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부터 선농단을 한번 가보고 싶었다가 오늘 드디어 시간을 내었다.
선농단 가는 길 초입에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터] 라는 표지석이 있어서 찍었다.
드디어 선농단을 찾았다. ---선농단 입구에는 이런 계시판이 있었다
그리고 그바로 옆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다.
이곳이 선농단 정문에서 보이는 곳
앞에 보이는 문인석의 뒷모습과 그앞에 보이는 선농단의 향나무(천연기념물 제 240호 )
문인석의 앞모습
서울 제기동 선농단(先農壇)의 향나무
시대 약 500년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2동 274번지 1호
이 향나무는 높이 10m,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가 2m정도이며, 현재 국내에서 자라고 있는 향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이 향나무는 선농단을 축조할 당시에 심어진 것으로 보인다. 대개의 향나무가 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하여, 이 향나무는 위로 곧게 자라난 것이 특징이다,
향나무는 일반적으로 높이 20여m, 줄기의 가슴 높이 직경이 1m 까지 자라는 상록성 큰키나무이다.
잎은 바늘 모양과 비늘 모양의 두 가지가 있다.
나무의 나이에 따라 6-7년생까지는 바늘 모양이었다가 그 이후부터는 점차로 비늘 모양의 잎이 돋아나 한 나무에서 두 종류의 잎을 발견할 수도 있다. 꽃은 4월에 피고 둥근 모양의 열매는 자훅색으로 익으며 그 안에 종자가 들어있다. 목재는 단단하면서 광택이 아름다워 연필이나 장식용 가구, 주방기구 등의 재료로 사용된다. 또한 은은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를 지낼 �도 널리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지역과 울릉도에 분포하고 있으며, 일본에도 자라고 있다.
앞에 보이는 곳이 선농단 전경
선농단(先農壇)
지정번호: ;사적 제 436호
시대 : 조선초기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2동 274번지 1호
이곳은 조선 초기부터 농업과 관련있는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 后稷氏)에게 선농제(先農祭)를 지냈던 제단이다. 고대로부터 농업은 국가의 주요 산업으로서,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권장하기 위해 국왕은 선농단에 제사를 지냈다. 선농단에 제사하기 시작한 것은 신라 때부터이고 , 고려 때에도 국왕들이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하였지만 조선시대에는 농본정책을 내세워 선농제를 더 빈번히 지냈다. 조선 제9대 왕인 성종 6년 (1475)에는 관경대(觀耕臺)를 선농단의 남쪽 10보 밖에 쌓아 신하들과 함께 제사를 지내고, 해뜰 무렵에 친히 밭을 간 다음 신하들은 물론 함께 밭갈이에 참여한 농민들을 위로하였다.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 후에는 농부들을 위해 소를 잡고 곰국을 끓여 나누어 먹었는데 , 이 음식을 '선농탕(先農湯)이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설렁탕은 이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가까이 본 선농단
선농단 전경
선농단 안에서 밖의 정문쪽으로 찍은 것
선농단 주변에 있는 민들레
선농단 정문
선농단을 한참 걸어 나오다 보니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의 꽃이 처음 보는 꽃이라서
무슨 꽃인지 몰라서 올립니다.
아시는분 알려주세요. --감사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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