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사랑

난 먹는게 숙제다

백합사랑 2006. 4. 27. 18:40

난 먹는게 숙제라고 늘 말한다

왜냐면 버리지 않고 내가 다 먹어야 하니까

아마도 그렇게도 좋아하여 너무도 많이 외식을 한

댔가인지도 모른다.

 

난 몇년전만 해도 살림을 전혀할줄 모르는 부끄러운 주부였다

직장을 다니면서 살림을 못하면 부끄러울것이 없지만

난 오직 애들만 기르고 있었으니까.

부모님들께서  갔다주시는 김치며 된장 고추장 등등

주된 반찬은 어른들의 그 맛깔스런 맛으로 대처하고

매일 난 생선이나 굽고  고기나 구우면 됬었다.

 

 

틈만 나면 외식...외식

궂이  변명을 하자면 난 매일 아팠다.

식구들 아침 먹여 보내고 설거지 마치기 무섭게 난

개어놓지도 않은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만 했다

감기는 철마다 달마다 앓아야 했고

내가 약골 (시어머님이 부쳐 주신 이름 _) 이다 보니

 

아이들 또한 엄마를 닮아

내딸은 어릴때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고 자랐다고 말할만큼

우린 병원 신세를 참 많이 졌다

난  우리 딸 한테 공부하라고  야단친적은 없다

그애의 컨디션이 어떤가를  살피기 바빴다.

마음속으로야  공부 걱정 않되는 어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며칠 걸러 밤 낮 구별 않고  언제 열이 날지 모르는 아이다보니

저녁에 잘 자주는것만 고마울 따름이었다.

 

난 그애의 약시간을 챙겨야 하니까 잠을 제대로 잘수가 없었다

그런 세월이 십몇년 ...

난 그러면서 점점 약해지고 삶인지 죽음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헸갈릴 정도 였다

난 너무 힘들어  저녁에 이부자리에 누울때마다  내일 눈뜨지 않기를 바래기도 했었다 .

그러나 아침이면 난 또 눈을 뜨고 일어나고 .

 

단골 병원 선생님께선 갈때마다  "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아픈데가 많아?

병원에 가면  빨간 처방전  노랑 처방전 등을 준다.

나중엔 점점 약해져서 감기며 기침 _ 기침을 심하게 할때는

내배를 움켜쥐어야만 했다

5장 6부가 다 입밖으로 튀어나올것 같았다.

 

대한민국 제일 이라는 병원만 찾아 다녔지만  약먹을 때뿐이고

며칠 지나면 또 다시..... 난 ,그때의 난  꼭 병든 병아리 같기도 하고   매미가 벗어던진

빈 껍데기 같은 그런 느낌으로 살았다.

 

 난 어릴때부터 한약을 하도 많이 먹어서 한약 냄새도 맏기 싫었다.

그러나 주변의 권유로 한약을 먹었지만 역시 차도는 희미했다.

한의원 선생님도 날 오히려 야단을 쳤다

약을 몇재씩 먹어도 왜 진전이 없느냐?" 고

 

그래서 난 100퍼센트 현미밥도2년이나 한약과 같이 먹었다.

그때부터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난 나와 가족을 위해

될수있는한 자연식만 먹어서 체질 개선에 노력을 하였다

몸에 좋다는 것은 먹고  나쁘다는 것은 먹지를 않았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칼국수도 끊어야 했다.

 

커피는  아예 마시질 못했다.    그 향기로운 커피를 .....

한모금만 마시면 벌써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그렇게 세월이 흘러 조금씩 나아져 가긴 했지만

 

손에는 아직도  주부습진에 (주부습진은 너무심해서  고름이 열 손가락에서 흘렀다

사람마다 만나면 인사가" 손 어떼 " 한다

챙피하기도 하고 불편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수가 없었다.

유명하다는 피부과 다가도  주부습진은 남에게 옮기진 않치만 완치가 않된다고 한다.

그나마 약을 바르면 낫는 시늉이라도 하는것은 서울대 피부과였다.

 

여자가 매일 써야하는게 손인데  손에서 피나 고고름이 나고  아니면 약을 바르고 있어야 하니

얼마나 불편한지는 내상황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난 머리감을 때도 고무 장갑을 껴야했고 설거지 등등 ...목욕을 할때만 빼고는

면장갑에 고무장갑에 ..

 

여행을 갈때도 나는 고무장갑과 면장갑을 챙겨야 했다.

혹시나 누굴 도와 줄일이 있어 장갑없이 도와 주고 오면  일주일은  손때문에 아프고 쓰리고 손에서  피나고 열이나고 어떤때는 잠도 못잘 정도였다

 

그렇게 그렇게 세월가고

어느날 밤에 깨었더니

내 오른쪽이 뻣뻣햇다.   그후 그런일이 자주 일어났다.

너무 놀라서 주무르고 ,잠들기가 두려웠다.

 

물론 급할때마다  관세음보살을 염해서  두려운 마음이야 없었 지만

만약에 아직 죽지도 못할바에 반신불수라도 되면

저 어린 애들은 ? 하는  걱정이  가장 컸다

 

난 어릴때 침도 하도 많이 맞아서 침맛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반신불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까 침이라도 맞아야 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침을 몇번 맛고  한두번 맞아서 될일이 아니라는 말에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침을 배우기 시작했다  체침은 무섭고  싫어서 수지침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난 배우면서 매일 내손에 침을 꽂았다

그런데 내가 너무 약하니까  침을 맞고나니 어지러웠다.

그래서 난 뜸이라는걸 손에다 뜨기 시작했다.

어떤날은 하루종일 새벽 6시 부터 밤 11시까지 밥먹는 시간만 빼곤 뜸만 떴다.

 

아! 그런데 이게 왼일인가 ?

 

정말로 내가 좋아지지않았겠나 .!

얼굴에 있던 기미가 벗겨진것이다

난 기미가 벗겨지는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

잠자다 깨었을때 내몸이  뻤뻣해지지만 않으면 됬고

내 눈두덩이에 부기만 살아져 주면 고마울뿐이었다.

그런데  모든것이 내게서 살아져 가는것이었다

 

난 물론 쑥뜸만 뜬것이 아니고

쑥국에 쑥떡에 자연에서 나는 모든것과 친해지고

그뿐인가 건강에 나쁘다는것은 않하고 좋다는 것은 다했다.

쑥을 친하는 것은 돈도 별로 않든다.

 

아마도 쑥은 서민들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나 한다

왜,   단군 신화에도 있지 않은가

사람이 되기위해서는 쑥과 마늘  그리고 한가지는 생각 않남?

그래서 내친구들은 날보고 쑥 홍보대사라고 한다.

 

난 웃자고 이런말을 한다,    " 난 쑥장사나 쑥 뜸 장사는 절대 않해야되 

 내가 장사하면서 쑥뜸뜨라하면 장사하기 위해서라 할테니 말이야"  하고 웃는다.

 

내가 쑥이나  씀바귀를 좋아한다고 늙으신 어머님은 그것들을 혼자 먹기 힘겹게 뜯어 오신다 .

요즘 애들이 어디 그런걸 그렇게 매일 먹으려 하나..

그러니 난 그것들 을 버리지 않기 위해 3시 3끼 쑥국에 씀바귀 나물 무쳐 먹어야 하는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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