렇게 꼬불꼬불하고, 가파르고 좁은 천험의 땅을 찾아 도를 닦은 이유는 이곳이 洞天이었기 때문이다.   장도릉은 한나라 초기의 유명한 책사 張良의 8대 손으로 키가 구 척 팔촌이고, 짙은 눈썹, 큰 뺨, 붉은 정수리, 녹색의 눈을 가졌다고 전한다. 힘이 장사라 한번 움직일 때마다 산을 움직일 정도였다는 것이다.

머리도 좋아 일곱 살  때 벌써 노자의 '도덕경'을 마스터했으며, 나이가 든 후엔 수행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가 '도를 터득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많은 추종자들이 생겨났는데, 그는 그들에게 육체의 불멸과 장수를 약속했다고 전한다 .

그런 제자 중의 하나가 진시황 때의 徐福 또는 서불이란 자다.     시황제가 불로장생하기를 원하는 것을 알고 서복은 황제에게 나아가 동해(즉 황해)에 선ㄴ산이 있는데, 그곳에는 불로장생케 하는 약초가 자라고 있다고 진언했다.

 

 

 

 

 

 도교 암자에 수도하는 신선님? 들 아니? 도인님들(원래 神과 仙이 나뉘어 지는 것이라함  神인은 깨달음의 경지에 간사람  선인은 아직 인간의 경지를 못벗어난 신선)

도교인의 모습이 진짜 神 仙  같은 해맑은 모습,   장기알의 크기가 ? ㅎㅎㅎ

 

 돌계단을 오르기 힘이 들어 이렇게 메고간다 --나도  집에서 떠날 때는 저렇게라도 오를 각오로 갔는데 연세 많으신 교수님들 걸으시는 앞에서 차마 .......

더우기 타지 않고도 오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오르는 값이 200(약 3만원 정도)위안이라는데

  

 난간에 사람의 상을 조각해서......중국인들 손재주는 알아줘야 한다!   ㅎㅎ

하루 종일 관광하느라 힘들었으니 '화궈'라는 사천요리로 에너지를 충전하겠습니다

 사천성(사천요리는 중국요리를 대표하는  4가지 (사천 ,광동, 호남, 산동요리) 중 한가지로-   유명하다는 화궈 요리로 유명한 집에서 ㅎㅎ(화궈요리가 생기게 된 유래는 전쟁중에 산중에 있는 병사들이  빨리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커다란 솥에다가 있는 재료를 모두 넣고 끓여서 오며가며  빨리 먹던 음식이었다함 )

 

 

 

 

 

 많은 야채와 생선,  고기 등을 매운 육수와 안매운 육수 속에 넣어서 건져 먹는 것으로 매운 국물은 고추와 조피(산초)를  넣은 것으로 매울뿐만 아니라 혀가 굳는 느낌입니다.  건더기만 건져 먹어야지 국물은 절대로 먹으면 않된다는 가이드의 말을 먹어 보면서 알게 되는 음식으로 얼마나 매운지 먹으면 목이  타고 굳어지는 느낌으로  헉헉 ~

이런 맛을 사천성 사람들은 안매울까 ? 걱정을 한다니?

한국인들 매울까 걱정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