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온양민속박물관

백합사랑 2016. 1. 12. 08:30

 

사진을 찍을 때만해도 진짜 열매인줄 알고 찍긴했지만 보면 볼 수록 너무 이쁘니까 오히려 의심이 간다.   혹시 밑에 나무처럼 인공으로 붙여 놓은것이 아닌가?   왜 그때는 의심도 못하고 만져보지도 못했을까?  ㅎㅎ

 

지나다보니 특별한 나무가 보인다.  뭐지?  이 겨울에 단풍일까?  단풍이 저렇게 이쁘게 물들었을까?    가까이 와보니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매달아 놓은 꽃이다.     그래도 이쁘긴 이쁘다!

 

늘 차창으로만 바라보고 지나치던 온양민속박물관을 오늘은 가서 직접 보기로 했다.

그동안 내마음에는 "민속박물관이면 흔히 우리가 보아온 뻔한 민속품들이겠지!  더 좋은 국립박물관이며  곳곳에 있는 민속박물관들이나 뭐 다른것이 있겠나? " 싶어서 그동안은 가지 않았던 것인데 친구의 권유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들어가보니 정말 다른 민속박물관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아 ~~ 그래서 몇 십년전부터 그렇게 비싼 요금(그때나 지금이나 5천원)을 받았구나!

국립박물관이 3천원을 하거나 무료일 때도 있는데 왜 저곳은 저리 비쌀까? 했었는데........

들어가니 정갈하고 잘 정리되 있긴  했지만 역시 관람객들은 몇 명 없었다.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다른사람들도 생각했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암튼 친구덕에 아주 좋은 곳을 볼 수 있어서 친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본다!

 

본관을 들어가기전 입구에 井자 우물이 있다.

 

반송들도 아름답고, 문인석인지? 무인석인지 곳곳에 많이 보인다

 

절에 있어야 할 탑들도 이곳에 많이 보인다

 

본관

본관에 들어가니 입구 한 편에 흉상이 보인다. 아마도 이곳을 설립하신 분이 아닐까?

이곳을 설립하신 목적이 젊은이들의 교육을 위함이시라고 적힌것을 보았다.

 

박물관  들어가 관람 방향 시작점 부터  따라가보니 특이한 상이 있다 .

궁금하여 밖에 계신 직원분에게 물었더니  아들을 기원하는  것이었다고  설명을 해준다

 

이 역시 아들을 기원하는  마음에 몸에 지니거나 벼개속에 넣거나 했던 것들이라고~~

예전엔 요즘과 달리 참으로 아들을 간절히도 원했었지 !

몇 십년전만해도 임신을 하면 아들인지 딸인지?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아들이면 신이나서 키우고

딸을 많이 낳은집은   아기를 지워버리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지~~

 

  먼저 아기를 점지해 주신다는  삼신할머님께 바치는 상인듯

 

 

이제 아기를 낳고 특히 아들! 을 낳고 대문에 고추와 숯을 달아 매어 놓은 것도 보이고

 삼신 할머님께 바치는 상도 보인다

정성들여 낳은 아들이 돌이되어 돌상을 받았다

 

크면서 공부도하고  여러 예의범절도 배우겠고~

그밖에도 많은 과정을 밀랍인형으로 해 놓았다.

 

 

 

그렇게 장성하여 혼례를 치루는 신랑 각시

 

어렵게 살던 시절 환갑이 되면 환갑상을 크게 차려 가족 친지와 동네분들 모시고 잔치를 했던 환갑상차림

지금은 모두들  저런 상차림보다 외국여행을 더 좋아한다.  세월의 변천사인듯

 

 

龕室감실: 모형은 처음 보는것 같다.(조선 후기)

    이 집은 제사 지낼 조상의 신주를  모셔두는 작은 집모양의 장 , 

4대 조상까지 제사를 모시면 4칸,  3대를 모시면 3칸으로 만든다

 

명기 : 백자 (조선시대 초기)

 

제례

우리나라 사람에게 있어서의 죽음은 현실 세계와 단절되는 것이 아니며 神主 형태로 가족들에게 가까이 머문다고  생각하였다.  조상은  죽어서도 제사를 통해 자손과 함께 살면서 자손에게 복을  준다.   돌아가신 날 밤에 지내는 기제사忌祭祀는 대개 4대조까지 모신다.

이 밖에 명절 아침에 드리는 茶禮와 곡식과 과일 새로 거둔 수확을 조상께 먼저 바치는  천신례薦新禮도 있다.   그리고 4대 이상의 여러 조상에 대해서는 매년 한 번씩 묘에서 시제時祭를 올린다.  조선시대의 제사 법도는  매우 엄격했다.  그 제도를  놓고 큰 사화士禍가 일어나기도 했고, 제사상 차림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는 등 자손 된 도리로 제사를 잘 모셔야 한다는 마음에서 독특한  제례문화가 이루어졌다.

표주박瓢子

길 가다가 아무데서나 물을 떠먹을 수 있었던 시절의  휴대용 물그릇으로 대개 천도복숭아 모양으로 만들었다.   원래 조롱박이나 둥근박을 반으로 쪼개서 썼으나 여유 있는  사람들은 나무, 종이,  청동, 옥, 야자열매 등 여러가지 재질로 잘 만든것을 가지고 다녔다.

 

담뱃대와 재떨이 그리고 부시

 

 

 

그밖에도 많은 민속품들이 있지만 다 소개 못하고 생략합니다.

노주:  마당에 세워 놓고 의례를 치를 때 손을 씻거나 세면하는 데 사용하던 것

 

 

 

한편엔 불교관련 자료들도  보인다

 

 

 

이 발우는  10첩이다 아주 귀한것 같다

 

雙六: 편을 갈라 주사위 둘을 던져 나오는 사위대로 말을 써서 먼저 궁에 들여 보내는 놀이로 '상륙'이라고도 한다.

 

각지방을 대표하는 많은 탈들도 보인다

 

전시관 밖의 벽에 지장탱이 걸려 있다.

三藏탱  地藏菩薩

1755, 명주,  실크, 1360x2620mm

삼장탱화 중 지장보살  탱화이다. 삼장탱화는 임진왜란  즈음에 지장신앙에서 발전되어 나타난 한국 특유의 탱화로 천장天藏 .지장地藏 . 持地菩薩의 세 보살이 큰 법회를 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대개 세 보살을 한 폭에 모아 그리지만 여기서는  각각 법회를 여는 세 폭으로 조성하였다.

삼장 중 천장보살은 상계교주上界敎主로 진주眞珠 . 대진주大眞珠보살 및 천부중天部衆을 권속으로 거느린다. 지지보살은 음부교주陰府敎主로서 용수龍樹 . 다라니陀羅尼보살 및 신중神衆을 거느리며, 지장보살은 유명계교주幽冥界敎主로서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 그리고 시왕十王 등을 거느린다

옮긴글

 

석조여래 입상石造如來立像  : 고려시대

 

 

고인돌도 몇 구 있고

마치 광한루를 떠올리게 하는 루각이 있다

 

현판의 글씨를 한 참 들여다 보아도 가운데 글자를  모르겠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省愆堂 (愆 : 허물건자다) 아마도 조용히 자기 반성을 하는 곳으로 삼으라는 뜻인지?

여초거사님의 글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