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흥사 참배후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보인 계곡, 너무 멋진 풍광이 발걸음을 멈추고 싶게 만드는 곳~
영월 주천면 한우촌, 주변이 온통 한우를 사서 먹을 수 있는 식당들로 활기를 띄는 곳
식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산 꼭대기에 정자가 보여 오르고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아쉬움에 사진만 남깁니다.
주천면사무소 뜰엔 한반도 지형을 닮은 돌이~
그렇지 않아도 점심 식사 후에는 한반도 지형 닮은 선암마을을 가려하는데 이곳에서 미리 보는 것 같네요.
한반도 지형이 닮은 것을 보기 위해 전망대로 오르는 길에 보이는 선암마을 풍경, 마을 가운데쯤에 강이 보이고 그옆의 계곡이 한반도를 닮은 지형인데 이곳에서 볼때는 그냥 계곡처럼만 보입니다.
한반도지형 닮은 곳을 보기 위해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왔네요. 학생들까지 단체로 많이 오고요,
이런 산길로 한 10분 오르면 한반도를 닮은 신기한 지형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볼땐 아직 한반도지형처럼 보이지 않고 긴 계곡으로만 보이네요. 오른쪽엔 마을이 보입니다.
와~ 정말 많이 닮았죠? 근데 제주도는 않보여요. ㅎㅎ 지형의 오른쪽(동해)에서 흐르는 강은 평창강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이고 지형 왼쪽(서해)의 물은 멀리 보이는 높은건물 두 동(씨멘트 공장)쪽 주천강에서 흐르는 것이랍니다.
동영상은 마침 그곳에 영월 무슨?박물관장님이신 분이 여고의 설명 의뢰를 받고 지형에 관해 설명을 해주시는 장면입니다. "자세한 설명 해주신 관장님 감사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저도 기념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지형이 한반도처럼 보이는 곳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많은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다시 발길을 재촉하여서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를 가는 길목에 메밀꽃이 벌써 피었네요.
저 배를 타고 청령포를 가는데 앞에 보이는 소나무숲이 청령포입니다 저 배를 타고 1~2분 가면 내립니다.
기와집이 단종어소
단종어소는 승정원 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어소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소 담장 안에 단종유지비각이 위치해 있다.
-옮긴글-
단종어소 앞에는 소나무가 어소를 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소 안에 당시의 모습을 밀랍 인형으로 재현해 놓은 것으로
*몇년전에 갔을 때의 인형 모습은 적당히 구부린 형태였는데 이번에 갔더니 아래 사진처럼 인형이 힘들어서 누우려 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밀랍인형이라 녹아서 그럴까요?
이곳은 단종의 침실이라는 설명이 보였습니다.
단묘재본부시유지비
이곳은 1457년 6월 22일 조선왕조 제 6대 임금인 단종대왕(端宗大王)께서 왕위를 찬탈 당하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 유배(流配)되어 계셨던 곳으로 당시 이곳에 단종대왕 거처인 어소(御所)가 있었으나 소실되고 영조39년(1763)년에 이 비를 세워 어소 위치를 전하고 있다.
비의 총 높이는 162cm로서 1단의 화강석 기단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우고 비 앞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고 음각 되었으며 후면에는 [세황명숭정무진기원후삼계미계추 체경서영원영수석 지명 청령포 (歲皇明崇禎戊辰紀元後三癸未季秋 涕敬書令原營竪石 地名 淸령浦)]음각되어 전면, 측면 각 1칸씩의 바각 안에 보존 되어있다.
이곳은 궁녀와 관노가 기거하던 행랑채
유배지까지 궁녀를 보낸 것은 아니며, 단종을 모시던 궁녀들이 목숨을 걸고 단종을 따라와 모셨으며 수양대군을 알면서 눈감아 주었다고 전한답니다.
방마다 보이는 밀랍인형- 목숨을 걸고 왕을 섬겼던 의리의 궁녀들~
밥을 하려는 식모라고 적혀 있습니다
부엌
금표비: 단종께서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계시던 이곳을 일반 백성들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영조 2년(1726)에 세운 비석이다. 뒷면에 [동서 삼백척 남북 사백구십척 차후 니생역재당금숭정구십구년]이라 음각 되어있는데, 이 뜻은 [동서로 삼백척 남북으로 사백구십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된다. 숭정99년]이라는 내용으로, 당시 단종에게도 이와같은 제약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소나무숲 이 아름다운 곳으로 뽑히고, 명승지 50호로 뽑혔다지만 당시에는 슬픔과 외로움이 가득했을 곳
이 소나무는 이름이 관음송으로
소나무 높이 30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가 5m이며, 지상 1,2m 높이에서 두 가지로 갈라졌고, 갈라진 두가지의 밑 둘레는 각각 3,3m와 2,95m이다. 나무의 나이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왕조 제 6대 임금 단종(1441~1457)이 유배생활을 할 때 이 나무의 갈라진 가지 사이에 앉아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어서 약 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소나무를 관음송이라 부르는 것은 이 나무가 당시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다 하여 볼觀, 들었다하여 소리音자를 써 관음송이라 전한다.
-옮긴글-
관음송을 뒤로 하고 다시 단종대왕이 한양에 계신 어머니와 부인 정순왕후를 그리워 하며 돌탑을 쌓았다는 망향탑
망향탑에서 조금더 오르면 노산대가 있는데 그곳은 노산군이 한양에 계신 어머니와 부인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한양쪽을 바라보기 위해 올랐던 곳으로 이름이 '노산대'이며,노산대에서 보이는 풍경입니다
노산대군이 한양을 바라보던 노산대에서 지금은 관광객이 ~
관음송이 어찌나 큰지, 그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어렵습니다. 사방으로 다녀보지만 다른 나무들로 둘러쌓여서 ~~~
눈내린 겨울에도 관음송 꿋꿋이 서있는 모습이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몇천년 더 잘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
잠시 슬픈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발길을 재촉합니다.
저배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해가 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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