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국보 92호 정병도 함께 한 관음신앙의 정병 특별전

백합사랑 2009. 8. 9. 14:13

 

 

 수월관음도      고려불화

고려14세기. 비단에 채색. 보물 1426호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의 구원의 소리를 듣고 구원해주겠다는 서원으로 이름도 관세음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 곁에는  늘 정병이 있습니다.

정병에는 감로수가 들어있답니다.

모든 아품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감로수 !

 

 

 청자 물가풍경 무늬 정병 보물 344호

고려 12세기. 높이 34.2cm

 

 

 

 물가풍경 무늬 정병

청동은입사 포유수금문 정병

고려 12~13세기. 37.5cm

 

 

 

부처와 보살에게 바치는 청정한 물, 그리고  정병

정병淨甁은 깨끗하고 맑은 물을 담는 물병이다. 정병의 형태를 보면 물을 넣는 부분인 주구가 몸체 어깨에 붙어있고 병목 위에는 물을 따르는 부분인 첨대가 있다.   원래 정병은 인도에서 수행생활을 하는 승려가 마실 물을 담던 일상용기였다.  이 정병이 중국에서는 버드나무가지와  맑은 물로 중생의 병을 치료한다는 관음 신앙과 결합되어 불교의식 도구로 정착되었다.  또한 정병과 버드나무가지를  든 관음보살상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정병은 중국에서는 당대 이후 많이 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나타나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하였다.

 -박물관에서 옮긴글-

 

 양유관음보살경상

 

 

 

 관세음보살상 손에는 역시 정병이 있습니다

 

아래 도자기들은 모두 정병들입니다. 

 

 

 

 

 

 

 

 

 

 

 

 인도와 중국, 한국의 정병

인도의 불교경전에는 수행생활을 하는 승려들이 발우, 지팡이, 병, 물을 기를 때 사용하는 주머니 등의 도구를 항상 지녀야 한다고 쓰여 있다.  승려들이 지녔던  병은 주구가 하나인 물병이었는데, 기원전 2세기경부터는 주구가 두 개인 토제 정병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정병의 몸체는 타원형이고 긴 목 위에는 구멍이  뚫린 작은 꼭지가 붙어 있으며 어깨 위에는 짧은 주구가 달려  있다. 이러한 형식의 정병은 중국의 구법승들이 인도를 방문하면서부터 중국에 알려졌다.

 

중국에서 정병은 범어인 쿤디카의 음을 딴 군지,또는 조군이라고 불렸다.  정병은 5세기 초 구마라집이 한역한 경전에 이미 그 용어가 등장하며, 7세기말 의정은 어깨 위 주구로 물을 붓고 첨대로 물을 마신다는  정병의 사용법을 기록하고 있다.  의정은  주구와 첨대의 길이가 같다고 했는데, 현재 남아 있는  당대(唐代)의 정병 중에 첨대가 짧은 것들이 있어 이 기록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첨대가 짧은 정병의 몸체는 가운데가 볼록한 모습인데 비해 첨대가 길어진 정병의 몸체는 어깨 부분이 가장 넓고 밑으로 내려갈 수록  좁아지는 모습이다.

 

 

한국에 정병이 전해진 것은  [삼국유사]에 따르면 7세기 말로 보이지만, 실제 정병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8세기 중엽 만들어진 석굴암에서이다.  석굴암의 범천상은 왼손에 목이 길고 어깨 옆에 주구가 달린 정병을 들고 있는데, 첨대는 손바닥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최근 경상북도  군위 인각사에서 9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정병이 출토 되었다.  첨대의 길이가 주구보다 길고 몸체는 어깨부분이 넒은 모양으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정병의 형태와 매우 유사하다. 고려시대에는 이러한 형태의 금속기와 도자기로 제작되어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박물관에서 옮긴글-

 

물가풍경 무늬 정병  국보 92호

청동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靑銅銀入絲 蒲柳水禽文  淨甁)

고려 12세기  높이 37.5cm

0.5mm  굵기의 은사로 버드나무와 갈대, 오리와 기러기 등 다양한 물가 풍경을 표현한 전형적인 형태의 고려시대 정병이다. 주구와 밑판을 따로 만들어 몸체에 붙였는데, 첨대를 별도로 제작하여 붙인 것인지 지금으로선 확실하지 않다.  주구가 붙는 몸체에 구멍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뚫어서 만들었다.  주구의 뚜껑과 병목 윗부분에는 투각한 은판이 덮여 있는데, 원래는  금도금이 되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병 내부도 초록색 녹으로 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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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에서 옮긴글- 

 

 

 

물가풍경 무늬 정병  국보 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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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정병

 우리나라의 정병은 대부분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금속기뿐 아니라 도자기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금속제 정병에는 주로 입사 기법으로 포류수금문이 표현된다  포류수금문은 버드나무가지가  늘어진 물가에서 헤엄치는 새 등을 묘사한 서정적인 문양이다.   이 문양은 금속제 정병과 향완은 물론 청자 정병과 대접에도 보여 고려시대에 매우 유행한 문양이었음을 알 수 있다.

포류수금문을 요나라 무덤벽화에 보이는 봄의 풍경, 도교 혹은 불교와 연관시켜 실망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문양의 연원은 확실하지 않다.

고려에서는 귀족과 관리들뿐 아니라 사찰과 도관, 민가에서도 물을 담을 때 정병을 사용했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승려의 생활용기였던 정병이 고려에서는 모든 계층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병이 된 것이다.  도자기로 된 정병 중에는 몸체가 주자나 병의 형태를 닮거나 대롱 같은 첨대가 생략된 것도 있어 사용 계층에 따라 다양한 기형의 정병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박물관에서 옮긴글-

 

 

 물가풍경 무늬 정병  국보 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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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가풍경 무늬 정병  국보 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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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관음보살의 淨甁전이   2009년  6월 23일 부터 10월 11일까지 전시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