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산 중턱에 보이는 것이 백양사로 가는 구름다리
내장사 들어가는 길 단풍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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誓報壇事積碑
'전망 좋은 '곳이라는 표지판이 서있는 곳
가운데 나무가 혼자 누워서 큰다 ㅎㅎ
조선왕조실록 내장산리안사적기
내장산에 운무 , 종일 비가 내린 후 저녁무렵
부도전- 앞에 나무가 특이하다
부도(浮屠전
부도란 고승들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묘탑을 말한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을 사리탑이라 한다. 훌륭하신 스님이 열반 하신 후 사리를 모시는 탑을 부도탑이라 부른다. 본래 오고감이 없거늘 뉘라서 사바세계를 다녀간다ㅏ 말하랴. 태어남도 태어남이 아니요, 죽어도 죽음이 아닌데 한 인연이 이에서 만나 증표로 삼나니 역대고승의 사리가 돌종에 맺혀 영겁을 울리는 구나.
내장사 정혜루
전북 정읍시 내장동590 내장사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인 서기 636년 靈隱가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영은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고려 숙종 3년인 1098년 幸安선사가 전각과 당우를 중창하였고 조선 명종 22년인 1567년 希默대사가 법당과 요사를, 인조 17년 1639년 부용대사가 중창하고 불상을 도금했으며 정조3년 1779년 靈雲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을 중수하였고 요사를 개축하였다고 한다. 1923년 白鶴鳴선사가 사세를 크게 중흥시킨 뒤 1938년 梅谷선사가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채 등을 신. 개축하여 내장사의 면모를 일신시켰으나 불행하게도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1951년 소실 되었다. 1957년 주지 야은 스님이 요사, 1958년 정읍시 입암면에 있던 보천교회 보화문 건물을 그대로 옮겨 대웅전을 중건하였고 1965년에 지금의 불상과 탱화를 조성하여 봉안하게 되었다. 그후 1974년 내장사 복원계획에 따라 일주문, 명부전, 정혜루가 복원되었으며 사천왕문이 신축되었다.
내장사 진신사리탑
내장사 대웅전앞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3층 석탑
1997년 범여스님이 조성한 탑으로 1932년 영국의 고고학 발굴 조사단의 의해 발굴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인도의 고승 지나라타나 스님의 주선으로 내장사에 봉안하게 되었다.
사리란 범어sarira의 음역으로 보통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수행이 깊은 큰 스님들의 유골을 말하는 것으로서 불자들에게는 깊은 신앙의 댓상이 되는 영골(靈骨)을 일컫는 말이다.
대웅전
대웅전에 모셔진 석가모니불상
내장사 대웅전과 탑 그리고 극락전 사진을 클릭하면 자세히 보임!
극락전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 --'極樂殿' 이라는 현판은 탄허스님의 글씨
극락전의 주불인 아미타불
멀리 보이는 집은 명부전으로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
명부전에 모셔진 지장보살
이른 아침이라 청소하시는 스님
내장사를 관람하고 내장산 백양사 가는길에 운전기사가 이곳에 볼 것이 있다고 내리라고 한다. 첩첩이 쌓인 내장산!
저아래 보이는 곳이 숙박소들
내장산에 온기념 사진 한 장 찍고 ㅎㅎ
사진 중간쯤이 부처바위라고 알려주는 가이드 - 부처가 앉아있는 모습 같다.ㅎㅎ
내장산 산림 박물관이라고 데려갔는데 아직 9시가 되지않아 들어가지 못하고
백양사에 도착했는데 언니들 중에 다리 아픈분이 있어서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뒤쪽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사천왕문을 통과 하지 못하고 ......
백양사 후원 대나무 두개로 문을 만들은 것인지?
한 전각에서는 수련하러 오신 분들인지 흰옷을 입은 처사님들이 많이 계셨다.
백양사 뒷산과 범종각
이곳은 스님들이 계신곳 출입금지
극락보전과 진영각 과 칠성전
백양사 명부전과 극락보전 클릭하면 자세히 보여요!
극락보전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32호
극락보전은 불교의 이상향인 서방극락정토를 묘사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단층 맞배지붕(옆면이 '人'자형인 지붕형태)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포가 올려진 화려한 다포집이다. 우물천장(우물정자'井'모양)으로 양쪽 벽면에는 단색으로 된 벽화가 담담한 처리로 그려져 있다. 현재의 극락전은 4번� 다시 지은 것으로 선조 7년 (1574) 에 환응선사가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환응선사는 조선 말기의 스님이므로 이는 극락전이 다시 지어진 시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비교적 고건축양식의 원형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귀중하고 가치 있는 건물로 평가되고 있다.
극락전에 모셔진 아미타불 --
백양사 대웅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43호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신 건물이다. 지금의 대웅전은 1917년 송만암 대종사가 다섯번째 다시 지은 것이다. 높직한 장대석으로 다듬은 3단의 기단에 원형 주춧돌을 놓았으며 기둥은 다섯칸 모두 아래가 넓은 민흘림의 둥근 기둥을 세웠다. 내부 천장은 속의 나무 재료가 보이지 않게한 우물천장이고 화려한 단청이 아직도 선명하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옆에서 볼때 '八'자 모양) 이다.
백양사 대웅전에 모셔진 석가모니불
대웅전안에 16나한이 함께 모셔진 것 같다. 아래사진과 함께 이어진 것으로 이 사진은 사진의 왼쪽
위의 사진의 오른쪽
1917년 만든 우물천장 단청이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와서 ~
1917년 만든 우물천장 단청이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와서 ~
1917년 만든 우물천장 단청이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와서 ~
수령 350년으로 추정되는 천연물 제 486호 고불매
백양사 후원
가을의 풍성함
다시 발길을 재촉하여 선운사 도솔암에 오르고
도솔암 극락보전
극락전에 모셔진 아미타불- 巳時 불공
도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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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이 어찌나 어찌나 운치 있는지 마시고 싶어진다.
도솔암 마애불곁엔 멋진 소나무가 호위하고 있는 듯~~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보물 제 1200호
고려시대에 조각한 것으로 보이는 이 불상은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마애불상 중의 하나로 미륵불로 추정된다. 지상 6m의 높이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불상의 높이는 5m , 폭이 3m나 되며 연꽃 무늬를 새긴 계단모양의 받침돌까지 갖추었다. 머리위에 구멍은 동불암이라는 누각의 기둥을 세웠던 곳이다.
명치 끝에는 검단스님이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감실이 있다. 조선말에 전라도 감찰사로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 책 첫머리에 "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 라는 글이 써 있었다고 전한다. 이비결록은 19세기 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가져갔다고 한다
나한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110호
조선 말기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나한, 즉 아라한을 모시는 곳이다 . 아라한은 소승불교의 수행자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성자를 지칭한다 조선시대에 도솔암 용문굴에 살던 이무기가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자 이를 물리치기 위해 인도에서 나한상을 들여와 안치하였더니 살아졌으며, 이후 이무기가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건물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나한전 안에 모셔진 나한상들-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110호
도솔천 내원궁이라는 현판이 있는 문을 지나 숨가뿌게 계단을 오르니 그곳엔
멀리 보이는 도솔천내원궁(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음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 125호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千인岩이라는 기암 절벽과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사이에 자리한 내원궁은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 상도솔암이라고도 부른다.거대한 바위위에 초석만을 세우고 만든 이건물은 작은 규모이지만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 내원궁은 통일 신라 때 부터 있었다는 말도 전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초기에 짓고 순조 17년(1817)까지 몇차례 보수한 것이다. 서쪽 암벽 밑에는 석불이 새겨져 있다.
선운사 도솔천내원궁의 지장보살좌상
보물 제 280호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고려 후기의 불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불상은 사후세계의 주존인 지장보살을 조각한 것이다. 크기나 형태는 대웅전에 모신 보살상과 비슷하지만 조각 수법은 훨씬 사실적이다. 균형잡힌 얼굴은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인상을 주며 어깨의 곡선도 부드럽게 처리되어 유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僧形으로 펴현되는 일반적인 지장보살과는 달리 두건을 쓰고 있는 점은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하던 형식이다.
법당 주변 산
도솔천내원궁이라는 법당 뒤로 돌아갔더니 아주 작고 아담한 산신각이
도솔암 산신각 안에 모셔진 산신님들
도솔암을 참배한 후 다시 선운사를 향해서......
선운사 입구에 들어서니 아름드리 나무들이 반긴다.
극락교를 지나 천왕문이 보인다
도솔산 선운사의 역사
백제 27대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창건한 뒤 고려 공민왕 3년(1354)에 효정스님이 법당과 요사를 중수하였다. 1474(성종5)년에 행호극유(幸浩克乳)스님이 성종의 숙부 덕원군(德源君)의 도움으로 이후 10여년에 걸친 중창불사를 진행하여 선운사는 옛 모습을 되찾게 된다. 그러나 1597년에 정유재란 때 어실(御室)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어 버렸고 1613(광해군 5년) 일관스님과 원준스님이 주축이 되어 불사가 진행된 이후로 중수와 중건이 계속되어 1713년에 이르러서는 외형적인 불사는 완성을 보게 되었다.
조선후기 화엄학의 종주(宗主) 설파상언(雪坡尙彦스님과 선문(禪門의 중흥조 백파긍선(白坡亘璇), 구한말의 청정율사 환응탄영(幻應坦渶 ), 근대불교의 선구자 영호정호(映湖鼎鎬 : 朴漢永)스님 등이 선운사에서 수행하시면서 당대의 불교를 이끌어온 명문 사찰이다. 선운사 경내 및 산내 암자인 창당암 , 도솔암에는 보물 5점 및 중요문화재 11여 점이 보존되어 있으며 경내의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선운사 사천왕문
사천왕은 불법을 보호하는 외호신이다.
東: 지국천왕 南: 증장천왕
西: 광목천왕 北: 다문천왕
으로 각각 자신의 무리인 호법신장을 거느리고 있다.
사천왕은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고 있는데 매달 8일에는 사천왕의 사자들이 매월 14일에는 태자가 그리고 매월 15일에는 천왕 자신이 도리천에 있는 제석천에게 보고하여 상벌을 내린다고 한다. 악한 이를 벌하고 착한이들에게 복을 주시니 하늘에서 중생들을 두루 비춰보고 보살피시는 호법신이니 이문을 지나서 도량에서는 모름지기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해야 할 것이다.
- 선운사 사천왕문에서 옮긴글 -
대웅전을 한 번에 다 못찍어서 이어붙이기를 했는데 서툴러서 표시가 나네요
선운사 대웅전 앞에 6층석탑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29호
화강암으로 된 고려시대 석탑으로 원래는 9층이었으나 현재는 6층만이 남아있다. 방형의 축대 안에 지대석을 세우고 각층에 사각형의 중석을 올렸다. 6층 옥개석 위에 복발이 있고 그 위로 팔각의 귀꽃으로 각축된 보개를 얹어 놓았다. 사적기에는 조선 성종 때 행호선사가 홀로 우뚝 솟은 이 9층 석탑을 보고 사찰의 중창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앞엔 배롱나무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왼편 명부전과 영산전 뒤엔 팔상전도 있었고 곳곳에 많은 전각들이 있었는데.......
산사음악회가 있었던 무대가 보이고
사찰안에서 본 사천왕문
선운사 입구에 나무군락
선운사 주변은 온통 상사화(꽃무릇)가 아름답게 피어있었는데 아쉽게도 사진 찍을 시간이 없어 달리는 차속에서 찍은것이라 히미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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