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터키- 소아시아 문명과 자연이 어우러진 눈부신 천국 ~에베소

백합사랑 2009. 4. 6. 22:09

 

안탈랴의 나자르호텔 

아직 모닝콜  울리기 전에 부지런한 룸메이트 따라서 아침 산책을 나섰습니다.

 

 

 나자르 비치 뒤로 해가 뜨고 있습니다

 

 

 

 

 

  계란을 두개나 먹고 ~   이곳엔 소세지도 소고기로 만든답니다. 이슬람교인들은  돼지고기는 안먹어서지요.ㅎㅎㅎ

 

아침 식사후 지중해를 걸을 수 있는 자유시간을 얻었는데 몽돌들이 어찌나 이쁜지 돌맹이 들이 모두 빛이나고 아름다와요. 모두들 탐을냈지만 혹시 공항에서 걸릴까봐 ?

 

 

 바다주변엔 야자수로,  휴양도시를  더욱 낭만적으로 보이게 했어요

이곳 안탈랴부터 파묵깔레(목화의 성-예전에 이곳에 목화가 많이 났답니다. )까지는 약 4시간이 소요

 

 

 할아버님 연세가 90세 이신데 얼마나 정정하신지 제가 못따라갑니다

다음번엔 서유럽엘 가신다고  하시더군요. 우린 힘들어 가이드 따라 가기도 힘든데 할아버님께선 구석구석 둘러보시기까지 하십니다.  차에서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

식사는 늘  소식하시고 신것을 참 좋아하셨어요.

 

 

 

 

 어느 휴게소에선가 석류주스를 직석에서 짜주고  2$이었습니다.

우리 일행 모두 한잔씩 먹었는데 껍데기 채 짜서인지 맛 없었어요.

 

 

 살다호수 옆에 식당

 

 

 야채와 닭고기인데 닭고기가 토종닭처럼 맛있었습니다

이것 역시 현지식

 

 이곳이 살다 호수입니다

호수 물은 맑고 물밑엔  하얀 가루로 가득합니다.조개가루인지 석회가루인지?

 

 

 살다호수의 흰모래

 

 

 

파묵깔레('목화성'이란 뜻으로 예전에 목화가 많이 나던 곳이랍니다. 지금도 가는 길에  간혹 목화밭이 보였어요) 가는길에  멀리 양치기와 양떼가 지나는 모습 - 달리는 버스에서 찍어서 ~

클릭하면 양들이 잘 보여요!

 파묵깔레('목화성'이란 뜻),  고대 유적 히에라폴리스- 새하얀 눈이 덮힌 것 같은 석회붕과 노천 온천이 있는 곳 

 

너무도 이쁜 꽃이 히에라폴리스 주변에 가득 ,  이름이 개양귀비꽃이랍니다

 

 

 

새하얀 눈이 덮힌 것 같은 석회붕과 노천 온천-  물이 바람 때문인지 차갑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발 한 번 담구었어요 .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오가  온천을 하던 곳이라는군요. 물론 그녀가 목욕하던 곳은 따로 집으로 보존되 있어요

 

 

 

 

 이 건물이 클레오파트라  목욕을 하던 곳이랍니다

 

 

 유적지 곳곳엔 개양귀비와 이름 모를 이쁜 들꽃들이 유혹합니다

 

 

 파묵깔레,  고대 유적 히에라폴리스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에도 대형 원형극장이 있고

 

 

 이 아래 부터는 파묵깔레,  고대 유적 히에라폴리스에 공동묘지입니다. 병을 고치러 왔던 귀족들이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으면 묻혔던 묘지인데 돌관들이 즐비하고 , 관이나 묘에도 빈부의 차이가 보였습니다.

경주 왕릉 같은 모습부터 가지각색이었습니다

 

 

 돌관들입니다.

 

 

 경주 김유신장군 묘 같죠?

 

 저런 것은 집처럼 생긴 것도 있었어요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온천이 좋은 호텔에 묶었건만 이날은 힘들어   저녁도 굶고 온천도 못했습니다.

에고 아쉬워라 !

 

 

 아침은 힘내려고 먹었지요.

터키는 과일과 치즈,  올리브가 넘쳤어요. 치즈의 모양도 매우 다양했습니다. 다만 너무 짜서 ~~~

 

 

 지붕 꼭대기를 자세히 좀 보세요.   지붕위에 작은 병은 "우리집에 과년한 딸이 있습니다"를 알리는 것이랍니다.

그병을 본 총각은 저병에 작은 돌을 던져서 깨뜨리고 7일 이내에 처녀집에 어머니나 이모와 함께 가서 청혼을 해야 한답니다. 그때 처녀가 차를 대접해야 하는데 총각이 맘에 들면 달콤하고 맛있게 차를 타다주고  맘에 안들면 차에 소금을 넣어 맛이 없게 타다준답니다  . 차맛을 보고 처녀의 대답을 알지만,  점잖게 끝까지 대화를  잘하고 없던 일로 한답니다.

버스속에서 기적처럼 찍은 사진입니다.ㅎㅎ

 

 

 

 화장실인데 남 녀室을 알리는 그림이 재미있어서요

 

 

달리는 버스 속에서 찍어서 흔들리긴 했지만 주택 지붕마다 있는 태양열 난방이 실용적이고 부럽기까지 했던 기억이라서 올립니다

그곳은 우리나라보다 오일 값이 훨씬 비싸기 때문에(우리나라 1500원 이하일때 그곳은 2500원 이상 이랍니다.) 태양열로 난방을 하고 지진이 많은 나라라서 집을 지을때도 연립주택식으로  짓고,  집과 집사이도 가까이 짓는답니다.

그래서 남의 집 이야기도 다 들릴 정도랍니다.

그것은 안부럽고요.ㅎㅎ 

 

 

이곳에서  만드는 가죽옷은 이태리와 터기에서만 파는 양질의 어린양들의  가죽으로  만든 옷들이라고 합니다,  패션쑈 !

 

 하얀 옷이 이뻤는데 어찌나 비싼지 1250$이 넘어서 구경만했어요

 

 올리브나무   어떤 산은 온통 올리브나무로 가득합니다.

올리브는 그리스와 터키 등 몇나라에서만 많이 난답니다      터키는 자원이 무궁무진해 보였습니다.

과일나무들  대리석  유적지들~~

 

 

 그리스인 마을 쉬린제 마을 구경-그리스 사람들이  오스만제국  싫어서 옮겨간 외진마을로 외부는  그리스풍집이고 내부는  터키인들 집구조로 되어있다합니다.   -지금도 터키인과 그리스인 사이는 한국과 일본과 같다나요?

 

쉬린제 마을  곳곳에선  집에서 손수 만든 수공예품이나 가죽제품  과일주 등을 팔아요

 

 

이 할아버님은 올리브나무나 체리나무로 수깔을 만들어서 1개 5$이라합니다.

비싸다했더니 한개 3$씩 두개 샀어요.

본인께서 인터넷에 났다고 잡지를 보여주시더군요.ㅎㅎ

 

 

 타킵성문- 셀츄크 성 입구

타킵 성문은 셀추크 성 입구로 야야술록 성은 이즈미르- 에베소 고속도로의 오른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으며  아랍 군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7~8세기에 세웠답니다.  문은 아치 형태이며 함정에 빠진 적들을 집단 참수한 작은 마당으로 이어집니다.  이 문은 소아시아에 남은 몇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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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부터 에페소(인내)가 시작됩니다,   항구무역항

파묵깔레에서 에페소까지 약 2시간 30분 정도 왔습니다 

에베소는 알렉산더대왕(알렐산더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이 지나간  곳이기도 하답니다.

 

 

 

 사도 요한의 묘와 아야술록 성 

내성 외성: 사도 요한 교회를 둘러싸는 아야술록 성은  로마의 네크로폴이었다.           5세기경에  에베소가 경제적인 중심지로서 의미를 상실하게 되자 이 성은 주변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언덕의 정상을 둘러싸는 내벽과 함께 지금까지 굳건하게 서있다.   동쪽 서쪽 그리고 남쪽을 향하는 세 개의 문이 있으며 4세기에 문들 사이에 바실리카가 하나 세워졌으나 나중에 줄리엔 황제의 명으로 그 자리에 사도 요한 교회와 요한의 묘가 만들어졌다.   이 무덤은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알려진 아르테미스  신전을 마주보고 있다.  터키인들이 에베소를 점령한 후 이 구 건축물 사이에 다른 하나의 화려한 건축물인 이사베이 사원이 1375년에 건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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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의 묘가 있는 사도요한의 교회 

이 곳은  AD 37년~42년,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에서 나온 사도 요한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살던 곳이자 사도 요한이 복음서를 기술하고 또 생을 마감한 무덤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서기 4세기경 사도 요한의 무덤 위에 처음으로 나무로 된 교회가 지어진 이후 비잔틴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AD 565~ 577)시대에 재건되어 오늘날의 형태로 남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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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레 하던 곳

 

 

 

 사도 요한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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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교회.  제 뒤로부터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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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한식과 자몽 .  안드시는 분들이 많으시어 실컷 먹었습니다  따봉!

 

 

 식당옆에 이슬람 사원 종이 울리자 교인들 옷을 가다듬고 사원으로 들어갑니다.

사원 마당엔 작은 비석들이 무덤을  알려주더군요.

 

 

멀리서 보이는  기둥만 남은  아르테미스신전

   아르테미스신전은 세계 7대불가사의 였는데 알렉산더 탄생기념일날 정신병자가 불내서 타버렸다함 우리의 남대문처럼 ......

 

가까이 가보지 못해서  에페소에 관한 책에서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이곳은 아르테미스 사원(다이에나)

신전 기둥 아래 웅덩이의 물이 고인곳이 한때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곳

아르테미스 사원은 에베소 인들의 사회적인 종교 생활의 중심지였다.  이 신전을 처음으로 지은 이들이 아마존 인들이라고 한다. 작가 폴리니우스는 이 신전이 7번이나 약탈되었다고 말한다. 에베소가 리디아 왕 크로에수스의 지배하애 들어갔을 때 에베소에 신전을 복원할 수 있는 케르시프론과 그의 아들 메타게네스라는 건축가들이 있음을 보고 신전을 위해 기둥을 기부했고 신전 복원 작업을 거행했다. 이아카익 시대의 신전은 기원전 356년에 에로스트라토스 라는 광인에 의해 건축 된지 200년 만에 불태워졌다.

후에 이 신전은 전과 똑같이 425피트 길이와 220피트 넓이 그리고 60피트 높이로 이오니아양식의 120개의 기둥과 함께 복원되었다 이곳에서 사도 요한 교회와 이사베이 사원이 있는 아이수룩을 볼 수 있다.  이 건물들 뒤에는 비잔틴 시대의 성이 자리잡고 있다.  이 신전은 111년까지 건제했다.    263년에 goth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 후에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  그 이유는 기독교가 상세하여 모든 우상 숭배 장소들이 파괴도었거나  교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 때 신전의 대리석 기둥들은 이스탄불로 수송되어 아야 소피아의 건축에 쓰였다. 이 신전의 남은 몇몇 기둥은 영국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다.   건축학 적인 가치를 지닌 이 기둥들은 오늘날 브리티시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금과 동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오늘날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과 에베소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아르테미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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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이곳 셀쭉에서 삼성이 세운 안내문을 보며 관람객 모두 삼성에게 찬사를 보냈답니다.

" 삼성 멋져!!"  이렇게요.

 

 

 로마시대 하수관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지하에서 발굴 된 것이라함   더 값진 물건들은 박물관으로 옮기고 나머지는 이곳에 ~

 

 

 

  오데온이라고하는 베디우스 안타니우스와 그의 부인에 의해 2세기경에 지어졌다. 1500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극장은 연극과 음악회를 위한 작은 공연장을 갖추고 있었다.

 

 

 

 

 의회 건물

건물의 위 부분은 로마 시대의, 아래 부분은 헬레니즘 시대의 유물이다. 기원전 1세기 또는 2세기에 아구스투스 황제의 명으로 지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건물의 앞에 작은 정원이 있었고 사람들은 도리치 양식으로 지어진 두 번째 정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앞의 정원을 통과해야만 했다. 이곳에서 도시의 대소사가 의논되었으며 속주의 행정관이었다. 그림의 기둥들은 계속적으로 성스러운 불이 타는 지붕의 기둥들이었다

 

 

 

 

 메미우스 기념물

도미시안 광장을 장식하는 기념물 중 하나로 1세기 독재자 술라의 손자인 메미우스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같은 세기의 후반에 기념물 앞에 분수가 만들어졌다. 이 기념물은 여러 부조들로 장식되어있다.

 

 

 

 도시미안 신전

이 건물은 대리석 거리의 후반부에 보이는 첫 건물이다. 이 이층 건물의 일층은 상점들과 창고 등으로 쓰였고 이층은 신전이이었다. 이 신전은 황제 다미시온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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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케, 승리의 여신(나이키 운동화에 있는 상표를 연상)

니케의 조각은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상이다.왼손에는 승리의 상징인 월계관이 오른 손에는 밀 다발을 들고 있다. 이 부조는 로마 시대 때의 작품.  도미시온 광장의 유적들 사이에서 발견 되었다.

 

 

 

퀴레트 거리- 귀족들의 거리 - 오른쪽 첫번째 머리 없는 석상은 에베소에 큰 공헌을 한 여 의원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함.   비잔틴 시대의 작품 . 멀리 12시 방향에 셀수스도서관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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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 의 문

 

트라잔 분수 

파나의르 산으로 향하는 길 위의 하드리안 신전을 다음으로 복원된 두 번째 건축물 , 이 분수는 2층이었고  12미터 높이였다. 일 층은 7m 2층은 5m였다.

비너스, 세턴, 바쿠스 그리고 황족 후예들의 12 조각이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이 분수는 1세기에 트라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곳은 상점들이 있었던 곳으로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오와  쇼핑한 곳이라함

 

 

 

 

 

♣ 시리아 풍으로 조각된 신들의 부조  하드리안 신전 - 테오도시우스는  기원전 391년에 복원한 후 무죄임에도 사형당한 아버지 테오도시우스 장군을 기리기 위해 이 신전을 개방했다함. 

히드리아누스 신전은  AD 138년에 에페소 시민들에 의해  지어진 신전은 로마 황제였던 히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졌다.  최근에 복원된 이 신전은 신전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돌담 위에 신과 여신들의 부조가 가득하며  4명의 로마 황제 Diocletianus,  Maximianus, Galerius, Chlorus의 상이 꼼꼼히 들어차 있다. 또한 신전 전면의 4개의 기둥 중 2개의 기둥을 잇는 아치는 에페소 유적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드리안 신전의 조각들 

 

가운데 목이 없는 석상이 스콜라스티카의 석상으로 , 에베소에서 화려한 목욕탕들을 지은 여인의 석상.  4세기  

 스콜라스티카  목욕탕  - 저 문안으로 들어가면 목욕탕임 , 노예가 때를 밀어 주었다함

 

 

 

 공중변소였던 곳  - 정면에 보이는 작은 구멍이 ......

 

 

 

 

  셀수스 도서관과 오른쪽옆으로 메제우스와 미트리아테스 문

 

  셀수스 도서관 : 에페소 유적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로 손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은 에페소 유적 가운데 전면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의 화려한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으며 셀수스 도서관은  AD 135년 , C. Aquila에 의해 아시아 지역의 통치자였던 그의 아버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Celsus Polemaeanus)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  이 도서관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상단은  지혜,  운명,  지식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성상들로 장식되어 있고,  한때 만 2천여권의 책이 소장되었던 대규모 도서관이었다 ,  아홉 계단을 넘어 도서관으로 들어갈 수 있고    벽의 파인 부분들은 책장으로 쓰였다. 북쪽에 있는 문서는 라틴어로 남쪽에 있는 문서는 그리스어로 쓰여져 있으며 이 두 문서는 셀수스와 아들 아킬라에 관해 쓰여있다.  2세기 초  . 이곳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건물

 

 이 도서관은 얼마나 단단하게 지었는지 많은 지진 속에서도 꿋꿋이 견디었다 합니다

 

 

 

 

 도서관 내부 들어가서 정면쪽 가운데 둥근 돌이 있는 것은 무슨의미인지는 모르겠고,,  양옆  파인곳에 안내문이 있는 곳이 책장이랍니다 . 도서관 문쪽만 빼고는 3면이 다 저렇게 책장으로 생겼습니다

 

 

 

 도서관 내부 문쪽

 사창가였던 곳

 

사창가로 가는 길을 표시한  발자국 

이 발자국보다 발이 큰 사람만 올 수 있다함  미성년자 출입금지겠죠?  - 대형 극장으로 가는 대리석 거리 중앙쯤에 바닥에 새겨진 발자국

 

대리석거리,  로마시대에  아고라 -광장 -  국민들  모여  정치적 포럼 공간이었다가 정치 무역 토론의 장소로 변해갔다함.   에베소에는 몇군데 아고라 장소가 있었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에 건축 되어 2만4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극장 

예술적,역사적 면에서 아주 중요한 이 극장은 에페소 시대에서 오늘날까지 가장 잘 보존된 건물 중 하나로  3개의 단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제 2 단은 네로 황제에 의해 1세기에 만들어진 기둥과 조각들과 부조들로 장식되어있고,  제 3단은 셉티무스 세베니우스에 의해 2세기 말에 만들어졌으며.    마지막으로 황제 클라우디우스와(41년~54년) 황제 트라야누스(AD98년~117년)에 의해 개조되었답니다. 극장은 2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각 단 마다 22열로 구성 되어 있고. 극장의 직경은 50m이며 극장의 위에 있는 길은 크레테스 거리로 통한답니다.

당시 연극이나 의회가 열리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검투사 경기가 열리기도 했던 곳

돌 계단들의 대부분은 다른 건물들의 건축을 위해 이동 되었답니다. 에베소의 이 명작은 예술적인면 뿐만이 아니라 기독교와 우상 숭배자들 사이의 분쟁  면에서도 중요한  곳으로  .  기독교의 초기에 기독교인들과 아르테미스 신자들의 논쟁도 이곳에서 행해졌으며 그 결과 사도 바울은 언덕 위의 감옥에 갇히고 나중에 에베소에서 추방 되었다 합니다

-옮긴글-

 

 당시 이정표들이랍니다

아래 삼성에서 제공한 설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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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소의 역사

에베소는  최초에 카이스트로스 강이 에게 해와 만나는 지점에 세워졌다. 이 지역은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한 날씨와 자연적인 요소들이 풍부한 고대 이오니아의 중심에 있다.  에베소는 동과 서를 잇는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에 세워졌을뿐만이 아니라 밀레투스와 이오니아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예술과 학문 , 탈레스와 헤라클리투스 같은 철학자들이 꽃을 피운 곳이기도 하다.  이오니아 도시들은 처음부터 종교적인 인상이 강하고 정치적으로도 잘 짜인 도시들이었다. 에베소는 언제나 정치와 지리적인 요소들에 지배되었으며 이 두 요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있다.   에베소를 처름으로 누가 언제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에베소에 관해 알려진 가장 오래된 정보는 기원전 2천부터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언제나 대모신 키베레(나중에는 아르테미스) 와 함께 언급되며 어떤 고대 기록들에 의하면 아마존인들이 세운 도시라고도 한다.

*에베소는  엔데레스강  토사물이 전염병을 창궐해서 많은 주민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잊혀진 도시로  있다가 20세기초 학자들이 발굴하는 중이며 모두 발굴하면 폼페이 이상 될 것으로 본다함

그리스도교의 번영을 떨쳤던 곳으로 로마의 유적이 많음

 

 

에베소에 관한 기초 지식

에베소 하면 고대의 도시뿐만이 아니라  아르테미스 신전과 사도 요한 , 성모 마리아 교회들도 덩달아 떠오르기 마련이다.  후자는 전세계 기독교인들의 관심대상이다.  이 장소들은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으나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유적들도 구경 하려면 하루 정도가 걸린다.  셀추크에서 하루를 묵으면 고대 유적들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의 집도 구경할 수 있다. (성모마리아의 집은 소푸 집시 여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로마 시대때 에베소가 오리엔트 속주 500여 도시의  수도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찬란한 역사를 상상할 수 있을것이다 

 

고대에 바다와 떨어진 곳에 화려한 야외 극장의 계단들과 아르테미스 신전의 눈부신 거대한 기둥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에베소는 유명한 배우들과 부유한 상인들이 사는 25000을 넘는 인구의 대 도시였다.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