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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외암마을은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 236호입니다

백합사랑 2009. 8. 8. 09:54

 외암마을은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 236호입니다

지정 년 월 일 : 2000년 1월 7일

외암마을은 북쪽의 설화산을 주봉으로 그 남서쪽의 약한 구릉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어귀는 낮고 마을 뒤로 갈 수록 점점 높아지는 지형이다. 이러한 지형 조건에 따라 마을의 집은 대개 남향 또는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일조량이 많으며 겨울에는 서북 계절풍을 막아주는 좋은 기후 환경 때문에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마을에는 원래 여러 성씨가 살고 있었는데 조선 명종(1545~1567)때 예안이씨 이사종이 세 딸만 둔 진한평의 첫쩨 사위가 되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그의 후손들이 번창하게 되었고, 그 후손 중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자 차츰 예안이씨를 중심으로 하는 동족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조선 경종 3년(1723)에 이간 선생이 쓴 [외암기]에 마을 이름을 [외암巍巖]으로 기록한 사실이 있으나 그 후 언제부터인지 같은 한자지만 획수가 적은 外巖으로 고쳐서 부르게 되었다.

  이 마을에는 충청지방의 양반집과 초가가 어우러지고 집집마다  집집마다 돌담이 둘러져 있으며, 설화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인공수로를 통해 마을 안을 흐르면서 정원을 꾸미거나 생활용수로 이용되고, 유실수와 화목군 등 수림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 시대 이 마을은 지리적으로 한양과 가까워 왕래가 잦아서 인지 한양 풍속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정월 보름을 전후하여 느티나무제와 장승제를 지내며, 매년 10월에는 전통 짚풀공예와 민속놀이등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짚풀문화제가 열린다

이 마을은 역사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고 충청지방의 전통적인 살림집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민족문화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마을 입구 개울가에 물레방아간과 건너편에 정자가 보입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조그마한 비각이 있어서 무슨 비각이냐고 물었더니 안동권씨 열녀비각이라 하네요

 

 

비각안에 있는 현판  현판 옆에는 한문으로 열녀님의 사연을 적은 것이 또 하나 있었지만 짧은 한문실력으론 ~

 

 

 

 보이는 집은 시청각실로  전화로 신청을 해야 나와서 보여준다는데 시간상 생략하였습니다

 

 

 

 마당 한 켠에선 국악공연

 

 

 

이 가옥 안에는 외암리마을에서 그동안에 찍은  많은  영화들의 동영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이곳에 올린 화보 말고도 많은 화보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클릭하면 글씨를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상류층 가옥 대문과 문간채

 

 

 

 

 

 상류층 가옥 안에 있는 사랑채입니다.

 

 

 

 

사랑채 방 안에는 선비님들의 여유로운 공간입니다.

 

 

 

 

 

 

 상류층 안채

 

 

 

 

 대청마루엔 찬장과 뒤쥐가 있습니다

 

 

 

 혼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 있고 대여복도 무료로 빌려준답니다

 

 

 집 뒤에 조상을 모신 사당이 있습니다

 

 

 

 

 집 뒷곁에

문밖엔  정자가 있습니다

 

 

정자 아래 마당에 땅거미인지? 아들 말로는 말 벌 같다는데?  무슨 벌레가 땅을 파고 있습니다.

벌레는  땅을 파고나서  그속에 들어가보고 다시 나와서 또 파고 ~ 신기했습니다.

부슨 벌레인지 아시는분 알려주세요.

클릭하면 자세히 보입니다!

 

 

 

 양반집 밖을 나와보니 형틀이 있습니다. 아빠를 ? ㅎㅎㅎ

 

 

 줄타기도 있어요.   놀이가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예전에 왔을때는 조용한  평범한 마을이 었는데 요즘은 입장료를 받는 대신 볼거리 즐길 거리를 많이 만들어 두었습니다.

 평민들이 사는 초가집입니다.  집앞에는 소와 수레가 있지요

 

 

 

 

 집안 뒷채에선 아낙이 베를 짜고 있네요

 

 

 닭장엔 닭뿐 아니라 토끼, 칠면조 등 여러  동물들이 모여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요즘 보기드문 쥐들이 들락거리며 동물에게 준 모이를 가져가느라고 바빴습니다.

 

 

 

 

 

 

 

 

 이집은 '초가삼칸'으로  싸리문 안에 달랑 초가삼칸만 있었습니다

 

 

 

 

 

 

 

 

 

 이 동네는 민속촌과 달리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 입니다

 

 

 

 

 아산 건재 고택

중요민속자료 233호 : 조선후기 목조 건물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외암巍巖 이간 李柬(1677~1727) 선생이 출생한 가옥으로 18세기 말엽에 외암선생의 후손인 건재健齋 이욱렬(이郁烈)공이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고택의 구성은 문간채. 사랑채. 안채를 주축으로  우측에 광채와 가묘家廟. 좌측에 곳간채가 배치되었고 주위에 자연석 돌담과 한식 담장을 두르고 있으며, 담장 밖에는 초가로 된 하인집이 있다.

설화산을 배산으로 하여 산세를 따라  서북향으로 건물을 배치하였고, 계곡에서 흐르는 명당수明堂水를 유입하여 고택의 정원수와 방화수로  이용하고 있다.

사랑채의 앞 정원은 학의 모양을 한 연못을 중심으로 작은 계류가 형성 되어 있으며 괴석과 노송 등 많은 수목으로 꾸며져 있다.   우리나라 반가와 정원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접견점이 매우 뛰어난 가옥이다.

 

-옮긴글-

 

이렇게 아름다운 가옥을 문이 잠겨 있어서 볼 수 없었고 설명으로만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문앞 담장은 높아서 볼 수  없었고 마굿간 옆에 디딤돌이 있어서  담장 안을 살짝 보았지만 ~~~볼 수 있는 것은 정원수와 .......

 

 

 

 

 담장 밖에 있는 마굿간인지 소 오양간긴지?

 

 

 

 

 보이는 집은 감찰댁이라는 택호가 붙어 있습니다

그곳 설명에선 옛 주인의 관직에서 택호를 택한 것 같다고 해 두었습니다.

감찰댁은 개방이 되어 있는지?집안에 많은  사람들이 보여서 나도 들어가 보고싶었지만 차가 막힐 시간이 된다고 서둘러 돌아서는 바람에 들어가보지는 못했습니다.

 

 

 감찰댁 문

 

 

 

 

 마을 어귀에 누구의 묘인지는 모르지만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

 

 

 

 마을 어귀  개울가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