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상(無住相)
남을 위해 하는 보시(布施)에 대해 아함경에서는 일곱가지를 나열하고 있는데, 1.눈으로 짓는 보시는 사랑스럽고 다정한 눈빛을 짓는 것이고, 2.얼굴로 짓는 보시는 웃는 얼굴, 밝은 얼굴, 부드러운 얼굴을 하는 것이며, 3.말로 짓는 보시는 정직하고 칭찬하는 말을 하는 것이며, 4.마음으로 짓는 보시는 남의 잘한 일, 훌륭한 일을 보면 마음으로 찬성하고 동참하는 것이며, 5.몸으로 짓는 보시는 남의 일을 함께 거들어 주는 것이며, 6.좌시(佐施)는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이며, 7.사시(舍施)는 남을 관찰하여 편안하고 기쁘게 해주는 보시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선(善)의 보시행을 행하되 상(相)은 남기지 말아야 하며, 어떠한 보답을 바라는 착(着)도 버려야 한다는 무주상보시행(無住相布施行)이 제일 바람직한 선업(善業)이라 가르치고 있다.
무주상보시란, 베푸는 사람이나 베품을 받는 사람이나 자연스럽게 주고 자연스럽게 받기 때문에 굳이 인사치례를 하거나 생색을 내지 않는 보시행을 말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이와 같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는 불가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기독교에서도 <마태복음>에 이와 비슷한 가르침이 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의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의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도가나 유가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의 글들이 있다. 애자증지시야(愛者憎之始也) 덕자원지본야(德者怨之本也). '사랑은 미움의 시초이고 은덕은 원망의 근원이다' 관자(官子)의 말인데, 비록 선(善)의 나무를 심었어도 악(惡)의 과(果)를 거두게 되는 것은 내가 상대에게 뭔가를 주었다는 착(着)이 남은 탓이다. 예를 들면 길을 지나다 모르는 사람에게 뺨을 한대 맞으면 그냥 재수없는 일로 치지만, 자신과 친한 사람에게 뺨을 맞으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 것과 같다는 것으로 善을 행하되 그 선을 행했다는 상(相)은 남기지 말아야 한다(무주상)는 것이다.
열자(列子) 황제편(黃帝篇)에 나오는 이야기 한 자락을 더 펼치면, 어느 날 양자(楊子)가 송나라를 지나다 한 여관에 묵게 되었다. 그 여관 주인에게는 두 사람의 첩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매우 아름다웠고 다른 한 사람은 지지리도 못났다. 그런데 밉게 생긴 사람이 오히려 귀하게 대접받았고, 예쁘게 생긴 여자가 천하게 대접받고 있었다. 기이하게 여긴 양자가 여관 주인에게 그 까닭을 묻자, 여관 주인은 이렇게 답했다. " 예쁘게 생긴 사람은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가 어디가 예쁜지를 모르겠으며, 밉게 생긴 사람은 스스로 밉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가 어디가 미운지를 모르겠습니다." 양자가 그 여관 주인의 말을 듣고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너희 제자들은 기억해두어라. 좋은 일을 하고서 스스로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자부심을 버릴 수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다른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지 않겠느냐?"
선불교(禪佛敎)에서 받아들이는 부처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의 해석은 '인간의 본성은 부처이며, 본래부터 부처이기 때문에 무한한 존엄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중생과 달리 불성(佛性)을 깨쳐 각자(覺者)가 됨으로써 윤회의 굴레를 벗고 더 이상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화엄사상에서 주장하는 개체(個體)란, 재산 지위 능력이 잇는 사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태양이 비치지 않는 음습한 곳이나 사회의 구석진 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총망라한다. 어떠한 사람도 사람인 이상 그의 절대적 존엄성이 있다. 각자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껍질을 벗고 본래의 진면목을 나타내는 일이 바로 불성의 개발인 것이다.
인간 각자의 개인의 존재는 개인만의 존재가 아니다. 무한한 넓이를 가지고 있다. 과거로부터 이뤄온 연기의 법칙, 인과의 도리에 따라 오늘날의 이 시점에서 그의 삶을 살고 있다.
"이 하루의 목숨은 존중해야할 신명이다. 존경해야할 송장이다. 이와 같은 목숨이니 스스로도 사랑하고 스스로도 존경해야 한다." 옛 역대 현자들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 한결같이 강조했던 인간존엄의 가르침이다.
꽃이 피었으니 이 세상은 이제 봄이다. 봄은 보라고 봄이다. 보기 위해선 눈을 떠야 한다. 부처님은 눈 좀 뜨고 바로 보라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을 가르치셨다. 누구나 깨치면 부처요, 주인이요, 꽃이다. 너도 꽃이요, 나도 꽃이다. 이 세상은 찬란한 꽃밭이며 화엄법계인 것이다.
자등명 법등명 (自燈明法燈明), '오로지 자신 스스로와 법만을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 싯달타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이다.
여여로운 휴식 화락차담(和樂且湛)하시고 청안청락(淸安淸樂)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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