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청평사와 청평사계곡

백합사랑 2009. 6. 20. 09:44

 청평사를 오르려면 청평사계곡 한편에 전설을 알려주는 계시판과  이야기의 주인공인 공주와 상사뱀의 조각상이 보입니다. 아래의 설명을 읽어보시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곳 청평사에는 "상사뱀과 공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 지고 있습니다.

옛날 당나라에 공주를 사모하던 한 평민  청년이 있었는데  신분상의 차이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청년이 상사병으로 죽자 홀연히 한 마리 뱀이 나타나 공주의 몸을 감아 버린다.   공주를 사랑했던 청년의 혼이 상사뱀으로 변한 것이었다.  놀란 당태종은 의원들을 불러 갖가지 처방을 해보았지만 상사뱀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공주는 점점 야위어만 갔다.

신라의 영험있는 사찰을 순례하며 기도를 드려보라는 권유에 공주는 우리나라 사찰을 순례하다 이곳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해가 저물어 계곡의 작은 동굴에서 노숙을 한 다음날 범종 소리가 들려오자

"절이 멀지 않은듯 합니다. 밥을 얻어 오려고 하니 제 몸에서 내려와 주실수 있는지요, 너무 피로하고 걷기가 힘겨워 드리는 말씀이니 잠시만 기다리시면 곧 다녀오겠습니다." 하니 한 번도 말을 들어주지 않던 상사뱀이 웬일인지 순순히 몸에서 내려와 주었다.  공주는 계곡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법당으로 들어가 기도를 하였다.  한편 상사뱀은 공주가 늦어지자 혹시 도망간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공주를 찾아나선다. 절에 도착하여 절문(회전문)을 들어서는 순간 맑은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며 벼락이 상사뱀에게 내리쳐 죽은 뱀은 빗물에 떠내려 갔다.   공주가 밥을 얻어 가지고 와 보니 상사뱀이 죽어 폭포에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공주는 깜짝 놀랐다. 시원하기도 했지만  자신을 사모하다 죽은 상사뱀이 불쌍하여 정성껏 묻어주고 청평사에서 머므르다 구성폭포 위에 석탑을 세우고 귀국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때부터 상사뱀이 돌아나간 문을 회전문,  공주가 노숙했던 작은 동굴을 공주굴 그가 목욕했던 웅덩이를  공주탕 삼층석탑이 공주탑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 옮긴글-

 

 공주와 상사뱀의 조각상

 

 청평사 계곡에 있는 공주와 상사뱀의 조각상

 

 

 

 조금 오르다보면 각산당 석진 대화상의 비와 眞樂公 이자현의 부도가 길 왼편 조금 높이 있습니다

 眞樂公 이자현의 부도

부도는 고승이 죽으면 화장하여 나온 사리나 유골을 안치하는 석조구조물이다.

 이 부도는 청평사에 들어와 도를 닦았던 고려 시대의 뛰어난 학자인 이자현(1061~ 1125)의 것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이자현의 호는 식암(息庵) 또는 희이자(希夷子)였는데, 인품이 뛰어났던 그를 흠모한 고려의 인종 임금은 그가 세상을 떠나자 眞樂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 부도의 양식은 팔각원당형이고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180cm이다

- 옮긴글-

 

청평사지(淸平寺址)  강원도 기념물 제 55호

이 사찰은 973년(광종 24)에  영현(永玄) 선사가 백암선원으로 창건하였고,  1068년(문종 22) 춘주도감창사였던  이의(李顗)가  보현원으로 중건하였다. 대악서승의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던 이자현이  1089년(선종 6)에 세 번째 중건을 하여 문수원이라 하였다.  조선 명종 때 보우선사가 크게 중건하면서 청평사라고 개칭하였고,   그 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조선시대 산사의 대표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국보 제 115호로 지정되었던 극락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과 암자, 대감국사 탄연이  쓴 문수원기와 이암이 쓴 장경비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현재의 건물들은 근래에 신축한 것이다.   다만,  보물 제 164호로 지정된 회전문과  돌 축대만이 옛 모습의 일부를 보여 주고 있다.

 영지와 여러 개의 폭포, 거북바위 등을 연결하여 절 주변을 자연 그대로의 정원으로 꾸며 고려시대의 독특한 정원 문화를 만들어 냈다.

이 사찰은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거사불교와 고려후기 보조국사 지눌로 연결되는 간화선을 중흥시킨 본거지가 되었다.  예종과 인종 등 왕실에서는 이 곳에서 수행하던 이자현 거사에게 여러 차례 향과 의복을 보내 왔다 .   나옹화상이 오랫동안 수행하였고, 원나라에서 보낸 대장경을 보관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김시습이 서향원을 짓고 은거하기도 하였다.

문화재로는 3층석탑(일명 공주탑) . 8개의 암자 터 .  환적당 등의 부도 4기 .  바위에 새긴 글씨들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

 

 

 청평사 영지

이 못은 오봉산의 옛 이름인 경운산이 물위에 그림자처럼 떠오른다고 해서 영지라 불리운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정원은 최소한의 인공만을 가하여 자연의 멋을 최대한으로 살리고 주위의 경관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꾸미는 것이 특징이다.

이 못은 청평사에 은거하면서 평생을 보낸 이자현이 만든 정원에 속하여 있는 것이다. 사다리꼴 모양의 못 안에는  3개의 큰 돌을 배치하여 단순하면서도 입체적인 변화감을 더하여 주고 있다.

이곳의 정원은 청평사 입구의 구성폭포 아래의 거북바위가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 절 뒷편인 청평선동 계곡까지 약 1km에 이어지며, 영지는 그 중심에 위치한다.

- 옮긴글 -

 

 

 

회전문이 보이는 앞가까이까지 올라오면 250년된 보호수 은행나무가 보이고 그 가까이엔 또 새로 건립된 진락공 중수 문수원(청평사의 옛 이름)비가 보입니다

기와집 앞에 검은색 비석이 진락공 중수 문수원비입니다.

 

진락공 중수 문수원(청평사의 옛 이름)비 요약문

 

 

 청평사 회전문과 경운루에 이어진 회랑이 보입니다.

 

 

 

 

 당나라 공주를 사모하던 상사뱀이 공주를 찾아나섰다가  절에 도착하여 절문(회전문)을 들어서는 순간 맑은 하늘에서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며 벼락이 상사뱀에게 내리쳐 뱀이 죽었던 그 회전문  

회전문은 보물 제 164호 

 

회전문에 관한 설명은 아래 사진에서 읽어보세요

 

 

 

 청평사 가람 배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오른편엔 관음전이 있고, 왼편엔 나한전이 있으며 대웅전 맞은편으로는 경운루와 회랑으로  ㅁ 자형 배치가 되어 있습니다.

 

 

 

 대웅전 뒤로 조금 오르면 극락전과 삼성각이 있습니다.

극락전 오른편엔  보호수인 800년된 주목과 500년 된 주목 두그루가 멋지게 서 있습니다.

 

 

 왼편 주목이 800년 된 주목이고 오른쪽 주목이 500년된 주목입니다.

 

 

 

 

 절에 있는  뽕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탐스럽네요

 

 

 

 

 

 극락전에서 보이는 청평사 

 

절입구 부용가든이라는 식당에서 정말 맛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