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아름다운 전설이 있는 영주 부석사 !

백합사랑 2007. 11. 12. 17:52

올 가을엔 눈호사를 많이 했다. 부석사 입구도 이쁜 단풍이 눈을 즐겁게 한다.

 

 

 

 봉황산 부석사와 삼층석탑 --똑같은 탑이 양쪽으로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130호

통일 신라 후기 3층 석탑으로 쌍탑이다.  동탑이 360cm, 서탑이 377cm으로 두 탑의 크기와 양식이 거의 같다.

이중기단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린 것으로 무량수전의 동쪽에 있는 석탑과 같은 형식이다.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고 정제된 모습으로 신라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단과 탑신부의 몸돌은 기둥을 본 떠 새겼는데 , 기단은 각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조각을 두었고 ,몸돌은 모서리에만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각 층의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윗부분은 없어졌는데 , 지금 놓여져 있는 것은 뒤에 보충한 것이다.

 

 

 부석사 안양문

 

  부석사무량수전 : 국보 제 18호

 

 무량수전 : 국보 제 18호

부석사의 본전으로 보처 없이 화엄도량에 서방극락세계의 주불인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신라 형식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초석을 다듬어 놓고 그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정면 5칸 , 측면 3칸의 규모로  주심포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고려 현종 7년 (1016) 원융(圓融)국사(964~1053)가 중창하였다.  1916년 실시된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서북쪽 귀공포에 묵서명에는 공민왕 7(1358)년 왜구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서 우왕 2년(1376) 다시 지었다고 되어 있다.  조선 광해군 3년 (1611)에 서까래를 갈고 단청을 하였으며,  1969년에도 보수 하였다.  건물 천장부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은  외관의 세련된 풍모와 아울러 한국건축의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보처 :주불의 좌우에 모신 보살

주심포 : 기둥 머리에 얹은 포

 

 ***법당안에 모셔진 아미타부처님은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찍지 못했으며 자료에 있는 것으로 올림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안에  모셔진 소조여래좌상은   국보 제 45호 이며

불상은 흙을 빚어서 만든 소조불이며  높이 278cm,  광배 높이는 380cm 이다.   무량수전 안 서쪽에 마련된 불단위에 모셔져 있으며 , 다리는 결가부좌를 하고 손의 모양은 항마촉지인으로 무릎 위에 올린 오른 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이 큼직하며 얼굴은 풍만하다.   양쪽 귀는 긴 편이며, 잘록한 목에는  삼도(三道)가 보인다.   통일 신라 시대 불상 조형을 충실히 계승하였지만, 도식적이고 상징적인  일면에서 시대적인 양식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조성시기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온몸에 금빛이 화려하며,  고려시대 불상으로서는 상당히 정교한 수법을 보이는 걸작이다.

 법당 서편에 있는 부석 :  신라 문무왕 1년(661)에 의상스님이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스님을 연모한 '선묘' 라는 낭자가 있었다. 의상스님이 장안 종남산 지장사의 지엄삼장 문하에서  10년간의 수학을 마치고 심오한 경지에 이른 후 귀국 뱃길에 오르자,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선창으로 달려갔으나 의상스님이 탄 배는 벌써 수평선 뒤를 사라지고 없자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스님이 탄 배를 호위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한다. 그 후 의상스님이 화엄학을 펴기 위하여 왕명으로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자  선묘신룡이 나타나  조화를 부려 이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물리쳤다 하여 '부석' 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 이중환의 택리지 기록에 의하면 " 아랫위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실을 넣어 당기면 걸림없이 드나들어 뜬돌임을 알 수 있다. " 라고 적혀 있다.  이리 하여 절 이름을 '부석사 '라 불렀으며, 그후 선묘신룡이 부석사를 지키기 위해 석룡으로 변신하여 무량수전 뜰 아래 묻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안양루와 석등 : 무량수전 앞에 있는 석등

 

 무량수전 앞의 석등  국보 제 17호 : 통일 신라시대 일반형 석등으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작품이다.

 무량수전과 안양루

 

 

 무량수전 동편에 사리탑 : 보물 제 249호

통일 신라시대 조성한 석탑이다. 1960년 해체 수리 당시 사리공이 발견 되었으나  사리구는 없어졌고 , 기단부에서 철제탑, 불상파편, 구슬 등이 발견 되었다. 이� 일부 파손된 부분은  새로운 부재로 보충하였다.

탑은 원래 법당 앞에  건립 되는 것이 통례인데 이 석탑은 법당 동쪽에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안양루와  전각들

 

 

 조사당 가는길에서 보이는 부석사

 

의상대사상을 모신  부석사 조사당( 국보  제 19호

 

 

 부석사 조사당에 모셔진 의상대사의 모습--다른 곳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조소상이다. 

뒤의 탱화도 의상스님에 관한 변상도

 

 부석사 조사당( 국보  제 19호  )과 조사당 앞에 철조망 속에 선비화  나무 !

조사당은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에 있는 고려 말기의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층 맞배지붕 주심포계의 지붕으로  부석사 개기승인 의상국사의 진영을 안치하고 있다.   건물은 석재를 난적한 낮은 기단위에 서 있으며,  중앙에 석계를 두었다. 고려시대의 다른 건물에 비하면 기둥에 나타난 배흘림이 약화되었고 기둥머리에 헛첨자를 씨워 두공을 받치고 있다. 주두와 소루에는 굽받침이 없고 외목도리 밑의 장설도 단장설이 아닌 통장혀로 되어 있어 조선 초기의 주심포계 건물과 같은 점이 많다.

 

1916년에 수리 공사 때 발견된 묵서명으로 미루어 건립연대는 1377년 (고려 우왕 3) 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선 성종 21년 (1490) 중수  하였고, 동왕 24년(1493)년 단청을 하였다. 조사당 건물 내부 입구 좌우에  보살상 제석천, 범천, 사천왕상등 고려 말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1916년 수리하면서 떼어내어 지금은 보장각유물전시관에 지정 문화재로서 보관되어있다.

 

*또한 이건물은  부석사 제2의 목조건물로 고려시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나무는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조사가 중생을 위하여 짚고 다니시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밑에 꽂았더니 가지가 돋아나고 잎이 피어 오늘에 이르렀다하며 ,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도 항상 푸르게 자라고 있다.  일찍이 퇴계 이황 선생이 부석사를 찾아와 이 선비화(禪扉花)에 대한 시를 짓기도 하였다 한다.   이 선비화의 학명은 골담초(骨擔草)라고 부른다.

 

***언젠가 갔을때는 선비화에 노란꽃이 핀것을 본적이 있음 또다시 보고싶은  노란꽃 !!!

 

 

 의상스님을 연모 한 선묘낭자를 모신 선묘각

 

 나한전과 자인당 ---들어가면서 먼저 보이는 집이 나한전이고 뒤에 보이는 집이 자인당이며 나한전에는 정겨운 나한상들과 나한상 뒤에 따로따로 탱화가 있었다.

 

나한전

 

 

 

 자인당 안에 가운데 불상이 원래 모셔졌던 불상이고  좌우에 현재 모셔진  두 불상은 부석사 동쪽 폐사지에 있었던 것을 부석사 자인당에 옮겨 놓은 것이다.   동편의 불상은 나선형 머리에 상투모양의 형태가 불분명한데 얼굴은 둥근편으로 단정한 인상이다.  눈은 뚜렸하지 않지만  약간의 미소 흔적은 남아 있다.   어깨가 너무 뒤로 젖혀지고 가슴과 배가 편평하게 표현되었으며,  신체의 볼륨은 없는 편이다. 두손은 없어졌던 것을 보수 하여 놓았다.  서쪽의 불상은 동쪽 불상과 비슷하지만  신체가 좀더 풍만하여  부드러운 편이다.    9세기 후반기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으로서, 당시 불교사상의 특징과 불상 양식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 되고있다.

 보물 제 220호서쪽의 불상은 동쪽 불상과 비슷하지만  신체가 좀더 풍만하여  부드러운 편이다.    9세기 후반기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으로서, 당시 불교사상의 특징과 불상 양식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 되고있다

 

* 비로자나불 : 연화장 세계에 살며 그 몸은 법계에 두루 차서 큰 광명을 내 비춘다는 부처님

 자인당에 원래 모셔져 있던 불상 ! ---현재 자인당에 가운데에 모셔져 있다.

 자인당 안에  보물 제220호 동편의 불상  나선형 머리에 상투모양의 형태가 불분명한데 얼굴은 둥근편으로 단정한 인상이다.  눈은 뚜렸하지 않지만  약간의 미소 흔적은 남아 있다.   어깨가 너무 뒤로 젖혀지고 가슴과 배가 편평하게 표현되었으며,  신체의 볼륨은 없는 편이다. 두손은 없어졌던 것을 보수 하여 놓았다. 

 

이쁜 가을 끝자락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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