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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몇이나 되오

백합사랑 2018. 8. 27. 07:32

《친구가 몇이나 되오》

 

류진사는

무골호인(無骨好人)이다.

 

한 평생(平生) 살아오며

남의 가슴에 못 한 번

박은 적이 없고,

 

적선(積善) 쌓은 걸

펼쳐 놓으면 아마도

만경창파(萬頃滄波) 같은

들판을 덮고도 남으리라.

 

그러다보니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그 많던

재산(財産)을

야금야금 팔아치워

 

겨우 제 식구들

굶기지 않을 정도의

중농(中農) 집안이 되었다.

 

류진사(柳進士)는

덕(德)만 쌓은 것이 아니라

재(才)도 빼어났다.

 

학문(學問)이 깊고,

붓을 잡고 휘갈기는

휘호(揮毫)는

천하(天下) 명필(名筆)이다.

 

고을 사또(使道)도

조정(朝廷)으로 보내는

서찰(書札)을 쓸 때는

이방(吏房)을 보낼 정도였다.

 

류진사의

사랑방엔 선비와

문사(文士)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인(婦人)과

혼기(婚期) 찬 딸 둘은

허구한 날

밥상, 술상을 차려

사랑방에 들락날락하는 게

일과(日課)다.

 

어느 날,

 

오랜만에

허법(虛法) 스님이

찾아왔다.

 

잊을만하면

류진사를 찾아와,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나누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허법 스님을 류진사는

스승처럼 대한다.

 

그날도

사랑방엔 문사들이

가득 차,

스님이 처마 끝

디딤돌에 앉아 기다리자,

 

손님들이

눈치채고 우르르

몰려나갔다.

 

허법 스님과

류진사가

곡차상(穀茶床)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류진사는

친구(親舊)가 도대체

몇이나 되오?”

 

스님이 묻자

 

류진사는

천장을 보고

한참 생각하더니,

자랑스럽게 말했다.

 

“얼추 일흔은

넘을 것 같습니다.”

 

스님은 혀를 끌끌 찼다.

 

“진사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오.”

 

류진사가

눈을 크게 뜨고

문을 활짝 열더니 말했다.

 

“스님,

한눈 가득 펼쳐진

저 들판을 모두 남의 손에

넘기고, 친구 일흔을

샀습니다.”

 

스님은 껄껄 웃으면서

 

"친구란 하나 아니면 둘,

많아야 셋, 그 이상이면

친구가 아닐세.”

 

두 사람은 밤새도록

곡차를 마시다가,

삼경(三更)이 지나

고꾸라졌다.

 

류진사가

눈을 떴을 때 ··

 

스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날부터

류진사네 대문(大門)이

굳게 닫혔다.

 

집안에서는

심한 기침소리가 들리고

의원(醫員)만 들락거려,

 

글 친구(親舊)들이

대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열흘이 가고

보름이 가도

 

진사네 대문은

열릴 줄 몰랐다.

 

그러더니

때아닌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밤에 곡(哭) 소리가

터졌다.

 

진사가 지독(至毒)한

고뿔을 이기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下直)한

것이다.

 

빈소(殯所)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부인과

딸 둘이 상복(喪服)을 입고,

머리를 떨어뜨린 채

침통(沈痛)하게

빈소(殯所)를 지켰다.

 

진사

생전(生前)에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글 친구들은

낯짝도 안 보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문상(問喪)을 와

섧게섧게 곡을 하더니,

 

진사 부인을

살짝이 불러냈다.

 

“부인(夫人),

상중(喪中)에 이런 말을

꺼내 송구(悚懼)스럽지만

워낙 급한 일이라…”

 

그 친구는

품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미망인(未亡人)에게

건넸다.

 

봉투를 열어보니

차용증(借用證)이다.

 

류진사가

돈 백냥을 빌리고

입동(入冬) 전에 갚겠다는

내용(內用)으로,

 

진사의

낙관(落款)까지 찍혀있었다.

 

또 한 사람의

문상객(問喪客)은

왕희지(王羲之)

족자(簇子) 값 삼백 냥을

못 받았다며

지불각서(支拂覺書)를

디밀었다.

 

구일장을 치르는데,

 

여드레째가 되니

이런 채권자(債權者)들이

빈소(殯所)를 가득 채웠다.

 

“내 돈을 떼먹고선

출상(出喪)도 못해!”

 

“이 사람이

빚도 안 갚고 저승으로

줄행랑을 치면 어떡해.”

 

빈소(殯所)에

죽치고 앉아 다그치는

글 친구들 면면(面面)은

모두 낯익었다.

 

그때

허법 스님이

목탁(木鐸)을 두드리며

빈소(殯所)에 들어섰다.

 

미망인(未亡人)이

한 뭉치 쥐고 있는

빚 문서(文書)를

낚아챈 스님은

병풍(倂風)을

향해 고함(高喊)쳤다.

 

“류진사! 일어나서

문전옥답(門前沃畓)을

던지고 샀던

 

잘난 당신 글

친구들에게 빚이나

갚으시오~.”

 

병풍(倂風) 뒤에서

‘삐거덕’ 관 뚜껑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류진사가 걸어 나왔다.

 

빚쟁이 친구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해

신도 신지 않은 채 도망쳤다.

 

류진사의

만류(挽留)에도

불구(不拘)하고

 

허법 스님은

빚 문서 뭉치를 들고

사또에게 찾아갔다.

 

이튿 날 부터

사또(使道)의

호출장(呼出壯)을 받은

진사의

글 친구 빚쟁이들이

 

하나씩

벌벌 떨면서

동헌(東軒) 뜰에 섰다.

 

“민초시(閔初試)는

류진사에게 삼백 냥을

빌려줬다지? ”

 

사또의 물음에

꿇어앉아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린 민초시는

울다싶이 읍소했다.

 

“나으리,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곤장

삼백 대를 맞을 텐가,

삼백 냥을

부의금(賻儀金)으로

류진사 빈소에 낼 건가? ”

 

류진사는

글 친구들을 사느라

다 날린 재산(財産)을

 

그 친구들을

버려서 다시 찾았다.

 

"친구(親舊)란

온 세상(世上) 사람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