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청백리 맹사성님 고택을 찾아보고

백합사랑 2012. 2. 27. 04:48

 오래전부터 가보고싶었던 조선조의 대표적 청백리로 백성의 아픔을 함께 나눈

 서민적 정승으로 유명한 맹사성 문정공고택을 보기 위해 찾아 나섰습니다

주차장에 닿으니 공덕비와 시비가 먼저 보입니다 

고택은 어디에 있지? 보이질 않아 주변집을 기웃거렸지만 인기척이 없다  멀리 집을 나서시는 할아버님이 보여서 노칠세라 쫓아가서 여쭈어 보았더니 맞은편 언덕에  300m쯤 더 올라가면 고택이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공덕비들이 있는 비각

 

 

 

 

 

맹사성댁으로 가는 길목엔 정겨운 돌담 집들이 고풍스럽다

 

 

맹사성고택 입구

 

 

고택앞 고목에 이쁜 새가 한 마리

 

 

 맹사성 고택 기념관에 들어가는 문

 

 

 

맹사성 기념관

 

 

언제 만들어진 화장실인지는 모르지만 ~

 

 

맹사성님의 21대 손이 살고 계신집.   청백리 집안의 자손이 살고 계신 집이라 그런지 소박하고 검소함이 보인다.  노부부 두 분만 살고 계시고 자손들은  외지에 살고 있다고 하신다. 청백리의 21대손이시라 그러신지 할아버님 모습에서도  맹사성님처럼  맑고 해맑으신   모습이 보입니다

 

 

21대손 내외분이 살고 계신 집

 

쌍행수

이 은행나무는 1982년 11월 1일 충남 도 나무로 지정 수령이 610여년으로 추정되며 나무의 높이는 35m이고 둘레는 9m로서 사적 제 109호로 지정된 맹사성 정승의 고택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 나무는 세종대왕때 좌의정으로 봉직하고 청백리로 유명한 고불 맹사성 정승이 1380여년경에 수식한 것으로써 당시 고불은 이 나무의 보호를 위하여 축대를 쌓고 단을 만들었는데 뜻있는 자들과 강학하던 자리라는 뜻으로 이곳을 행단이라 칭하였다 한다.

 한편 이 나무는 2-300여년 전부터 근맹아가 원목 옆 사방에서 자라 지금과 같은 거묵으로 자라게 된것이며 1987년  원목의 동공내 부패로 인하여 인공 수피 시술을 받은바 있다.

- 옮긴글-

 수피를 받고 한쪽이 살아 있는 원목과 주변에 근맹아로  둘러 싸여 자라 있는 은행나무

 

 

 

 

 

맹사성고택

맹씨고택은 1330년(고려 충숙왕 17년) 2월 무민공 최영의 부친인 최원직이 건축하였다고 전하며, 실제 무민공이 거쳐하였던 집이다.    1388년(우왕 14년  이성계의 위화도위군(威化島回軍)에 따른 정란( 政亂)으로 무민공이 죽음을 당하여, 비어있던 집에 맹사성(孟思成 : 최영손서)의 아버지 맹희도(孟希道) 동포공이 정란을 피하여 한산을 거쳐 이곳으로 거쳐를 옮겨 은거하였다   1482년(성종 13년), 1642년(인조 20년), 1814년(순조14년), 그리고 1929년에 각각 중수한 기록이 있으며, 고택 가구부(架構部)에 남아 있는 고부재(古部材)와 창호(窓戶) 등이, 견실한 고법을 고려시대의 귀중한 건축물이다 .   이 집은 "工" 자형 맞배 지붕으로  건평은 90.72m2(27.5평) 이다

- 옮긴글-

 

 

고택의 옆모습

 

 

고택의 뒷모습------ 고택은 앞모습과 뒷모습이  똑같다고 21대손께서 말씀해 주신다

 

 

뒷문으로 들여다 본 대청과 건너방 문

 

고택 옆면

 

 

세덕사 입구

 

 

세덕사 

세덕사는 고려말 이군불사의 고결한 절개를 지키다 순절한 두문동 72현의 한 분이신 맹유 상서공을 비롯하여, 벼슬을 버리고 동 두문동(東 杜門洞)에 은신 중 아버지 상서공이  순절하자, 끝내 한민으로서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현의 또 한 분이신  맹희도 동포공과 조선조의 대표적 청백리로 백성의 아픔을 함께 나눈 서민적 정승으로 유명한   맹사성 문정공등 신창맹씨 선조 삼대의 위패를 모신  사당

 

 

친구와  고택을 둘러 본후 기왕이면 해설사님께   연락해서 역사적인 이야기도 들어보고 기념관도 구경해 보자며  나오는데  마침  21대손이신  해설가님을 만나서 해설을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응해주시네요

 

 

아래는 청백리 고불맹사성 기념관에 있는 기념품들

고불의 5대 정신

 

 

고불 맹사성님의 친필

 

 

제목 표도연 - 성절사로 명나라를 다녀온 선물과 표주박 : 맹씨가문 역대로 전수된 가장 유품(家藏遺品)    신창맹씨 가문 소장품이며  진품은 공주 박물관에 있고 이곳에 있는 것들은 복제품이랍니다

 

 

옥비녀(정경부인 철원최씨의 장식품)와 백옥적(白玉笛)  시종관(侍從官)으로 명나라를 다녀온 년대로 추정(태종 7년(1407)11월   길이 49cm   출처: 명나라때 제품

 

 

금동연화반( 14세기 고려말 )   갓끈(15세기 조선조 초기)     금동연화잔(14세기 고려말)  ---- 유품들은  진품을 복제한 것들이고 진품은  따로 소장 되어 있다고  알려주심

 

 

정조대왕이 내려주신 현판 -- 하여간 왕이 내려주신 것인데 정조대왕이 확실한지 기억이? 

 

 

 

맹사성님 초상화인데  후대에 그려진 것이라함

 

 

추정으로 만든  쌍행수 옆에 강단 건물과 고택 미니어쳐  라고 합니다

 

 

맹사성님 생애에 있었던 기이한 일들을 그림으로 남긴

 

 

 

 

 

 

맹사성님 가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맹자님의 후손이시며  몇년전 중국 맹자님 고향에 가셔서 친절한 대접을 받고 오셨다고 기뻐하셨습니다

 

 

 

맹사성님의 21대 손이십니다   할아버님 감사합니다!

 

 

맹사성님 고택을 돌아보고 오늘날의 정치하는 분들도 맹사성님을 좀 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