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충주 중앙탑과 탄금대

백합사랑 2009. 2. 22. 17:23

 

요즘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으로 여행가기도 쉽지 않다.

외국여행은 말할것도 없으려니와 국내여행도 여행사에서  30명이 않되서 취소 됬다고 연락이 오곤한다. 여행을 너무 못가서 서글퍼 진다고 딸에게 말을 했더니 가족끼리 콘도라도 가서 놀다 오자고 한다.

억지로 억지로 식구들 함께 시간을 내기로 했지만 역시나 이런저런 핑계 거리로 딸래미 가족만 함께 떠났다.   사실 사위도 바쁜 회사 출근을 해야 했지만,  여자들끼리만 보내는 것이 불안했는지?     결근까지 하고 나와주었는데, 가는 길에  사위에겐 연신 전화벨이 울리고 ~~~~ 가긴 가도 마음은 미안하고  불안불안했다.            다음엔  정말 가족들 앞에서는 "여행"이라는 단어도 말하지 말고 혼자 여행을 떠나야겠다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마! 가고싶은 곳 말해봐 ......."

그래서 아직 가보지 못한 중원에 중앙탑과 중원고구려비를 보고싶다했는데 고구려비는 지나치는 바람에 못가고  중앙탑은 조금 지난 바람에 U턴을 해서  갔는데 탑 주변엔 박물관도 있고  조각공원과 탑아래  호수가 아름다왔다.

영하의 기온에 애기까지 데리고 나섰기 때문에 딸과 사위는 차에서 애기 보라하고 나만 신나는 걸음으로~~~   몇번의 해체와 복원을 거듭하면서 원형을 잃었다는 탑이지만 내눈엔 너무 멋져보여 탑주위를 몇 바퀴 돌아보고  공원 곳곳에 아름다운 조각들과 파란 호수같은 (남한강)  오랫만의 외출에 가슴이 후련해지는것 같았다.  기다리는 딸래미 생각에 바쁜 걸음으로 차를 향해 가는데 애들이 탑아래서 부른다 .

내가 너무 않오니까   나를 찾고 있던 중이었던 것 같다.  찬바람에 볼과 코가 발갛게 된  애기를 안고서,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이라 배가 고프다면서도   까다로운 딸래미 먹고싶은 음식을 못찾았다고 탑부터 보고 식당을 다시 찾아보자고  했던터라서 ㅎㅎㅎ

배고픔을 더이상 못참겠는지  사위가  포장마차 앞에서 오뎅이라도 한개 드실래요?

난 배는 안고팠지만 따끈한 오뎅국물이 마시고 싶어서 ~~ 우린 다같이 오뎅 한개씩 먹고 시원한 오뎅국물을 마시고  몇발자국 앞에 박물관이 보이지만 차마 가자는 말을 못하고 차에 타려 할 때 딸이 엄마 박물관도 볼래? 묻는다 ㅎㅎㅎ  나야 당연히 밥 한끼 굶더라도  박물관을 볼 수 있다면 더 좋지 .........

박물관을 대강 대강 보고 네비에서 찾았다는 식당을 찾아나섰는데 식당이 그들의 생각에 미치질 못했는지?  아니다 ! 아니다!를 하며 실망을 한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고기 사가지고 콘도에 가서 밥해먹자 .........

 

 

 

 

 

 중앙탑  클릭하면 사진이 조금더 자세히 보임 !

중원 탑평리 7층석탑  국보 제 6호

중원 문화를 대표하는 유산인 이 탑은 신라탑 중 유일한  7층 석탑으로  통일신라기에 스님들께서 동쪽과 서쪽에서 걸어와서  우리나라의 중앙에 세워져 '중앙탑'이라고 한다.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8세기 후반 9세기초로 파악되고 있으며, 10여 개의  크고 긴 돌로  지대석을 마련하고 2층 기단을 쌓아 올렸다.  탑 전체의 높이는 12.951m로 높이에 비해 너비가 좁아서 가늘게 치솟은  느낌이 강하여 웅대함이나 안정감 보다는 상승감이 두드러지는 탑이다.   1917년 해체 . 복원시 6층 몸돌에서 훼손된 고서류 일부와 구리거울 2점 목제칠합과 은제사리함이 나왔고 기단부에서는 청동합이 발견 되었는데, 구리 거울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이때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여러차례 해체. 복원으로 원형과 달라진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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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아래 펼쳐진 조각공원과 아름다운 호수

 

 

 공원에 있는 많은 조각중 하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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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박물관  1관 , 옆에 따로 2관도 있음

박물관에는 1관 역사1실(불교미술실). 민속실등이 있고 2관에는  선사. 삼국실, 고려 조선실  충주 명현실, 충주항쟁실  그리고 야외전시유물들까지  볼거리가 많고 잘 정돈 되어있었다.

 

 

 

 박물관 안에 보살상

 

 하구암리 석불입상.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불상의 눈, 코 , 입부분의  마멸이 심한데 -아들 낳기를 바라는 민간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보임- 이라는 설명이 있는데 저 불상의 돌가루를 잡수신 분들 아들은 낳으셨는지? 그럼 저 돌부처님의 아들들 ?

 

 

 

 아주 작은  고려시대의 塔像紋塼

 

출처: 용탄동 절터이며 고려시대것

일산을 든 사람과 앉아있는 사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긴 물건을 세워든 사람 등 총 6구의 인물을 묘사하였는데 어떤 행렬도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임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백자 명기와 뒤에 있는 문같이 생긴 신주감

 

 

 

  요여(腰輿) : 주검을 묻은 뒤에 혼백과 신주를 모시고 돌아오는 작은 가마로 조선 시대것

 

 

 충주박물관 야외에 전시 되고 있는 유물들

 

 

 연자망아 : 조선시대 것으로 연자매라고도하며 발동기가 없던 옛날 한꺼번에 많은 곡식을 찧거나 밀을 빻을 때 마소(馬牛)의 힘을 이용한 방아이다.   둥글고 판판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워 얹어 아래 위가 잘 맞닿도록 한 다음 , 말이나 소의 힘을 이용하여 회전시키는 제분기의 일종이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연자 방아 ! 공부했다.)

 

 

 

 성불사 석불 좌상 : 고려시대 것으로 불상 곳곳을 시멘트로 보수한 모습이 보이는데 맨처음 절에 모셔질 땐 신앙의 대상으로 조성 되었을 터인데 지금은 쓸쓸히 박물관 야외에서 박물관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 

 

박물관 내에 충주명현실

충주는 많은 인재를 배출한 고장으로 매년 우륵문화제에서는 명현 5위(우륵,  김생,  강수,  신립,  임경업)를 추모하는 제사를 배향하며, 고장을 빛낸 많은 인물을 기리고 있다.   명현실에는 문중에서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교지  어필   서책 등을 발굴하여 공개하고 있다.  특히, 익제 이제현(도유형문화재 72호) . 시산노인 홍가상 영정과 최근 표준 영정으로 공인된 강수선생 상을 전시하였다. 또 국가중요민속자료 246호로 지정된 이응해장군묘 출토복식을 소개하였다

 

 

 

탄금대: 몇 번이나 가본 곳이지만 우륵의 전설이 있는 곳이라서인지? 그곳에 가면 우륵의 가야금소리가 들릴것 같은 착각에 자꾸 가보고싶어지는 곳

탄금대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 4호로 1400여년전 신라 진흥왕(551) 때 , 가야국의 우륵이라는  악사가 그나라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하였다.  그는 이곳을  우거지(寓居地)로 삼고 풍치를 상미하며 산상대석(山上臺石)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 부락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로 연유하여 이곳을 탄금대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도순변사 신립장군이 1592년 4월 28일(음력) 8,000여명의 군졸과 함께 이곳에 와 배수진을 치고 왜장 가또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끼나와의 군대를 맞아 격전을 한 전적지이기도하다. 신립장군은 전세가 불리하여 패하게 되자 천추의  씻지 못할 한을 품고 강에 몸을 던져 장렬히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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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공신립장군과 8,000고혼 위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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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꽃 (노래비)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감자꽃 시 작가 동천 권태응님은 1937년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하였는데, 평소 일본인들의 부당행위에불만을 가지다가 항일운동에 나서게 되었는데, 일본경찰에 입건되어 1학년도 마치지 못하고 퇴학 당하였다. 그 후 재일 유학생들을 모아 독서회를 조직하여 항일 운동을 하다 1939년 스모가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형무소에서 폐결핵을 얻어 1940년 6월 출옥하여 귀국하여 치료를 받다 병세가 악화되어 고향인 충주에 내려와 야학과 소인극을 통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광복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약을 구하지 못해 1951년 별세했다. 권태응이 남긴 대부분의 시가 애국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감자꽃]도 일제의 창씨 개명에 맞선 작품이라는 평이 있는데 동시(童詩)인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드리는 것도  좋을 듯하다.고 적혀있음

 

 

 탄금대 곳곳에도 멋진 조각상들이 많은데 특히 아름다운 여인의 나상이 많다.  그중에 이 여인의 상은 비천상과도 닮아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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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대라는 이름을 가진 바위( 경사가 매우 가파른 층계 아래 위치해 있어서 안전사고를 조심하라는 푯말이 있는 아름다운 곳)

 

 

 열두대 위쪽에 있는  정자에는 탄금대를 읊은 멋진 시들이 급한 걸음을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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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은 기다리고 있는 애들에게 있지만 눈과 발걸음은 우륵선생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라도 만나고싶어 한참을 찾았는데 드디어 발견했다   시비에 쓰여진 글을 옮기면 아래 글과 같다.

 

우륵선생의 탄금대는 신라 진흥왕 때 당대의 악성(樂聖)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탄주하면서 음악을 연마하던 곳이다.선생은 원래 가야국 사람으로 가야금을 만들고 12곡을 지었으며 신라에 귀화하여 왕의 배려로 국원 (國原 忠州)에 살면서 계고(階古)에게는 가야금을 法知에게는 노래를. 萬德에게는 춤을 가르쳤으며 이때 가야금 곡이 궁중악으로 되었다.

 

 

 시비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대흥사라는 절과 신립장군 순절비각이 보인다.

 

 

 신립장군 순절비각

 

 신립장군 순절비각

 

 

 

 

 

 절 맞은편  입구쪽으로 오르다보면 활터가 보인다

 어르신들이 모두 활과 화살을 들고 과녘을 향하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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