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강화 고려대장경을 만들었던 선원사지와 전등사

백합사랑 2009. 7. 10. 11:36

 

선원사에서는 선원사 주변에 연꽃이 필때쯤  매년 연꽃 축제를 하는데 아직은 피지 않았고 사원 앞에 커다란 그릇에 심은 꽃이 이쁘게 몇송이 피어있습니다.

 

 

 

 강화선원사지

사적 제 259호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선원사는 고려시대에 몽고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후 고종 32년(1245)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崔怡(최이)(崔瑀-최우)가 창건한 절이다. 이 절은 최이가 대몽항쟁(對蒙抗爭)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 佛力을 통해 구국하고자 창건한 것으로 江都 피난시의 최대 국찰격의 사찰이었다.

특히 이곳에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 목판을 조각, 봉안하였다.  이때의 팔만대장경 목판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봉안 되고 있는데 조선 태조 7년(1398) 서울로 옮겼다가 세조 2년(1456)경 해인사로 옮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에는 순천 송광사와 함께 고려의 2대 사찰로 손꼽혔으나  조선 태조 7년 훼철되어 그 유지조차 찾지 못하던 중 1976년 동국대학교 강화학술 조사단에 의하여 발견 되었다. 사역은 크게 네 구역으로 구분되어 축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寶相華文塼, 막새기와, 치미 등이 출토 되었으며 기와편이 흩어져 있다.  중심 寺域은 남북 길이가 250m, 동서폭이 170m 가량 된다.

 

-옮긴글-

 축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선원사지   

 

 

 

 

 가끔 TV를 통해서 보았던 牛보살이라는 왼편의 소와 오른쪽은 송아지

우보살이 피곤한지 더워서인지 낮잠에 빠지네요 ㅎㅎ.

 

 

 

 선원사지에 마련된  법당과 정리가 덜된 주변 모습

빨리 아름답고 고풍스런 사원으로 정리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곳 스님께서 수녀님을 보시고  같은 수도자라고 차를 대접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시원한 연꽃차를 마셨습니다

 

 

 

 

 연잎으로 만든 차라는데 참으로 시원하고 향그러왔습니다

 

 

 아주 무더운 날이 었었는데 연잎차로 더위를 식힌후 다시 전등사로 향했습니다.

전등사를 들어가려면 맨처음 만나는 문인데 이 문 이름이 삼랑성이랍니다.

삼랑성은  사적 제 130호

일명 鼎足山城이라고도 한다.  성을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는데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보강되었다.  성안에는 전등사는 물론 고려시대에는 가궐(假闕), 조선시대에는 사고와 선원보각이 있었다.  병인양요 때 (1866)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 군을 물리쳐 이곳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를 지켰다.  1976년에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대로 복원했다.

 

양헌수 승전비

기념물 제 36호

1866영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을 물릴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비로 앞면에는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라고 새겨져 있다.   양헌수 장군은 헌종 14년(1848)에 무과에 급제한 후 벼슬을 지내다가 1866년에는 병인양요시 프랑스군을 패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승전비에는  양헌수를 비롯한 367명이 프랑스군대를  맞아 활약한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크기는 전체 높이가 181cm이다.

- 옮긴글-

 

 

 

 왼쪽 은행나무는 600년 된 보호수이고 오른쪽 은행나무는 500년이 된 보호수입니다

 

 

 전등사에  들어가기 전에 전통찻집이 있는데 시간만 있다면 앉아서 차 한 잔 마시고 싶도록 이쁩니다.

 

 

 

 

 

 

 전등사 법고와 종이 있는   루각

 

 

 계단에 올라와서 본 - 전등사 법고와 종이 있는   루각

 

 

 대웅보전

 

 

 대웅보전 처마 위에 있는 나체여인상- 설에 의하면 법당을 짓던 목수가 일이 늦춰져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자 아내가 집을 나갔으며 그것을 알게된 목수는 자기 아내를 증오하는 뜻으로  아내를  발가벗겨서 법당처마를  받치고 있도록 만들어서 법당 처마 4곳에 만들어 놓았다고 전합니다.

 

 

 

 

 

 

 

 

법당앞에 나무가 여러 사람들에게  편히 쉬어 갈 수 있도록 그늘을 지어주고 있습니다.

나무는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약사전과  가운데 향로전 그리고 오른꼭으로 대웅보전

 

 

전등사 약사전은 보물 제 179호

 

 

 

 

 

 

종각과 수각 그리고 종각앞에 고사목에 새겨진 달마상?

 

 

 

 보물 제 393호

중국 송나라때(1097) 懷州 崇明寺에서 무쇠로 만든 중국종이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병기를 만들려고 부평 병기창에 갖다 놓은 것을 광복 후에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종의 정상부에는 두 마리 용으로  이루어진 종 고리가 있다.  몸통 위  부분에는 8괘가 있으며, 그 밑으로 종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8개의 정사각형을 돌렸다. 이 정사각형 안에는 명문을 새겼는데, 중국 하남성 백암산 숭명사의 종이라는 것과 북송 철종 4년(1097)에 주조되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층계 위는 극락암이라는 곳으로 스님들의 수행장소여서 일반인들은 출입을 금한다고 적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