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지(慶熙宮址)
지정번호: 사적 제 271호
시대: 조선 광해군 8년(1616년)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2가
이곳은 광해군 8년(1616)에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元宗)이 살던 새문동 집터에 세워진 궁궐의 터다. 처음에는 경덕궁이라 하였으나 영조 36년(1760)에 경희궁으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 경희궁은 경복궁을 북궐(北闕), 창덕궁을 동궐(東闕)이라 했듯이 서궐(西闕)이라고 하였으며, 새문안 대궐, 새문동 대궐, 야주개 대궐이라고도 하였다
경희궁에는 왕이 나와서 조회를 하는 정전(正殿)인 숭정전(崇政殿)을 비롯하여 , 융복전(隆福殿), 회상전(會祥殿), 집경당(集慶堂), 흥정당(興政堂), 정시각(正始閣), 사현각(思賢閣), 흥화문(興化門), 등의 건물들과 다른 많은 부속 건물들이 있었으나 융복전과 집경당은 없어지고 나머지 건물 등은 1910년 부터 강제 철거 또는 이전 되기 시작하여 그자리에 경성중학교(지금의 서울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광복 후에 서울고등학교의 이전에 따라 현대건설이 부지를 사들여 사용하였고 , 이를 다시 서울시가 인수하여 1985년 사적지로 지정, 1988년부터 복원작업이 시작 되었다.
현재 숭정전과 회상전의 섬돌과 축대 . 계단 등이 일부 남아 있는 터전 위에 숭정전 . 자정전 . 태령전 등이 복원 되어 있다. 특히 숭정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봉황무늬
조각과 계단 옆의 구름무늬 조각은 솜씨가 뛰어났다.
숭정전(崇政殿)은 경희궁의 正殿으로서 1618년(광해군 10)경에 건립되었다.
이 곳 숭정전은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하거나 궁중연회 , 사신 접대 등 국가적인 공식의례가 행해진 곳으로 경희궁의 으뜸가는 건물이다.
특히 경종 정조 헌종 등 세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러나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이곳에 있던 숭정전 건물을 1926년 일본인 사찰인 조계사에 팔았다. 원래의 숭전전은 법당 건물로 개조되어 현재는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의 숭정전은 발굴과 문헌 조사를 통하여 복원된 건물이다.
태령전
태령전 , 이곳은 영조의 어진을 모셔두던 건물이다. 이 건물은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영조의 어진이 그려지자 1744년(영조 20)에 이곳을 다시 수리하여 어진을 모셨다. 선원전의 경우 선대 국왕들의 어진을 모셨던 것에 비해서 태령전은 영조 재위 당시에 현왕인 영조 자신의 어진을 모셨다는 점이 특징이다.
태령전은 일제에 의해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지만 서울시는 경희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서궐도안에 따라 현재의 건물로 복원하였고 현판은 석봉 한호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들었다.
자정전(資政殿) 이곳은 경희궁의 편전(便殿)으로서 1617~20년(광해군 9~12)에 건립 되었다.
편전이란 국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의논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경희궁에서는 자정전 이외에 흥정당(興政堂)도 정사를 논하거나 경연을 여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자정전은 편전으로 지어졌지만 숙종이 승하하였을 때는 빈전(殯殿)으로 사용되었으며 선왕들의 어진(御眞= 초상화)이나 위패가 임시로 보관되기도 하였다.
자정전은 일제에 의해 훼손 되었지만 서울시의 경희궁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을 통해 확인된 위치에 현재와 같이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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