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봄이 왔으니 등산을 하자고 전화가 와서 동생집으로 갔는데
산행 시작지점이 상주 시어동에서 부터 올라 문장대를 지나서 법주사로 완주하는데 4~5시간 걸린다고 오를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하차하고 산행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무리 하지 말고 차로 법주사 입구까지 이동하라고 알려줍니다.
마음 같아선 시어동에서 부터 정상 문장대를 거쳐 법주사로 내려오고싶었는데 눈발이 날립니다.
더우기 대장님께서 산이 미끄럽고 곳곳에 눈이 있으니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만 가는게 좋겠다고 합니다. 난 동생집에 있다가 따라나섰기 때문에 아이젠도 준비 못했고 동생 역시 컨디션이 산을 완주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아쉽지만 무리하는 것 보다는 나을것 같아 편하게 법주사앞에 내려서 법주사부터 이곳저곳 전각들을 둘러보고 산을 조금 올라보려했는데 나보다 동생이 더 힘들어해서 산행은 아예 포기를하고 법주사 주변만 맴돌다 왔습니다. ㅎㅎ
상주 시어동 속리산입구
문장대를 오르지 못한 아쉬움에 입구에 걸려 있는 사진을 옮겨왔습니다
법주사 입구 솔밭에서 눈덮인 산이 멀리 보인다.
차로 한참을 와서 법주사 주차장에 하차한 후 법주사로 들어가는 입구
입장료 3,000원이 비싸다고 입장을 포기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산에도 못올랐는데 입장료 때문에 못 들어가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아 우린 둘이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은 사적 및 명승 제 4호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조사가 삼국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처음 건립한 이래 혜공왕 12년(776) 진표율사가 금동미륵삼존불상을 갖춰 법상종의 3대 가람으로 발전하여 오던 중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조선 인조2년(1624)까지 사명대사 및 벽암대사에 의해 다시 건립되고 보수 증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湖西 第一 伽藍"이라고 쓰인 일주문 주변 소나무가 객을 반깁니다.
"이 물은 보은군에서 공급하는 지방 상수도 입니다."
커다란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 목이 마르지 않은 사람도 마시고싶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법주사 입구에 俗離山 事實記碑가 있는 비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67호
俗離山 事實記碑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67호
이 비석은 속리산의 내역을 기록한 것으로 현종 7년(1666)에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써서 법주사 입구에 세운 것이다.
내용은 속리산이 명산임과, 세조가 이곳에 행차한 사실등을 적고 있다. 특히 수정봉 마루에 있는 거북 바위에 대해서는 머리를 서쪽으로 두고 있는데 중국인들이 중국의 재물이 우리나라로 들어온다고 하여 그 머리를 자르고 거북의 등에 10층의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것을 효종 4년(1653)에 옥천 군수 이두양이 다시 머리를 잇게 하였는데, 그 후 충청병마절도사 민진익이 관찰사 임의백에게 일러 탑을 헐어 버렸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당시 지식인들이 숭명사대(崇明事大)의 명분으로 불교를 억압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금강문을 지나면 다시 사천왕문이 보입니다
속리산 법주사 당간지주와 석연지 그리고 사리각이 보이는 풍경입니다.
법주사 팔상전(法住寺 捌相殿)
국보 제 55호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그 후 임진왜란 때에 불타버려 조선 인조 4년(1626)에 다시 지어졌고, 최근 (1968)에 완전 해체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팔상전은 법주사의 5층 목조탑 건축으로, 1984년 4월 30일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3층 목조탑이 화재로 소실됨으로써,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된 중요한 건축물이다. 내부 기둥과 기둥 사이 4면에 석가여래의 일생을 8장면의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八相圖)가 모셔져 있으므로 이 5층 목탑을 팔상전이라고 부르게 된 듯하다. 전체 높이는 약 22.7m로써 현존하는 한국의 탑 중에 제일 높은 것이다.
팔상전
팔상전
금동미륵대불
신라 혜공왕 12년(서기 776년)에 진표율사 7년간의 노력 끝에 금동미륵대불을 조성해 모셨다. 그때부터 모신 미륵부처님을 조선조 고종 9년(서기 1872년)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축조함에 소요되는 자금마련이라는 구실로 당백전 화폐를 주조하기 위해 불상을 몰수해 갔다.
일제치하인 1939년에 장석상 당시 주지스님이 대시주 김수곤의 후원하에 김복진 조각가에게 의뢰하여 시멘트 부처님을 조성하던 중 약 80%의 공정상태에서 6.25 동란으로 중단되었다.
1963년 박추담 주지스님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장군과 이방자 여사의 시주로 복원불사가 재개되어 1964년 5월에 시멘트 미륵부처님이 완성. 회향되었다.
1986년 류월탄 주지스님 당시, 붕괴직전의 시멘트 미륵부처님이 해체되고 4년 뒤인 1990년 4월 청동미륵부처님을 다시 조성해 모셨다. 기존조성 시멘트불상의 크기와 형상을 그대로 복사해서 청동불로 바꾼것이다.
2,000년에 들어서, 석지명 주시스님이 호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해서 국난극복과 민족화합, 2002 한. 일 월드컵행사의 성공 개최 및 세계평화를 발원하여 검푸른 청동녹을 벗겨내고 개금불사를 시작했다. 2년여의 노력으로 2002년 6월 7일 금동미륵대불 회향대법회를 갖게 되었는데 본래의 금동미륵부처님을 복원한 셈이다.
개금방법은 습식전기도금공법으로 순금 3미크론 두께로 연도 금면적 900m2에 황금 80kg이 소요되었고, 재원은 신심어린 3만여 불자의 시주금으로 충당되었으며, 공사 연 동원인력은 총 4,500여명이었다.
법주사 대웅보전
보물 제 915호
얕은 기단 위에 서 있는 중층인 이 건물은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인조 2년(1624년)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것으로 총 120간, 건평 170평, 높이 약 20m에 이르는 대규모의 건축물입니다.
내부에는 앉은키가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3신불(三身佛)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중앙에 봉안한 불상은 진실로 영원한 것을 밝힌다는 진여의 몸인 법신 비로자나불상 이고, 좌측에 안치한 불상은 과거의 오랜 수행에 의한 과보로 나타날 보신 노사나불(아미타불)상이며, 우측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화신으로 나투신 석가모니불상입니다.
대웅보전에 모셔진 부처님은 실내 안존불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불상입니다. 세 분 부처님을 좀더 쉽게 설명하면 우리 사람에게는 정신 즉 마음이 있고, 공부를 하면 지식이 있게 되는 즉 덕이 있고, 사람마다 제각기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 셋을 포용하고 있습니다. 법당의 가운데 부처님은 마음을, 왼쪽 부처님은 덕을, 그리고 오른쪽 부처님은 육신을 뜻한 것입니다. 이렇듯 부처님은 원래 한 분이지만 우리 중생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세 몸(三身)으로 모셔 놓은 것입니다.
좌측에 노사나불, 중앙에 비로자나불, 우측에 석가모니불
대웅전 앞에서 보이는 풍경 오른쪽에 파란천으로 덮인곳은 공사중인 원통전 - 관세음보살님은 옆에 임시 건물에서 우리의 인사를 받으셨습니다. ㅎㅎ
대웅전앞 계단옆의 조각
대웅전 앞 계단- 위험하다는 표시가 있네요,
명부전과 삼성각
지장보살이 모셔진 명부전 내부
약사전에 모셔진 약사여래불
임시 거처에 모셔진 관세음보살
삼성각 내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79호가 있는 바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79호
이 비는 고려말의 승 자정국존의 비로서 고려 충혜왕 복위 3년(1342)에 건립하였다. 자연 암석의 앞면을 긴 네모꼴로 파서 비석받침대를 만들고 몸돌을 꽂아 세웠다. 높이 213cm, 폭 107cm의 화강석 비이다. 자정국존(1240~ 1327)의 성은 김씨이며, 보명(普明)의 탑호(塔號)를 받았다. 국령사. 장의사. 법주사 등 여러 사찰의 주지와 도승통(都僧統)을 지냈다.
이 비는 자연암반에 인위적으로 홈을 파서 몸돌을 끼워 만든 희귀(稀貴)한 문화재이다.
사리각과 수정봉에 세워진 작은 탑
사리각 안에 모셔진 사리탑
법주사 쌍사자 석등
국보 제 5호
신라 석등 중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성덕왕 19년(72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등은 부처의 자비로 명랑한 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의 재앙(불교에서의 8난)을 예방하기 위해 창조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석조 유물에 사자를 조각한 것은 삼국시대이래 많은 예를 볼 수 있으나 현존하는 석탑, 석등에 조각된 사자상 중 법주사 쌍사자 석등이 가장 뛰어난 솜씨를 드러내고 있다.
다른 석등에 비해 불을 켜는 화사석과 그 위를 덮는 지붕돌이 큰 것이 특징이다.
법주사 사천왕 석등
보물 제 15호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조각 수법으로 보아 혜공왕(765~780, 재위)대에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다시 고쳐 지을 때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화사석(불을 켜놓는 부분)은 8각으로 4면에 창(窓)을,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였고, 지붕돌(석등의 위를 덮는 돌) 정상에는 보주를 받치고 있는 받침이 남아 있다.
사천왕이란 불교에서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을 뜻한다.
법주사 사천왕 석등
보물 제 15호
법주사 석연지
국보 제 64호
8각의 받침석 위에 3단의 굄과 한 층의 복련대(伏蓮臺) 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무늬대)를 더하고 그 구름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연지를 떠받쳐 마치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듯한 모습을 표현한 걸작품으로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인다.
연꽃은 더러운 흙탕물에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듯이 우리도 현실은 서로가 시기하고 모함하는 연못의 흙탕물과 같은 세상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착하게 생활하고 내세에는 극락세계에 태어난다는 불교의 윤회적인 교리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법주사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
보물 제 1417호
희견보살은 성불의 큰 서원을 가지고 몸과 뼈를 태우면서까지 아미타불 앞에 공양하는 보살로서 사람에게 어떠한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강한 의지를 배양하라는 뜻으로 조성한 것이라 한다.
이 보살상은 모루돌 위에 다기(茶器) 모양의 그릇을 머리에 이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모루돌과 보살 그리고 그릇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얼굴 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자세히 볼 수 없지만, 잘록하고 유연한 허리와 대조적으로 그릇받침을 받쳐든 양팔은 힘겨운 듯한 모습을 꽤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옷은 속옷 위에 가사를 걸쳤고, 띠 매듭과 옷자락이 무릎 위에서 투박하게 처리 되었다.
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예술적 가치가 있는 희귀한 문화재이다. 전체높이는 213cm이다.
법주사 철확(鐵확)
보물 1413호
철확은 무쇠로 만든 솥이다.
법주사에 전하여 오는 말로는 신라 성덕왕때(720~ 736재위)에 조성하였는데, 당시 법주사가 한창 번성하여 3,000 승도가 운집하여 있을 때 장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크기는 높이가 120cm, 직경 270cm, 둘레가 1,080cm이며 두께 10cm나 된다.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솥 중에서 가장 큰 솥이다.
법주사 석조
유형문화재 제 70호
이 석조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긴 네모꼴의 큰 물통이다. 높이 94cm, 길이 446cm, 폭 240cm이다.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만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비교적 완전한 모습으로 잘 보존되고 있으며, 법주사의 3,000 승도가 물을 저장하고 사용하였다고 한다.
속리산을 대표하는 소나무
속리 정이품송(俗離 正二品松)
천연기념물 제 103호
이 소나무는 나이가 약 800년 정도인 것으로 추정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오래된 소나무이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 나무는 조선 세조(1455~ 1468 재위)가 속리산에 행차할 때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이 나무 가지에 걸리어 지나가지 못하게 될것을 염려하여 "소나무 가지에 연 걸린다 " 하고 말하자 밑가지가 저절로 들려 그 밑을 통과하게 되어 이를 신기하게 여긴 왕이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이로부터 소나무는 [연걸이 소나무] 또는 [정이품 송]으로 불리어지게 된것이라고 한다.
정이품 송이 지금보다 건강할 때의 모습의 사진
속리산까지 왔는데 정이품송을 그냥 지나치면 서운할 것 같아
산악회의 임원되시는 분께 부탁을 드렸다
차좀 잠깐 세워주시라고 사진 한 장만 찍고 싶다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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