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영월 서강에 우뚝 솟은 선돌과 청령포

백합사랑 2010. 2. 18. 18:09

 

영월 서강에 우뚝 서있는 선돌을 보기 위해서 우린 조금 걷습니다.

 

에고 ~ 제가 선돌을 가리는 바람에 제가 선돌이 되었네요,ㅎㅎ

 

 선돌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 산 122번지에 있는 선돌의 유래

전망시설 아래로 펼쳐진 장엄한 두갈래의 우뚝솟아있는 바위(높이 70m)를 선돌(立石)이라 불리어 오고 있으며 서강(西江)의 푸른물과 충암절벽이 어우러져 마치 한국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하여 일명 신선암
(神仙岩)이라 고도 한다.

선돌 아래 깊은 소(沼)에는 자라바위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선돌 아래 동네 남애(南涯)마을에 장수가 태어나 적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이곳에서 투신 자라바위가 되었다고 하며 선돌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한가지씩 꼭 이루워진다는 설화가 전하여 오고 있다.

 현재의 38국도가 개통되기 전에는 선돌 밑으로 옛길(신작로)이 있었으며 1905년(고종 42)에 목탄차가 다닐 수 있도록 석축을 쌓아 확장하였는데 이공사를 기념하기 위해 [光武九年李春和排路修勅乙巳二月一日]라고 자연석에 새겨진 비석이 남아 있다.

특히 조선시대인 1820년(순조)에 영월부사를 지낸 홍이간(洪履簡 1753~ 1827)과 뛰어난  문장가로서 풍류생활을 즐기던 오희상(吳熙常 1763~1833)  홍직필 (洪直弼1776~1852) 등 세사람이 구름에 쌓인 선돌의 경관에 반하여 시(詩)를 읊으면서 선돌의 암벽에다 운장벽(雲莊壁)]이라는 글자를  새겨놓고 붉은 주색(朱色)을 칠한 것이 지금도 남아 있다.

-옮긴글-

 

 선돌

 

 

 선돌 오른쪽 강의 모습

 

 

 이곳에서 영화 촬영도 하였고 요즘엔 1박2일에도 나왔었답니다.

그후로 관광객이 많아져서 많이 붐빈다고 가이드가 말해주었습니다.

 

영월엔 역사 유적이 많다고 합니다.

영월에 오면 슬픈 역사가 담긴 청령포를 그냥 지날 수 없지요. 그래서 다시 겨울 청룡포를 봅니다.

 

 

 청령포 명승 제 50호

이곳은 조선왕조 제 6대 임금인 단종이 1457년(세조3)에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처음으로 유배(流配) 되었던 곳이다.

3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막혀 있어서,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유배지로 적합한 곳이다.

단종은 1457년 6월 28일부터 두 달 동안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그 해 여름에 홍수로 청령포가 범람하여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겨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1726년 (영조2)에는 단종의 유배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금표비(禁標碑)를 세웠고, 1763년(영조39) 9월에는 영조가 친필로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는 비문을  써서 단종이 살던 집터에 비를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2,000년  4월에는  단종이 거쳐하던 곳에 정면 5칸, 측면 2칸 반 규모의 겹쳐마에 팔작지붕 형식으로 기와집을 복원하였고, 부속건물로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홑처마에 우진각 지붕 형식의 초가집을 건립하였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하던  집을 복원 한 곳  

 

 

  청룡포 안에는 단종의 슬픈 역사를  듣고 보아서 다 알고 있다는 관음송은 꼿꼿이 서서 단종애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단종이  저 소나무의 y자 가지에 올라 앉아 외로움과  슬플을 달래던 나무랍니다. 

 

 

 

 모두들 관음송 앞에 기념 사진을 남기고싶어합니다. 우리도 한장!

 

 

 

이 봉우리는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로 유배된 후 해질 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므로 노산대라 부르고 있답니다.

 

 

 

 

단종이 앉았던 노산대에 저도 앉아 보았습니다. 

 

 

 

 노산대에서 보이는 산과 강,  마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