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가고 싶었던 동강 그리고 단종대왕묘 장릉을 보고

백합사랑 2008. 8. 17. 08:12

 아름답다는 동강이 보고 싶었는데  가는길을 몰라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중  자주 이용하는 여행사 안내장에 동강 레프팅이라는 소개가 나와 있다 .

가고는 싶은데,   레프팅?  수영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는 내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

일단 가서 레프팅은 하지 않고 주변 구경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야겠다고 하고  연수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동강 레프팅에  간다고 말을 하니까

의아한 표정으로 보면서 엄마가?    한다  ㅎㅎㅎ

 동강이 가고싶은데 그냥 가는 코오스는 없고 동강레프팅이 있어서 ........

아들은 기왕에 동강을 보려면 레프팅을 해야만 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까 레프팅을 해서 그곳도   보고 오라 한다 .

 

내가 탈 관광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청량리역에서 아침 7시 37분출발한다는 임시  새마을관광열차로 영월역까지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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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열차에서  팔당쯤인지? 아름다운  한강 상류가 보인다

 

양평대교 중간쯤에서? 보이는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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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자주  이용하는 아름다운  양평 부근

 

 

 집에서 나올때도 우산을 받을만큼의 비가 내려  레프팅 가는날 비가내려서 ?...........

걱정을 했는데 가다보니 하늘이 개어있다 . 괜한 걱정을 했구나 !

 

 

 클릭하면 크게 보여요!멀리 산 아래 구름이 춤춘다

 

 

  클릭하면 크게 보여요!강원도쪽엘 가다가 보면, 다리가  너무 높아서 아찔한 곳이  여러 곳 있는데 그 중에 한 곳인 높은 다리가  멀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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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시골풍경

 

 

 풍경을 즐기는 사이 벌써 3시간 10여분이 지나 영월역에 도착했다.

 

 영월역에 내리면  관광가이드와 차량이 나와서 기다린다하여 역에서 두리번 거리며 관광버스를 찾았다 그러나 관광버스는 보이지 않고 한 총각이 보여서 혹시 00여행사에서 온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총각 저 앞에 초록색버스와 봉고 .......

무슨 말인지 몰라 "어디요?"  하자 "저기요!" 한다.

난 머리에 관광버스만 떠올리니 관광버스가 보이질 않는다.ㅎㅎㅎ

길건너엔  초록색 미니버스와 그옆엔 허름한 봉고가 있다.

그런데 초록색버스쪽엘 갔더니 같은 열차를 탔던 사람들이 그차를 탄다 . 그제서야 나도 올라탔는데 ......

모두 놀란 표정들을 한다.ㅎㅎ

생각했던 관광버스는 없고 겉은 멀쩡해 보였는데 속에 들어오니 페차할 차 같이 보였다.사람들은 걱정을 한다  이차로 동강까지 갈 수 있을까?

내가이용하는 여행사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무슨일이?

하긴 그여행사가 직접하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여행사에 내가 맡겨진 것 같다.

암튼 차에 쓰여진 '농작업대행 및 위탁영농' 이라는 말대로 우리가 고생은 되더라도

그 고장 주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이것쯤은 얼마든지 감수해야지 ........

 

 

 

 작은 버스  가운데 통로까지  보조 의자를 꺼내 25명의 승객이 탔다.

 

 점심 먹을 곳이라고 데리고 갔는데 이곳은 간이 부페식당 ?

 

 

시장이 반찬인지 ? 다들 한마디씩 하며 맛나게 먹었다.

 

 

 점심을 먹은후 차량으로 레프팅 할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비가 내린다

 

 공사중이라서 외길이다.   맞은편 차가 오면 비켜주기를 몇번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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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려했던 걱정된 일은 벌어지지 않고 드디어 레프팅 하기 위해 옷을 갈아 입을 수 있는  거운교 옆 샤워장이 있는 곳에 내려준다.

옷은 물론 갈아 입거니와 온몸에 귀금속 다 벗어 놓고 카메라도 들고 가면 않된다고 한다. 물품은 자기들이  보관을 해준다고 ........

난 갈때 혹시 물에 빠져도 될만큼 방수가방에 모든 물품을 다 비닐지퍼백에 넣어 가지고 갔다 .

그래도 않된다고 놓아두고 가란다.

하는수 없이 다 놓고

그래도 카메라는 가지고 가겠다고 우겼더니 (그곳에서 일어날 사정을 전혀 모르는 나였으니까 , 난 나만 조심을 하면 되는 줄 알았으니까 .......)

걱정 되는 눈으로  가이드들 나를 쳐다본다. 물건을 다 놓고 옷을 갈아 입고는

다시 우리는 아까 타고 온 차를 타고  상류로 레프팅을 하기 위해 한 20여분  올라간다.

 

 

 어렵게 어렵게 온 동강!  동강이 보인다. 동강을 보기 위해,  레프팅에 '레'자도 모르는 레프팅여행엘 따라 오다니 !

 

 

모든 개인소지품을 맏기고  차를 타고 2-30분을  와 상류에 내리니 , 주차장엔 우리보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아침부터 비도 내리고 해서 동강엔,  관광열차를 타고 온 우리들 뿐일줄 알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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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의 물은 정말 초록색이다!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해 119차가 대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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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아름다운 동강 !              바위나 절벽들은 모두 퇴적암이거나 석회암

이곳엔 모터가 달린 배는 다닐 수 없다하는데 이는  .  

모터배 소리에 산란기의 물고기들이 산란을 할  수 없고 놀라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보트에서 노젓는 노를 물에 '탁! 치는' 소리까지도 내지 못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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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저런 보트?를 타고 레프팅을 할 것이다.

 

 우리팀중엔 아마도 나만 카메라를 이곳까지 가져 왔나보다

이렇게라도 동강을  몇장 찍을 수 있으니 ㅎㅎ

이곳에 도착해서 가이드의 지도로 행동 수칙을 듣고  조끼와 헬멧까지 받은후 한 배에 12명의 탑승객과 가이드까지 13명이 탔다.

가이드의 구령에 맞춰 꼬리말을 이어받아 구령하라는 가이드 지시로

' 하나 둘' 가이드가 말하면 우리는 '셋 넷!'을 받아하고 영치기 하면 영차로 받고 이런 식으로 여러가지 구호를 외치며   .......

우리가 앉은  곳을 좌현 우현으로 나누어서 부르고 양쪽을 다 합쳐서는 양현이라 부르는데 '양현앞으로 !' 하면 우린 노를 앞으로 저어야 한다. 물론 때론 보트를 뱅뱅 돌리기 위해 우현은 앞으로 좌현은 뒤로 노를 젓는 때도 있다.ㅎㅎ

뭐 이런 것쯤은 나도 따라할 수 있었는데 ........

 문제는 주변 배와 배들끼리 서로  물을 어찌나 끼얹는지? 아직 물에 빠지기도 전에 옷은 다 젖었다.

난 기능성 옷이기는 하지만 계속되는 물싸움엔 이겨낼 도리가 없다.

바지속엔 가져오지 말라는 카메라가 비닐 속에 있고 몇장의 카드도 들어 있는데 .......

다 맞기고 가라했지만 만약의 불상사를 대비해서 귀중품은 내가 챙기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에 ........

그런데 더 문제는 나와 함께 탄 승객들이 전부 아들딸 같은 어린젊은이들이어서

그것을 즐거워한다. 그러니 나혼자 그러지 말라해도 나만 우스운 꼴이다.

에고 ~~ 동강이 뭔지?

참고,  노나 열심히 저으며 가고 있는데,  옆배를  보니  승객들 다 물속에 빠져 있다.

그래도 좋다고 한다.

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차 타고  올때 우리 가이드가 '나중에 보트에 타시면 가이드에게 물에 빠뜨리지 말라고 부탁하세요. 카메라가 있으니요 ' 라고 걱정해주던  가이드가 내가 탄  배에 탔으니 , 자기가 알아서 하라했다.

동강을 그렇게 한두시간 레프팅하며 동강의 8경이라는 어라연의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그리고 어라사의 전설 등을 들려주던 가이드가   드디어 승객들에게 재미있게 해주겠다하더니 모두 어깨를 깍지 끼라한다.

"난 정말 물에 빠뜨리지 말라"고 부탁을 거듭했더니 보트 바닥에 있는 차로 치면 안전벨트인 발걸이에 발을 잘 걸고 앉아 있으라며 다른 사람들은 발걸이를 전부 빼라 한다.

ㅎㅎㅎ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어하며 안전 발걸이 빼고 어깨에 어깨를 맞대고 물에 빠뜨려주길

기다린다.

모두 물속에 들어간 사람들 아직 물은 차지 않고 비가내려 반팔반바지에 추워하던 사람들 물속이 오히려 따뜻하다고 한다.

그렇게 한 바탕 즐기고 몇번의 소용돌이 같은 물살과 언덕 같은 물길을 내려 무사히 끝내고,   잠간의 자유시간을 이용해 거운교 주변을 돌며 동강을  바라보고

 

 

 다시 가이드는 우리의 도착지 였던 영월역에 데려다 준다.

새마을관광열차가 올시간이 3시간 남았다.

 

 

영월역에서 보이는 천문대 --산 꼭대기에 

 

 

 이 안내판을 보고 마음이 급해 아래에 소요시간이 차량이용 이동시간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채  걸음으로 걸리는 시간인줄 알고 온김에 단종대왕의 영릉을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 어릴때  소설을 보며 가슴 많이 아파했던 단종대왕의 생애 때문인지 그의  묘라도 자주 들여다 보아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ㅎㅎㅎ)

그래서 걸어가며 사람들에게 물으면 한 15분 가면 된다는 말에 15분을 가도 보이지 않는다 또 물으니 어떤 사람 걸어서 가기 멀다고 한다 .

한 30분은 걸었는데 걸어서 가기 멀다니 택시타기가 억울한 생각이 들어 망설이고 있는데  영월문화예술회관이 보였다. 그곳에선 사진전시가 있어서 ......

  

 

 클릭하면 크게 보여요!   영월역앞에 있는 안내판

 

장릉을 가는중에 걸어간 영월대교 위에서 보이는 풍경 . 멀리 보이는 다리는 거운교 우리가 레프팅을 마친 주변

 

 걷다가 영월대교에서  보게된 아름다운 정자

 

 영월문화예술회관

 

 

 

 

 

 

 

 

 

 

 

 

 

 

 

 

 

예술회관밖에는 하늘 새와 바다 물고기의 사진전시가 있었고

 

 클릭하면 크게 보여요!회관 안엘 들어가니 아름다운 사진전이 있었다.

2층에 올라갔더니 벽에 걸린 동양화가 눈을 호사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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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를 다 보고 시간을 보니 아직도 시간이 있다

전시관에 있는 아가씨에게 '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볼만한 문화재좀 알려달라 했더니 " 서원이 있긴한데 그곳의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는데요." 한다.

 

 

 조금 걸어오니 서원이 보인다.

'아 이곳을 그 아가씨가 얘기한 것이구나 !" 생각하며 들어갈 수 없어 담밖에서 보이는대로 몇장 찍었다.

 

 

 창절사-창절서원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7호

이곳은 단종(1452-1455, 재위)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세조에 의하여 피살 되거나 , 절개를 지키던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원래 장릉(莊陵)곁에 육신창절사(六臣彰節祠)가 있었는데 숙종 11(1685)년에 감사 홍만종이 도내에 힘을 모아 개수하여 사육신(死六臣)인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 유웅부와 戶長이었던 엄홍도와 박심문등을 모셨으므로 팔현사(八賢祠)가 되었다.  정조 15년(1791) 창절사에 단(壇)을 세우고 생육신(生六臣) 중 김시습(金時習), 남효온 . 을 추가로 모시고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창절사를 보고 또 장릉을 찾아 걷고 있을때 아래의 효자비를 발견하였다.

 

 

 신영숙효자비:이 효자비는 효염공 신영숙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신효자는 시조 정의공 신정의 9세손, 판서 공한의 7세손으로 이太祖 시절에 통훈대부한성서운으로 있다가 모친의 병환이 심해지자 관직을 사임하고 낙향하여 어머니 곁에서 침식을 잊고 간호에 온정성을 다 하였다. 모친이 작고한 후에는 묘소옆에 초막을 짓고 3년을 시묘하였으며  탈상할 때까지 죽만 먹고 한  끼도 밥을 먹지 않하였다 한다.

학문이 높았기에 조정에서는 다시 出仕 할 것을 명하였으나 모친상중이므로 사양하였다. 또 부친이 사망하였을때도 신효자는 모친 때와 같이 정성을 다하였다.

그의 지극한 효행에 태조임금께서는 효자정여문을 내리고 아울러 토지 수천평을 하사 하였다 한다.  그후 정려문이 몹시 퇴락하자 영조 21년에 후손들이 이곳에 효자비를 세웠다.

 

 

김현석 군수 청덕비각

1977년 9월 22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조선왕조실록 세조 2년 6월병오일 조기사에 의하여 세조때 가려진 원 사육신의 한 분이라고 사단(史斷)한 충의공 김문기 선생의 맏아드님으로서 충의공과 함께 순절한 영월 군수 현석( 호 여병재)공의 청덕비이다.

공은 후일 이조판서의 증직을 받으신 분으로 천성이 너그럽고 어지시며 정직하여 항상 군민을 사랑하시고 청렴하셨으므로 그 은덕을 기리기 위해 1452년 군민들이 이 비를 세웠으며  그 후 1824년 후손들이 이 비각을 세운 것이다.

   

  인도에 아주 색다른 멋진 의자가  오가는 사람들 쉬라고 있는지 ~~

 

 드디어 장릉에 도착했다.  휴 ~~ 한숨좀 돌리고

 

박충원정여각 : 이 비각은 박충원의 충신됨을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1972년에 세운 것이다.   충신 박충원은 중종 26(1531)년 문과에 급제하여 문경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영월군수로 부임하여 있을때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있던 단종이 꿈에 현몽하여 墓를 찾아 달라고 하므로 충신 엄흥도의 후손과 함께 중종 36년(1541)년에 암장 되었던 묘를 찾아 수축(修築)하고 제사를 지냈다.

 

 

 

 박충원의 정여각을 지나 계단을 조금 오르면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나오고 그길을 걷다보면 멀리 단종대왕의 능이 보인다.

 

클릭하면 크게 보여요!      단종대왕의 능 장릉!

 

 

  제6대 단종대왕의 능!

장릉의 유래 ! :   세조3년 (1457년) 6월 집현전 학사 성삼문, 박팽년 등이 상왕복위사건으로 참형을 당한 6월 21일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었고 그 다음날 영월 청룡포로 유배 되었으며 그곳에서 2개월 남짓 기거하시던중 홍수로 인하여 관풍헌으로 옮기셨다.

세조3년(1457년) 여섯째 삼촌 금성대군의 단종복위 계책이 발각되자 노산군은 페서인이 되었고 그해 10월 24일 사사(賜死) 되었는데 그때 春秋 17세였다.

단종의 유해가 동강에 흘렀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爲善被禍吾所甘心)는 충정으로 옥체를 수습하여 이곳에 밀장을 하였다.

중종 11년(1516) 노산묘를 찾으라는 왕명이 있었고 중종 36년(1541년)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의 현몽에 따라 노산묘를 찾고 수축봉제하였다.

숙종 24년(1698년)에 추복하여 묘호를 단종으로 하고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단종이 승하하신지 241년 만에 왕실의 정례(正禮)를 되찾게 되었다.

능상의 석물들은 후릉의 예를 본받아 행하라는 교지에 따라 능전에 상석 1좌 그좌우에  망주석 1쌍이 있고 그 하단아래에 4각옥형 명등석 1좌와 문인석과 마석 각 1쌍이 상면 설치되어 있고  무인석은 없다.(실록에 근거)

 

 

 장릉에서 내려다 보이는 정자각과 그외의 곳들

 

 

장릉 아래에 있는 丁字閣: 이 건물은 영조 9년(1733)에 건립하였으며 단종대왕 제향시 제물을 차리는 곳으로 집의 모양이 한자의' 丁'자와 같다하여 정자각丁字閣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자각 안에 단종의 초상화 

 

 

정자각 아래는 단종대왕의 비석이 있고 그 뒤로  수복실이 있다

단종비각: 이 비각은 숙종 24년(1698) 노산묘를 장릉으로 추봉함과 동시에 이 비각을 세웠다. 비각 안에는 '朝鮮國 端宗大王 莊陵' 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단종대왕의 생애가 기록 보존 되어있다.

 

수복실 :  능과 경내를 관리하는 능지기가 기거하던 곳으로 영조 9년(1733)에 정자각과 함께 세운 것이다

 

 

 수복실 옆에는 장판옥(藏版屋)

이건물은 정조 15년(1791)에 건립한 것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 32인, 조사위(朝士位)186인 ,환자군노(宦者軍奴) 44인 여인위(女人位) 6인을 합하여 268인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다. 

 

 

 능아래 오른쪽엔 靈泉이 있는데: 이 영천은 장릉에 제사를 지내는 우물로서 정조 15년(1791)에 군수 박기정이 조정에 보고하여 장릉 제정으로 칭하게 되었다.

보통때에는 샘이 조금씩 솟았으나 매년 한식때, 제향을 지낼때에는 물이 많이 용출하였다. 우물의 구조는 사방이 돌담으로 둘러 있고 우물 깊이는 1.5미터 정도이고 화강석으로 정방형 모양으로 쌓아 올려져 있다.

 

 靈泉

 

 영천으로 가는길인데 길 앞엔 아래와 같은 표지판이 있다

 

 

 

 엄흥도 정여각: 이 비각은 엄흥도의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영조2년 (1726)에 세운 것이다.  충신 엄흥도가 영월호장으로 있을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관풍헌에서 1457년 10월 24일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강물에 던져지자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도받고 있다.  순조 33년(1833)에 공조판서로 추증되었고 고종13년에 (1876)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엄흥도 정여각

 

재실: 이 건물은 처음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없으나 1932년에 중건하였다.

이곳에는 능을 지키는 참봉 1인과 수호군 9인이 기거하였으며 매년 단종 제향을 지낼때 이곳에서 제물을 준비하고 제기를 비롯한 각종 사용기구를 보관해 오던 곳이다.

1997-1998년 재실지붕및 배수로를 보수 정비하였다.

   

재실

 배식단: 이곳은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받친, 충신위, 조사위, 환자군노, 여인위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한식 때 제사를 올리는 제단으로 제례를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앞에 있는 줄은 단종문화제 칡줄다리기에 사용 되었던 칡줄

 

 젊은 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기 싫은가보다.  역전에서 불꽃놀이를 한다.

 

 

아침에 관광버스를 탔을때 저녁 주문을 해두라는 열차원의 안내에  주문을 해놓았던 5500원짜리도시락   

 

 

 천혜의 비경 "동강" <--- 더 자세히 보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다른분이 찍으신 멋진 동강이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