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온양남산에 갓바위까지

백합사랑 2016. 10. 13. 16:42

온양남산 갈때마다 힘들다고 샘터까지만 갔었는데 오늘은 날씨도 좋고 늘 궁금했던 갓바위까지 가보면 좋겠다고 했더니 동행하신분들 모두 찬성으로

샘터에서 조금 오르니 온양시내가 훤하게 보이는 쉴수있는 정자가 있고


온양은 참 좋은곳이다!   낮으막하면서도 숲이 우거진 남산도 있고  온천도 있고 ㅎㅎ  

 

조금더 오르니 돌탑도 누가 쌓아 놓았는지?

천년바위까지만이라도 가보자고 올랐는데 이 바위가 천년바위! 여기도 전설이 있다

옛날 옛적에 온주군 남산골에 마음씨 착한 총각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  비록 집안이 넉넉지 못하여 서당에 나갈 형편이 못되었으나 훤칠한 키와 수려한 용모로 동네 처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사서삼경을 공부하여  호연지기를 키워나가 동네어른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한편 옆마을 장존골 양지마을에는 길쌈과 바느질 잘하는 설화라는 아가씨가 살고 있었는데 삼단같이 검은 머리와 옥같이 고운 얼굴에 마음씨까지 고와 동네 청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루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설화낭자의 집에 들른 남산골 총각과 설화낭자는 한눈에 반해 사랑을 나누게 되었으며 서로 애틋한 마음을 적은 편지를 마을 뒷산 바위틈에 넣어 전하며 서로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 서해안 아산만에 북? 오랑캐가 침범하여 선량한 양민들을 학살하고 노략질과 분탕질을 저지르고 있었으나 나라님의 실정과 고위 관직의 부정부패로 나라에서는 오랑캐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없었고 그 피해는 온주군까지 미치게되었다.

이때 분연히 일어선 남산골 총각은 뜻을 같이하는 동네 장정들과 같이 민병을  조직하여 오랑캐가 진을 치고 있는 아산만으로 떠나기 전에 [오랑캐를 물리치고 돌아오면 꼭 혼인하자]는 마음속 사랑을 듬뿍 담은 편지를 써 바위틈에 남겨 놓고 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설화낭자는 그립고 보고싶은 총각에게 매일 밤 편지를 써 바위틈에 넣어 두고 하루 빨리 사랑하는 총각이 돌아와 혼인할 수 있기를 천지신명께 기도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하늘이 시샘을 하였는지 무심한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만 가고 기다리는 총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움과 걱정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설화낭자는  식음을 전패하고 천지신명께 기도하던 중 새벽하늘에 홀연히 나타나 자기를 부르는 총각의 모습을 보고 같이 천상으로 올라가 지상에서 못다한 사랑을 이룰 수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때 편지를 넣어 서로의 마음을 전하던 바위를 천년바위라 부르고 있으며 지금도 사랑을 이루기 원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 천년바위틈에 넣어 두면 언젠가 그 편지가 그사람에게 전해져 ?민의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진다



천년바위도 봤으니 우리의 목적지고 종착지인  갓바위를 봐야하는데 도무지 갓바위가 있을법한 곳이 없고 마을이 보인다 길을 잘못 온듯한데 3500m 이상을  걸었더니 다시 오르긴 힘들겠고 마을 입구 조용한 집을 두둘겨서 물었더니 밑에 내려가면 향나무가 있는 곳에 갓바위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큰길쪽으로 조금 더 내려오니 생각했던 갓바위보다 아주 앙증맞은 갓바위가 전설을 안고 있었다 ㅎㅎ


갓바위(갓쓴바위)

충남 아산시 신인동

이 바위는 신인동 마을 북쪽 까치봉 기슭에 위치하는 자연석이다.

이곳은 아래와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 마을에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금슬은 좋았지만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남편은 자식이 없는 것을 한스럽게 생각했고 걱정이 많아진 그는 술을  마시기 위해 주막에 자주 들리게 되었다.  그런 그를  본 간교하고 욕심 많은 주막의 여인이 그를  꾀하였고 그 사이에 아들을 두게 되었다. 하지만 첩의 욕심과 간교함은 하늘을 찔러 본부인을 죽이고자 했고 첩의 간언에 넘어간 남편은 결국 본부인을 독살했다. 그 후 그들은 재물과 아이를 챙기고 도망치는데 마을 입구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과 함께 번개가 치더니 세사람 모두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조선시대 토정 이지함 아산 현감이 이곳에 들렀다가 돌아서 있는 전처 형상의 바위를 보고 조강치처를 버리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옛말을 상기시키며  '갓쓴 바위' 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조선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오성 이항복 대감이 이곳을 지나다가 바위 생김이 갓쓴 사람과 같다하여 '갓바위' 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음력 정월 초하루에 제를 지냈고 그 비용은 마을 주민들이  정월대보름에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하면서 추렴하여 충당하였다.



아주 좋은 계절 가을 !  벼도 잘 익고

조금만 나가면 도시인데 이곳은 아주 시골 같았다 마치 먼 시골에 온듯 ,  정겹기도 하고




일단 시외버스를 타고 온양온천역까지 가야하는데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몰라 두리번 거리며 사람을 찾았는데 마침 어떤 여성분이 오시기에 물었더니 본인도 온양역에 간다고 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버스 정류장에서 보이는 우리가 내려온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