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작품

단종비 정순왕후 허경스님 추모 다례

백합사랑 2010. 4. 25. 18:20

 단종비 정순왕후는 15세에 단종비로 책봉되었으나 3년 만에 단종이 폐위되는 바람에 청룡사로 피신하였습니다.  18세가 되던 해 정순왕후는 허경스님으로 출가하였으며, 함께 출궁한 후궁 김씨 원경스님,  후궁 권씨는 혜경스님으로, 상궁이었던 세 분도 희안스님, 지심스님, 계지스님으로 출가하였습니다.

 

이후 허경스님은 왕비로서의 위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강인한 인내심과 자비로움으로 시류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옷감에 물을 들여 생활하면서 청빈한 수행자의 삶을 묵묵히 영위하시며 65년간 청룡사에서 수행하시다가 세수 82세에 열반하였습니다.  훗날 1698년 숙종 24년에 노산군이 단종으로 추복되면서 허경스님은 정순왕후 송씨로 추복되어 정순왕후 능을 사릉으로 추상하고, 신위를 종묘로 이전하였습니다. 

 

 '허경스님 추모 다례'는 전통 불교의식을 통해 비구니 허경스님으로 수행하신 정순왕후의 삶을 재조명하고, 또한 종로구청에서 거행하는 '단종비 정순왕후 추모 문화제'를 역사적 스토리텔링이 담긴 다채로운 전통문화 행사로 완성시키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청룡사는  단종비 허경스님께서 수행하시던 절로 고려 태조 5년(922년)삼각산맥의 한 자락인 외청룡 산 등성이의 현 낙산에 도선 국사의 유훈에 따라 창건된 절입니다.  1405년  조선건국 후 무학대사가 청룡사를 중창하였고, 왕자의 난 이후 태조가 경순 공주를 이 절에 출가시켰으며 연산군 때 폐사 되었다가  중종 7년(1512년)에  중창되었답니다.  대웅전과 더불어 명부전, 산신각(예전엔 칠성각도 있었음) 등이 있으며 도시계획 도로 개설로 인해 규모가 축소된 현재의 모습입니다.  절 옆에 정업원 비각이 서있으며 정순왕후가 82세로 돌아가시기전까지 주지로 계셨다고 전해집니다.

 

 

 

 

 

 청룡사 대웅전 앞에 허경스님(정순왕후)과 그외 함께하셨던 분들의 위패를 모시고 다례를 올리고 있는 모습

 

 

 

 스님들이 제를 올리는 모습

 

 요령(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기구), 징(꽹과리와 비슷하지만 절에서 쓰는 것은    좀더 크고 울림도 중후함 염불 할 때 또는 회심곡을 할때 쓰임)   목탁(나무로 만든 것으로 절에 상징물로 여겨질 정도로 절에서는 매일 쓰이는 악기)  바라(바라춤을 출때 쓰이는 도구- 지금 2개가 포개진 상태- 로 두개를 맞 부딛혀서 소리를 나게 하며 춤 추는 도구)

 

 장구며 여러가지 삼현 육각을 할때  쓰이는 악기들과  청룡사에 있는 오래된 북

 

 

 

 승무  일명 나비춤이라고도 함(절에서 49제나 크게 제사를 올릴때 하는 예식)

 

 

 

 

 

 삼현육각이라 해야하는지?

 

중간에 점심시간에   많은 신도들과 참석한 분들에게  절에서 준비해 주신 비빔밥

 

 

 추모문화제를 시작하게 된지 3회째랍니다.

맨처음엔 종로 구청 자체에서만 했었는데 정순왕후가 오랜 기간 수행을 했던 청룡사를 빼어놓고는 정순왕후의 삶을 이야기 하기 어려워 지난해 2회 때 부터 청룡사에서 거행을 하게 되었답니다.

2회때 가셨던 선배언니께서 제가 좋아하는 역사문화 이야기라고 올해는 꼭 와서 보라고 몇번씩이나 전화를 주시며 꼭 오라하셔서 전날 병원가서 치료 받고 한의원에 가서 침에 뜸에  사혈에  부항까지하고 그렇게 참석을 했었답니다.ㅎㅎㅎ

 

정순왕후로 뽑힌 학생은 진선여고 2학년 학생으로 다례제 올리기 전날 혜화동 대학로에서 뽑혔답니다.

 

 정순왕후로 뽑힌 학생이 정순왕후께 다례를 올리는 장면입니다

 

 

 전국 비구니 회장 스님을 비롯 여러 비구니 스님들께서 비구니였던 허경스님(정순왕후)께 다례를 올리고 계십니다.

 

 

 

 

 참 이쁘지요?

 

 

 

 

 

 이곳은  정업원 구기 비각과   정업원 터가 있는 곳 입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5호/ 시대: 1771년(영조 47)

소재지 :종로구 숭인동 산 3번지 

 

이곳은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1440~1521) 가 궁에서 물러난 뒤 평생을 살았던 곳이다. 정순왕후는 단종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자 이곳에서 단종이 있는 동쪽을 바라보며 안녕을 빌었다. 단종이 죽은 후1521년(중종 16년) 8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종의 명복을 빌며 평생을 보냈다. 훗날 영조가 이곳이 정순왕후가 머물렀던 곳임을 알게 되어. 1771년(영조 47)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비석을 세워 표지로 삼도록 하였다.

 원래 정업원이란 양반 출신의 여인들이 출가하여 머물던 절을 말한다.  정업원과 마주하는 봉우리에는 '동망봉(東望峯)'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은 정순왕후가 단종이 있는 영월 쪽을 좀더 잘 보기 위해 올랐던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정업원터 비석에는 '정업원 옛 터 신묘년 (영조 47) 9월 6일에 눈물을 머금고 쓰다( 淨業院舊基歲辛卯 九月 六日 飮涕書)'라는 글씨와 비각 현판에 '앞산 뒷 바위 천만년을 가오리(전봉후암 어천만년前峯後巖於千萬年)'라는 글이 있다.  이것은 모두 영조의 친필이며, 이 비석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을  한 비각 안에 있다.

 

단종 즉위 1년 후인 1453년, 부왕이 돌아가신 지 삼 년이 지나지 않아 단종의 국혼을 반대하던 이들도 많았지만 왕실과 후세 생산을 위해 14세의 정순왕후와 13세의 어린 왕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된후   정순왕후는 3년여의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을 끝으로 1457년 6월 21일 지금의 청계천 영도교(영미교 -원래의 지명으로 이곳에서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원히 이별을 하였다고 영미교라 불리던 곳)에서 영월로 유배를 떠나는 단종과 이별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 후 정순왕후는 시녀 3명과 함께 동대문 밖(현 숭인동)영빈정  동망봉 기슭에 초막을 짓고 살게 되었답니다.  세조는 궁핍한 정순왕후의 생활이 안쓰러워 집을 지어 주었지만  도움을 거부하고 82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 청룡사에서  지냈답니다.

 

 

정순왕후가 일개 여인으로 강봉된 후 평생을 보낸 " 정업원"에 세워진 비각

비각 현판 글씨는 영조대왕이 쓴 친필 글씨로 "전봉후암 어천만년前峯後巖於千萬年"과  비석 뒷쪽엔 정업원구기세신묘 9월 6일 음체서 淨業院舊基歲辛卯 九月 六日 飮涕書"라고 써있습니다.

이곳에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절에서 보이는 동망봉입니다. 

예전엔 동망봉에 동쪽을 향해 절하는듯 구부러진 소나무가 있었는데 그 소나무도 정순왕후와 함께 단종을 향해 절을 하는 모습이라고들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곳에 무허가 판자촌이 많이 들어서면서 그랬는지? 오랫만에 다시 가보니 그 소나무는 간곳이 없었습니다.  다행인지?   판자촌들 거의 없어지고 동망봉을 복원하여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고 숭인공원으로 쓰이고 있네요

 

 

이 바위는  비각 현판에 있는 '전봉후암'할때 후암을 이야기 했던 바위입니다. 비각 뒷편 절안에 있습니다.

 

 

 절에선 아직도 다례제가 다 끝나지 않은 상태였지만 남은 행사 일정으로 행사 진행 책임자이신  종로

구청장님과 진행요원들이 동망봉으로 옮기시는데 높으신 분들은 모두 차로 옮기십니다.

에그머니~  전 뛰어야합니다. 빨리 뛰어야 행사 진행을 볼 수 있을것 같아서죠.   헉헉 ~거리며 동망봉으로 올라갔더니 그곳엔  여러가지 행사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왕과 왕비의 포토존도 있고 정순왕후께서 생계를 위해 하셨던 자주천 염색(그래서 한때는 이곳 숭인동을 자주동이라고도 불리어 졌다함 ) 체험하는 곳도 있고 먹거리 시장까지 열리고 있었습니다.

 숭인공원으로 거듭 태어난 동망봉 행사장

 

 

 

 행사장엔 말을 탄 장수 들이 경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ㅎㅎ

 

 

 

 

 동망봉에 모여서 구청장님 말씀도 듣고  다같이 영도교(영미교)까지 행진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행진 코스는  동망봉(동망정) ->청룡사(정업원) ->채석장 자주동천 -> 여인시장 옛터 -> 영도교(영미교)

 

 군인 학생등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해주신 모습입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동망정은 조선 6대왕 단종이 강원도 영월로 귀양가서 죽음을 당하자 그의 비(妃) 정순왕후송씨가 현재 청룡사 자리인 정업원에서 시녀와 같이 지내면서 매일 동쪽 (영월쪽)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에 올라와 망왕(亡王)의 명복을 빌었다하여'동망봉' 이라 부르게 된 유래에 따라 이곳에 팔각 정자를  건립하여 '동망정' 이라 이름을 붙였답니다.

 

 동망정에 올라 내려다 보이는 동망봉 산책로  예전엔 무허가 판자촌이었던 곳을 종로구에서 공원으로 아름답게 조성한것 같습니다.

 

 동망봉 한 쪽엔   실개천도 흐르네요.

 

 

 

 동망봉에서 내려와 다시 청룡사를 지나고 있는 행사 진행원들

 

 

 

 

 

 

 

 

 창신동길에서 ~ 청계천 영도교를 향해서 가고 있는 취타대들

 

 

 

 그시절의 모습들로 분장한  많은 행사 진행원들이 수고하고 있었습니다

 

 

 

 

 

  왕비가 탄 가마로 뒤에는 상궁의 복장이 보이지요?

 

 

 

노란 옷을 입은 분은 단종왕을 분한 분입니다 장군 복장도 보이지요? 

 

 이제 한참을 걸어서 청계천에 있는 영도교까지 왔습니다.

한참을 걸었더니 다리는 아프지만 어릴때 딸아다니던 초파일 행진을 생각하며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ㅎㅎㅎ

 

 

 

 

 

 

 

 

 

 영도교에선 연극으로 단종애사를  재현했습니다.

 

 

 

  단종과 정순왕후가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랍니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어 가는  장면입니다

 

 

 

 왕비로 뽑힌 진선여고 학생 인물도 이쁘고 목소리도 또렸하고 이뻤습니다

 실제로 정순왕후를 뽑을때도   총명하고 덕성스러움을 보고   간택을 하였었답니다.

 

 

 종로구청장님과 무슨 대대장님이라시던것 같은데 ?  에고 모르겠습니다

이 구청장님께서 정순왕후다례제를  발굴해 문화행사로 만드시는데 많은 기여를 하신 분으로 들었습니다.

구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흰옷을 입은 여자분은 진행을 보시는 분입니다

 

 

 

 진행석 앞에 내외 귀빈석인것 같습니다

때: 2010년 4월 24일 토요일

곳 : 영도교(예전엔 영미교라 불리었던 곳이라며  다리 이름도 바꾸어야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