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중국박물관 (법문사지하궁 유물) 2 (당나라때 부터 의 문화 )

백합사랑 2006. 7. 4. 20:07

 

 이옷은 측천무후가 중국에서 직조를 가장 잘 짜는 사람을 불러서 부처님의 옷을 만든것인데

붉은 비단에 금색 무늬는 금을 머리카락보다 더 가늘게 세공을 한 것으로 짜서 만든 세계에서 유일한 금사옷 .--부처님께 올린 옷 --

 

 

 석류무늬 황새 유리쟁반

 

 5개 꽃잎의 단풍무늬 남색 유리쟁반

 

 황제께 선물할 때 사용하는 금박을  한 쌍봉 함수모양 네모함

 

 

 

 금박을 한 인물화 은단지

 

 

 

십사지가위

 

 십사놋숟가락

 

 여수낭가

 

 

 

 

 홍라 바탕에 축금수 속치마

 

明衣 : 즉 冥衣로서 중국 고대에 무덤에 함꼐 묻던 옷 --대홍라 지축 금수명의 (大紅羅地축金繡明衣)--5벌이  발견 되었다 --부처님 께 바친것들이다.---측천무후가 최고의 세공가를 모아 만든것이라함

 

 

 

 

금은사결 조롱자--바구니--는 미세한 금사와 은사로 짰다  --이는 덩이차(차의 가루를 뭉치어

조그맣게 만들어 놓은 덩이, 團茶라고도함 )를 덖을 때 쓰던 것으로, 당나라  희종이 하사한 것이다 .

 

유금 비홍 구로문 은롱자--금도금이 되있으며 --이또한 덩이차를 덖을 때 사용한 것이다

당나라 것

 

 

 

 연꽃을 두른 굽 있는 은 사발 분포

 

금박을 한 꽃 4송이 은식저

 

 

유금 홍안문 은향낭--이안에는 향을 넣었던 것임

 

 

 

 

 

 

 

 

 

 

 

 쟁반 바닥에 쌍봉 함수문양을 한 장식품

 

 쌍봉 함수 문양 금박을 한 5족 은노대

 

 훈로뚜껑문양 -연화 거북

 

 

 수정베개

 

 은병수정화뢰

 

 

 

유리 꾀미 장식품 

 

 

연좌 밑면, 밑변 변의 둘레에 대일삼신의 범문(梵文)으로 된 주문을 새겼다  

 

발원문 편액 일부

 

 세가닥 금강저로 된 가드레일

 

 

당나라 개원 홍보 

 

 

당나라 건원 중보 

 

 

 

 

 당나라떄 것으로 금색 털을 가진 사자

 

 금은화조 도화 --그릇 밑쪽의 그림이 금은으로 그려진 꽃과 새의 모습이다.--이렇게 우아한 그릇 세계 유일일것 같다 --나의 개인 생각

 

유리병

 

유금곤문 권족좌파라자---이 것은 속이 찬합같이 생겼다

 

 迎眞身金花四輪十二環 錫杖이다(영진신금화사윤 십이환 석장) --석장(지팡이) 웃부분의 세부사진 --금 은으로 된것임

 

금박을 한 단화 작은 은바리 와 금박을 한 단화 작은 은바리 부감도

 

 

 가릉빈가문 금바리

 

금박을 한 단화 작은 은바리

 

 

 

 

 

 

이곳의 모든것은 부처님께 공양한 물건 들인데 아름답고 찬란한 것으로 , 당나라때 부터 청나라 까지 내려 오며 부처님께 바친 공양물들로서 --모두가 우리가 보지 못했던 모양들이다 .--이곳에

모든 물건들은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어있음

.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9대 기적이자 중국의 국보 중 최고의 성보로 봉안되어온 법문사" 불지사리 !"

 

 

*** 부처님 진신지골사리( 眞身指骨舍利)

 

1981년 8월 24일, 중국 시안(西安)의 법문사 주변에는 열흘 이상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오전 10시쯤 사찰위로 천둥번개가 치더니 13층의 팔각 진신보탑이 두동강 났다. 400여년간 서있던 탑의 서쪽면이 마치 예리한 칼에 베인 듯 꼭대기부터 반쪽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인 86년 나머지 절반도 완전히 무너져 버려 그해 가을 중국 당국은 탑을 철거했고, 이듬해 봄 유물 발굴작업을 시작했다 .

어느 날 발굴팀은 바닥에서 조그만 굴을 발견했다. 그걸 파고 내려가다 돌문을 발견하게 된다.

지하궁의 입구였다.

    그속에선 전설의 불지(佛指) 사리가 보물 3000여 점과 함께 나왔다.

 

  불지사리란 석가모니다비(기원전 485년) 에서 나온 손가락뼈다.

7일동안 화장(火葬)을 했는데도 재가 되지 않은 길이 3.7cm의 진신(眞身: 부처의 몸) 사리다.

  지하궁에서 나온 진신지문비(眞身志文碑)는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다.

 

석가세존이 남긴 사리는 8만 4000여개다. 

그것들은 기원전 240년 인도 아소카 왕에 의해 나라 안팎으로 흩어진다. 포교를 위해 쓰인 것이다. 그때 중국으로 보내진 19과의 진신사리 중에 하나가 불지사리다.

   고대 중국의 황제들은 이를 궁전에 모셔 놓고 친견했지만  후한(後漢) 때 법문사로  옮겨졌다.

부처의 영골(靈骨)을 황제 손에 맡기는 건 위험하다고 본 고승 안세고가 그렇게  한 것이다.

당나라 의종은 아예 지하궁을 밀봉, 접근을 막았다. 이후 불지사리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불지사리가 다시 발견된 날은 음력으로 석가탄신일이다.  그래서 발굴 당시 " 부처가 현신(現身) 한것" 이라는 예기도 나왔다.  이것을 한떄 물개의 뼈라고 깎아내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 바람에 시뻘겋게 달궈진 쇠그릇 속에서 테스트를 받기도 했지만 영물은 색깔조차 변하지 않았다.

   이것을 유네스코는 세계 9대 기적중 4번째 기적으로 지정했다

불지사리를 보면 한 가지 소원이 성취된다는 전설이 있다. 진신사리의 영험함에 관한 기록은 많은 문헌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장쩌민 (江澤民) 주석이 불지사리 친견 이후 주석직에 올랐다는 소문도 있어 불지사리는 가는 곳마다 구름떼 같은 인파를 불러 모으고 있다.

불지사리 전시회가 열렸던 태국 (1994년 )에서 200만명, 대만 (2003년) 에서 400만 명. 홍콩(2004년)에서 150만 명이 몰린 것도 이때문이다.   또한 1987년 발굴 당시 진신사리의 보호를 위해, 모양과 색깔이 똑같은 3개의 모조품(영골사리)이 함께 나왔으며, 그 영험한 힘은 진신사리와 같다하여 1994년 태국에서는 이 영골사리를 200만 명이 친견하기도 했다.

 

우리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이땅에 더 충만해 지기를 빌어봅니다.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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