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5일째날 : 4인 1실 밤기차로 란주에서 가욕관으로
아래 그림부터는 만리장성의 끝 가욕관
가욕관지도
주천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가욕관은 도시라기보다는 가욕관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마을이다. 동쪽의 보하이만에서 시작된 만리장성의 6,000㎞의 이어짐은 이곳 가욕관에서 끝난다. 이곳은 또한 서역에서 여행을 하고 가는 도중 말이나 낙타를 갈아타고 가는 중계지점이기도 했다.
최대의 볼거리는 물론 자위관성이다. 이 성은 자위관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약 5㎞ 정도 떨어진 곳의 고비사막 안에 있다. 황토빛의 황량한 벌판 위에 성루가 우뚝 서 있는 모양이, 오랜 역사를 이어온 남모를 인내를 담아내고 있다. 이 성은 1372년에 설계되었는데, 주도면밀하게 설계되어 성이 완성된 후에는 예상했던 벽돌 수에서 조금의 오차도 없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黑山石刻畵像, 魏晋壁畵墓 등이 있어 찾아볼 만하다.
입장료로 보는 가욕관 전경
가욕관 장성--만리장성의 끝
황해의 산해관에서 시작한 만리장성은 드디어 사막의 언저리인 가욕관(嘉욕關)에서 그 장엄한 대미를 이룬다. 감숙성의 주천으로부터 서쪽으로 30km지점이다 명대인 1372년에 건축된 가욕관의 면적은 25,000(mx2-컴에선 제곱미터가 표시 않되서 )로써 동서 156m에 남북160m의 규모이다. 옛날에는 상주 주둔 병사만도 4백명이었다 하나 지금은 썰렁할 따름이다.
(서쪽으로 6,000Km를 달려온 만리장성이
가욕관에서 이런 모습으로 끝납니다.)
가욕관장성
가욕관 長成은 明代 洪武 5년(서기 1372년)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하북성의 산해관과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있어서 동시에 "天下第一雄觀"이라 칭한다. 성은 전체적으로 토벽으로 이루어진 내성과 벽돌을 쌓아 만든 외성의 이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군사방위체계를 따른 구조로 되어있다.
광화문과 유원문 밖에는 옹성이 둘러싸 보호하고 있으며 가욕관 내성 장벽위에는 성루와 망루,갑문루 등이 모두 14채가 배치되어 있다. 관루 안팎으로는 옹성이, 네 모퉁이에는 성루가 설치되어 있고, 남북으로는 망루가 우뚝 솟아있어 사막과 구름이 서로 어울리는 가운데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망루를 건설할 때 장인이 사용할 재료를 정확히 계산하여 관성이 완성된 후 벽돌 한 조각만이 남았다고 한다. 해질 무렵이나 밤의 경치가 평상시보다 더 뛰어나다.
현재는 내성이 중심성으로써 주변 둘레는 640 미터이고 면적은 2만5천 평방미터, 높이는 10.7미터이다. 내성의 동쪽과 서쪽에 문이 있는데, 동쪽의 문은 "광화문(光化門)"으로 '상서로운 기운이 동쪽에서 일어나 광휘가 두루 비춘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서쪽의 "유원문(柔遠門)"은 '회유로써 서쪽의 변방까지 안정시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가욕관 성의 서편으로는 만리장성이 이곳에서 끝나는 제 1 돈대가 있다. 그 아래로는 약 40미터 정도의 절벽이 아찔아찔하게 만들고, 그 건너편으로는 만년설이 덮여있는 시원한 기련산맥이 보인다. 바로 한무제 때 곽거병이 이곳에서 흉노를 무찔렀다는 곳이다.
만리장성은 동쪽은 발해만에 면한 산해관을 기점으로 하고, 베이징 북쪽을 지나 서쪽으로 약 6000km나 이어진다. 가욕관은 그 서쪽 끝의 요새인 셈이다.
가욕관 관성은 만리 장성의 수많은 관성 중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는 것들 중 하나이다
가욕관장성 안에 있는 집들
가욕관장성 안에 있는 집들
가욕관장성 안에 있는 집들
아래는 그림 같은 위진벽화(너무도 아름답게 남아 있는 벽화 )
위진 묘 속에 있는 벽화
위진 묘 안에 벽화
가욕관에서 동북쪽으로 20KM 떨어져 있는 가욕관시 신성(新城)의 고비사막 위에 있는 고분묘 군으로 그림의 소재는 농사,양잠,목축,수렵,연회,기악,소와말 등의 가축, 농기구 등 모두가 실제 생활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경작을 할때 두 마리의 소와 써레 등을 사용하는 모습의 그림은 그러한 농사법의 연원을 추측게 해주는 자료 중 가장 오래된 자료이기도 하다.
그림은 주로 황토를 써서 붉은색을 띠며 색채가 선명하면서도 명쾌하여 위진(魏晋)시기 하서(河西)지구의 사회와 문화, 사상의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화면 구도가 엄밀하고, 단계가 분명하며 기법이 능숙하면서도 색채가 산뜻하고 아름다워 감숙 지구의 석굴 벽화예술의 연도를 밝히는데 중요한 참고자료 역할을 하고 있다.
1000여 개의 고무덤이 분포되어 있는데, 현재 이미 10여 개가 발굴되었고, 발굴도중 대량의 벽화가 출토되어 "地下畵廊"이라 불려지고 있다.
위진묘 내부의 벽화 --
위진 벽화묘 보기를 끝으로 가욕관 출발 돈황으로 약 4시간 이상을 버스로 이동 하는데 버스가 지날때 마다 사막 먼지가 버스에 하얗게 덮여 앞이 않보이는데 우리 버스 기사님 항상 앞서는 바람에 먼지 세레는 덜 받았습니다
여행 6일째날
돈황에 도착하여 돈황산장에서 숙박하고 새벽 4시에 명사산에 올라 낙타를 타고 오아시스가 있는 명사산을 관광했습니다.
끝없는 사막을 지나 가끔 이렇게 풀과 나무가 있는 곳이 있는데
--이것은 일본인들이 중국 사막에 나무를 심고 있다고 함
사막에 있는 명사산 가는길 --차창에서 찍어서 좀 희미하네요.
끝없는 사막에 일본이나 한국등 여러나라에서 나무를 심어서 키우는 곳이랍니다.
특히 일본인들 매우 열심히 나무를 심는다네요.
심으면 10 %살기도 어려운 사막인데도 물을 많은 돈 들여서 끌어오는가봐요.
그곳은 물, 물이 문제지요.
제가 탄 낙타 제일 잘 생겼어요.
그리고 얼마나 착한지 말도 다 알아 듣는것 같았어요.
낙타를 타고 명사산과 월아천 앞에 내려서 둘러 봤습니다
명사산, 월아천--그림같죠?
월아천(천년을 가물지 않았다는)
월아천은 명사산 안에 있는 초생달 모양의 작은 오아시스로서 남북길이가 약 100m, 폭이 25m 정도다. 서쪽에서 동으로 갈 수록 수심이 깊고, 제일 깊은 곳은 5m 정도인데, 물색이 맑고 파래 거울을 보는 것과 같다.
이곳의 물은 돈황 남쪽에 솟아있는 곤륜산맥의 눈 녹은 물이 지하로 흘러 비교적 저지대인 이곳에서 솟아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매년 광풍이 불어도 이곳 만큼은 좀처럼 모래에 덮이지 않아 기이하게 여겨졌고, 옛부터 이곳에서 살았던 칠성초와 같은 생물이 평생 늙지 않아 '만천(萬泉)'이라 불리기도 했다.
모래산에 둘러싸인 채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어우러진 풍경은 사막 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이다. 이런 월아천은 사막의 오아시스가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일몰때 명사산에서 바라보면 정말 예술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마르지 않는 월아천에는 슬픈 전설이 있는데, 오래 전 돈황이 갑자기 황량한 사막으로 변하자 어여쁜 선녀가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고, 이 눈물이 샘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후에 선녀가 샘 안에 초생달을 던져 빛을 찾게 했단다. 겨울에는 또 물이 얼어붙어 사막의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사막과 월아천
사막 한가운데의 월아천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월아사의 월천각 아래서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명사산 월아천 월아사
월아사 마당에서 내려다본 월아천 --보이시죠?
모래산 밑에 물 , 그것이 월아천 이예요.--오아시스죠.
사막 한가운데에 이런사원 (옛날엔 도교사원이였다함)이 있답니다,--정말 신기하죠?---이곳이 오아시스예요. 이곳에 가려면 낙타타고 20분 가량 가야되요. ---지금은 불상이 있었어요.---
사막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모래산 위에 개미처럼 보이는 것이 사람입니다
명사산 사진범공선생님 작
능선의 곡선이 너무 부드럽고, 아름답다
뒤에 보이는곳 오아시스 예요--천년이 넘게 물이 항상 그대로 있답니다.그못의 이름이 --월아천(반달 같이 생겼어요 -- 물이 그곳에 있는 신비에 대해 미국에서 와 조사했봤는데 신기한 일로 , 그곳 물은 언제나 같은량으로 있답니다
제뒤에 사막이 명사산입니다,
울鳴 모래沙 산이예요.
산전체가 모래인데 이곳 모래바람이 작난이 아니라네요.
우리 갔을때는 운좋게 바람 않불어 줬지요.
바람이 세게불땐 산이 (모래니까 ) 통째로 움직여 이동해서 동쪽에 있던 산이 서쪽으로 이동 되기도 한다는 군요.
이동하면서 내는 모래 울음 소리를 낸답니다.
멀리 사람들이 모래산 꼭대기를 오르고 있네요.
저도 오르고 싶었는데 우린 돈황을 가야해서 시간상 못갔어요.
오르려면 그들이 만들어 놓은 나무 계단을 밟고 오르면 편한가 본데 사용료는 받지요.
우린 모래산 오르려는데 시간이 없다는 ......
새벽에 낙타를 타고 명사산 월아천을 보고 아침 식사를 한후 다시 버스로 약 30분 가서 우리의 목적지 막고굴에 도착하였습니다. 막고굴에는 북위/ 수/당/ 송/ 원나라에 걸쳐 만든 세계문화유산이 있습니다.
막고굴에는 벽화, 동굴, 불상등 다양하고 아름다운 유산들이 가득했습니다.
http://blog.daum.net/hyeanj/5535694 ====> 돈황 막고굴은 하도 볼것이 많아서따로 올렸습니다. 앞에 주소줄을 클릭하면 돈황이 나옵니다.
사주고성유적(세트)
돈황의 시가지를 빠져 나와 남동쪽, 명사산이 있는 사막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성이 하나 나타나는데, 이곳이 영화세트장으로 유명한 돈황고성이다.
1987년에 돈황을 사주(沙州)라 부르던 당나라 때의 성을 영화를 찍기 위해 일본인들이 재현한 것인데, 그 이후에도 야외 세트장으로 활용한다.
다른 유적지들에 비하면 역사적 의미나 별 감흥이 없지만, 이 곳을 짓기 위해 철저한 역사적 고증을 했고, 그 때문에 이곳에 가면 천년전 돈황의 거리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또 재미있게도 지금의 사회와 다를바 없이 주관(酒館:술집), 미점(米店:쌀집), 여관, 식당, 귀의군 절도부(歸義軍 節度府:행정관청) 등이 복원되어 있고, 마약을 하는 가게나 말을 대여하는 마구간, 안경을 파는 가게 등이 있어서 당시의 사회모습을 짐작케 한다.
다시 유원(돈황역) 도착후 19시 41분 열차로 4인 1실 침대차에서 숙박을 하고 새벽 5시 14분에 투루판에 도착하여 아침을 호텔식으로 하고 15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옛고창국의 -고창고성을 보러 출발합니다.
여행 7일째날
(실크로드는 동서양의 문화를 이어준 , 기원전 138년 한나라 무제가 장건을 서역에 파견하면서 개척된 길 , 2000연년이라는 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길목 곳곳의 화려한 전통과 문화 유적이 있다. 투루판, 돈황 우루무치 등.....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이었던 투루판은 불타는 사막 위에 자리한 오아시스 도시다. 투루판으로 향하는 길은 모래 먼지가 날리는 황량한 사막길이다.
나무 한그루 ,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사막길로 몇시간을 가면 . 투루판에 도작하게 되는데 그곳엔 나무가 우거지고, 시원한 물이 넘쳐흐르는 수로가 도시 곳곳으로 뻗어 있는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트루판은 대륙에서 가장 낮은 땅이고, 이스파엔 사해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치표가 낮은지역이기도 하다. (투루판은 위구르어로 '파인땅 ' 이라는 의미다. ) 실제로 투루판은 천산산맥의 남쪽 산록에 분지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투루판은 실크로드 선상에서 비교적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 꼽힌다. 투루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적지인 교하고성, 고창고성 등이 있는데 고창고성은 시가지에서 남동쪽으로 46km 정도 떨어진 들판 위에 자리해 있다. )
고창고성에 도착하여 4마리의 말이 열심히 달리는 마차를 타고 (삼장법사 계시던곳)을 갑니다.
고창고성
499년 한나라 출신의 麴文泰(국문태)가 세운 고창국의 유적으로, 투루판에서 남동쪽으로 46㎞ 떨어진 곳에 있는 옛성터로 둘레가 5.4㎞, 면적이 200만㎡으로 방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뒤쪽으로 화염산이 늘어서 있는데, 누런 황톳빛의 고성유적과 붉은 빛을 내뿜는 화염산의 대조가 인상적이기도 하다. 이 곳은 삼장법사가 불교 경전을 구하려 인도에 가는 도중 이곳에 들러 국왕의 간청으로 1개월 간 불교를 설파한 적이 있다고 한다. 640년에 당나라에 멸망한 이 고창국 유적 안은 외성, 내성, 궁성 등의 3부분으로 되어 있다. 현재 성벽, 성문, 사원의 불감, 다각형의 불탑 등이 남아 있지만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삼장법사가 사시던곳으로 , 정면 앞에 보이는 네모 반듯한 집이 설법전이라함
삼장법사 사시던 절의 대웅전(이 둥근집이 ) --그시대의 것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함
삼장법사 사시던 절의 대웅전(이 둥근집이 ) --그시대의 것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함
고창고성의 낙타. 원주민 아이들과 함께 --사진 한장찍을 때 1$
고창고성의 유적들 둘러보기 햇볕이 얼마나 뜨거운지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집니다
고창고성의 유적들
역시 사막답게 고창고성 매우 뜨겁습니다.
고창고성이라고 쓰여진 비석
고창고성안에 유적들 --옛적에 사람들이 살던 집의 남은 모습들
고창고성입구에 있는 민속상품점
고성을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중에 버스에서 한컷 --끝없는 사막 !
타카리마칸사막(석유 많이 난다)은 세계 2번째고 고비사막(길운산맥)보다 크다
고비사막은 자갈로 되어있어서 아무것도 못심는다. 그속엔 강철 수정 등 많은 것이 나와서 복산이라함
돈황에서 남쪽은 길운산 북쪽은 북서산ㄴ 동 사미산 서 타카리마칸산(면적 3,12만 km) 인구 15만 중 도시 7만 돈황은 도시 소수민족 많다 회족, 장족, 몽고족, 위그르족
주식: 밀, 옥수수, 목화. 평균온도 25도C 낮 밤 차이 0~15도 . 강수량 39mm . 물 지하수(2000m 5000mm 이하에서만 나옴 . 사막기후. 살구 토마토 ~ 야광컵(길운산 기슭에 공장) 카펫 막고굴은 사미산과 명사산 중간에 있다.
화염산을 지나 끝없이 가다보면 아스타나고분이 나옴
아스타나고분
阿斯塔那古墓는 약 3m의 지하에 있는데, 내부에는 벽화가 있는 고묘도 있으나, 그것을 제외하면 부장품이 없고, 부장품은 신강자치구박물관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아스타나고묘구는 고창고성 북쪽 4km 지점에 있는 고창국 귀족의 묘이다. 아스타나는 위구르 어로 '휴식의 장소'라는 뜻이다. 3-8세기에 걸쳐 조성된 약 500기의 묘는 건조도가 높아 보존 상태가 좋다. 발굴 작업중에 대랴의 투루판 문서와 면, 견직물, 驥馬俑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문물은 위구르 자치구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미이라는 모두 우루무치 박물관이 보관되어 있다.
미이라 저 밑에 있음
버스에서 보는 고비사막
고비사막
황량한 사막 저 건너에, 만년설이 보입니다.
바이즈크릭(Baizeklik )천불동 계곡
바이즈크릭(Baizeklik )천불동 석굴사원
투루판 시내에서 50㎞ 떨어져 있는 화염산 북쪽 기슭의 강 절벽에 만들어진 석굴 사원이다. 바이쩨크릭은 위구르어로 아름답게 장식된 집이라는 뜻으로서 6세기의 수조시대부터 14세기까지 이 석굴사원에는 많은 벽화며 불상이 건설되었다. 그러나 14세기의 이슬람 제국의 침략과 외국탐험대에 의해 어떤 것은 파괴되었고 어떤 것은 해외로 반출되었다. 유명한 고창고성과 22km사이에 두고 있다. 암벽에 하나하나의 동굴 혹은 암벽 그대로 한 조각들은 웅장하고 장관이다. 번호를 달아놓은 동굴이 77곳이고 그중 40여곳에는 벽화가 보존되어 있다. 벽화 총면적은 1200여평방m로서 투루판지구에서 현존하는 동굴이 제일 많고 건축형식이 다양하며 벽화가 제일 풍부한 석굴군이다. 천불동 입구의 한 쪽에는 손오공과 삼장법사의 석상이 놓여있어서 투루판이 서유기의 한 무대임을 알 수 있다. 동굴 내에 환상적인 벽화가 있으며, 주변경관도 빼어나다.
바이즈크릭(Baizeklik )천불동 계곡
바이즈크릭(Baizeklik )천불동 계곡
작렬한 태양 아래 이쁜 아가씨들이 모델을 하겠다고 ......
바이즈크릭(Baizeklik )천불동 계곡 나무사랑 얼굴 익었어요.--완전 발갛게
실크로드의 사막 -화염산 - 사진은 범공선생님 작
고대 동서의 교통로인 실크로드, 중국의 장안 : 현재의 서안 으로 부터 로마에 이르기까지의 길도 막막한 사막지대일 따름이다 , 기차로 14시간을 달려도 보이는 것은 오로지 광할함과 적막감 뿐이다.
火焰山은 서에서 동으로 투루판분지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火焰山"은 길이가 98km, 너비가 9km이며 해발 500m좌우이며 최고봉이 871.7m이다. 고창고성 뒤로 약 500m 정도의 산으로 약 100㎞에 걸쳐 길게 이어진다. 화염산은 天山의 支脈중의 하나이며 5, 6천년 전에 히말라야산맥이 운동으로 형성된 것이다. 산구의 기온은 여름철에 47℃, 태양이 직사하는 곳은 80℃에 달하여 계란을 익힐 수 있다. 위구르인은 이 산을 '붉은 산' 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산이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햇빛을 받아 반사하면 마치 불타는 듯한 모양이어서 이런 이름을 붙었다고 한다.
화염산
낙타 옛날에는 실제의 교통수단이었겠지만 현재는 관광객용으로 ......
손오공이 신통 부리던 화염산이라함
화염산 현장스님탑
박물관에 있는 당삼채 -
박물관에 있는 당삼채 여인
신강위그르박물관_ 특수한 사막기후로 미이라의 보존이 가능하다고 한다
여행6일>http://blog.daum.net/hyeanj/5535694===> 돈황 막고굴1
http://blog.daum.net/hyeanj/5516447====<여행 ,8 9일투루판 우루무치 천산과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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