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大同江邊 平壤城

백합사랑 2009. 2. 4. 11:21


大同江邊 平壤城[나훈아의 아마도 당신을]

送人(송 인)

--임을 보내며-- 
 
鄭知常(정지상)( ? ~1135)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우헐장제초색다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대동강수하시진 별루년년첨록파 
비 갠 긴 강뚝에 풀잎 짙어가는데
남포에서 임을 보내니 슬픈 노래가 나오네
대동강 물은 언제나 다 마르나
해마다 이별의 눈물이 푸른 물결에 보태질 텐데
漢詩도 鄭知常도 잘 모르는 사람도
대개 이 詩는 알 만큼 잘 알려저 있는 시다
눈물이 보태저 대동강이 마를 수 없다니
이렇게 가슴 아픈 이별을 노래하게 만든
사랑하는 그 님은 누구 였을가- 만 하 -
 
대동강변 평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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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 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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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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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내성 동장대(연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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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내성 북장대(을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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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대.

평양성은 고구려 때 지었으며,

내성. 중성. 외성. 북성으로 4개로 나누었으며

내성 - 궁성으로 을밀대에서 남산재까지

중성 - 중앙관청으로 안산에서 대동강까지

외성 - 주민이 거주

북성 - 내성의 보위성으로 사원등이 있으며

모란봉과 전금문 일대로써

산성과 평지성의 잇점을

종합하여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100년전의 평양성



평양 대동문(大同門) 조선 중기에 지어진 평양성의 동문.

전체 높이 19m, 석축 높이 6.5m인 2층 누각이다.

축대는 화강석으로 정교하게 쌓았고 복판에 무지개문을 내서

사람들이 출입하도록 했다.</! FONT>

대동강 건너 남쪽으로 이어졌다.</! FONT>


▲ 평양 칠성문(七星門) 평양 모란봉(牧丹峯)에 있는 성문.

전형적인 고구려성으로 현재의 문루는 조선 숙종대에 개수한 것이다.

을밀대(乙密臺) 쪽에서 등성이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성벽과 만수대에서 북쪽으로 뻗은 성벽을 어긋나게쌓고,

그 두 성벽 사이에 가로 세워 성문을 세웠다.


평양 현무문(玄武門) 평양 금수산(錦繡山)의 성문.

 모란봉과 을밀대 사이에 있다.

역시 고구려 때 축조되어 조선 숙종대에 중건됐다.

성문 축대는 다듬은 돌로 선과 면을 갖추어 정연하게 쌓았다.

칠성문과 함께 고구려 성곽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 평양 부벽루(浮碧樓) 산 위의 사람들은 대성산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에 언뜻 모란대가 보이고 왼쪽 성벽을 따라가면

   을밀대로 이어지는 위치다.

오른쪽 대동강가에 있는 누각이 부벽루다.


▲ 평양 모란봉(牧丹峯) 대동강 주변의 절경을 담은 사진이다.

왼쪽 봉우리가 모란봉이고 부근은 금수산이다.


오른쪽 섬은 능라도(綾羅島)
 이며 산 중턱에 부벽루가 보인다.


그 아래 문은 전금문(轉錦門),

누각은 득월루(得月樓)다.

머리에 짐을 인 아낙들이 지나는 곳은 청류벽 (淸流壁)이다.



▲ 평양 을밀대(乙密臺) 모란봉 중턱에 있는 누각.

 사방이 틔어 있다

   해서 사허정(四虛亭)이라고도 부른다.

고구려 때 세운 것을 조선 숙종대에 다시 세웠다.

고구려 축성술을 엿볼 수 있는 축대의 높이는

   11m에 달한다.

 

▲ 평양 득월루 대동강변에 보이는 누각이 득월루,

  아래의 문이 전금문이다.

  오른쪽 길을 따라 가면 기린굴(麒麟窟)이 나오고 계속 올라가면

을밀대에 닿는다.

 출처/ 이메일(받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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