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추사김정희님 고택

백합사랑 2012. 3. 1. 19:17

추사고택 전경

 

추사고택입구

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이며, 영조대왕의 부마이신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께서 1700년대 중반에 건립한 53칸 규모의 양반 대갓집으로 , 추산선생이 태어나서 성장한 곳이며, 주변에는 추사선생묘 , 월성위 화순옹주 묘와 정려문, 백송, 추사선생이 수도하던 화암사 등 추사 선생과 관련된 문화유적이 있다.

 

대문으로 들어오면 먼저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앞엔 모란이 있습니다

추사고택은 304.47m2으로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문간채, 사당채가 있다.

안채는 6칸의 대청과 2칸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안방 및 건넌방의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춘 'ㅁ'자형의 집이다.

안방과 건넌방 밖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 천정은 다락으로 되어 있으며,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있는 대청은 6칸으로 그리 흔치 않은 규모이다.   이러한 'ㅁ' 자형 가옥은 중부지방과 영남 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이른바 '대갓집' 형이다.

사랑채는 바깥 솟을대문을 들어선 마당에 자리잡은 'ㄱ' 자형 집이다.  원래 사랑채와 안채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조선시대의 가택관념이었는데, 이는 유교적 윤리관념에 근거한 것이다.  이 사랑채는 남쪽에 한 칸, 동쪽에 두 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마루공간이 큰 것은 주인공의 사회적 활동이나 예술적 활동을 하는데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다.

-옮긴글-

 

 

 

사랑채 뒤로 안채가 있습니다

 

사랑채 댓돌 앞에 세워진 이 돌기둥은 해시계 받침 용도로 쓰였으며, 석년(石年)이라는 글씨는 추사선생의 아들인 상우가 추사체로 쓴 것을 각자 한 것임

 

사랑채의 사랑방

바깥 소슬대문을 들어선 마당에 자리잡은 ' ㄱ'자형 집이다.   원래 사랑채와 안채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조선시데의 가택 관념이었는데  그것은 유교적 윤리 관념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 사랑채는 매우 크지만  남쪽에 한 칸의 온돌방,  동쪽에 두 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의 툇마루이다.  이렇게 큰 마루공간이 있는 것은 주인공의 사회적 활동이나 예술적 활동을 하는데 요긴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세한도 복사본입니다

歲寒圖는 국보 제 180호

세한도는 1844년 완당나이 59세 때, 제주도에서 귀양살이 하는 동안에 제자인 우선 이상적이 정성을 다해 청나라 연경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주는 등 변함없이 사제의 의리를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세한송에 비유하여 그려준 그림으로 , 완당 생애 최고의 명작이다. (개인소장 )

추사선생이 제주도의 대정에서 8년여의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 자신의 심의를 그대로 형상화 시킨 격조 높은 뛰어난 작품이다.  겨울의 텅 빈 공간 안에 서 있는  노송 몇 그루는 선생 자신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원래 역관 이상적이 지난날 친하게 지내던 정의를 잊지 않고 귀중한 책들을 유배 중인 선생께 보내주는 데 대한 보답으로

  <송백> 은 <추운 겨울이 되어야 그 가치가 들어난다> 는 뜻을 실어 그려준 것이다.

 

 

사랑채

 

 

有福量壽

이글은 방문위에 있는 현판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랑채에서 바라본 대문

선비양반의 대갓집 대문답게 대문에도 줄연이 있습니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

 

 

안채의 안방이 있는 건물 ㅁ자형 건물 윗채

 

 

無量壽 [ 한 없는 수명 ] 이란 뜻으로, 불교의 윤회설에 입각하여 쓴 글이다.  부처님의 法身은 三世고금을 통하여 항상 존재하여 멸하지 않으므로, 그 수명이 실로 무량하여 한이 없기 때문에 무량수라 하였다.  왼쪽의 승련노인(勝蓮老人)은 추사선생의 號

안채 안방에 걸린

 萬壽無疆(건강과 장수를 빌 때 쓰는 말로써, [ 한없이 목숨이 긺]을 나타내는 뜻이다.  예서(隸書).  오른쪽의 소연정지(小연正之)는 추사선생의 호이다.   이 글씨는 누구에게 , 언제 쓴 작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제주도 유배생활과 관직을 떠나 71세 때 경기도 과천 봉은사(奉恩寺)에 기거하고 계실 때 [大烹豆腐瓜畺菜 대팽두부과강채,  高會夫妻兒女孫 고회부처아녀손]이란 글씨를 행농(杏農) 유기환에게 선물할 즈음 다른 친구에게 써준 글시로 추정된다.

 

 

 

참 오랫만에 보는 벽장과 다락이 반가왔습니다

방안에 작은 문이 있는 것이 벽장이고 벽장오른쪽에 큰 문이 있는데 그문은 다락으로 오르는 문

절구와 맷돌

 

추사 선생님 영정이 모셔진 사당채

 

 

 

추사선생님 영정이 모셔진 사당

 

 

추사김정희선생님 영정

1786년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영조의 부마이신 월성위 김한신의 증손이며, 이조판서 김노경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김노영에게 입양되었다.   선생은 조선

 

 

 

우물---뚜껑을 열어보니 아직도 맑은 물이

 

 

추사선생님 묘소

1937년에 초배(初配)인 한산이씨 묘에 추사묘와 계배(繼配)인 예안이씨 묘를 이장하여 3위 합장하였다.  묘에는 석상과 망주석 1쌍이 있고, 묘비는 그 해 9월에 세웠는데, 종인 김승렬(김승열)이 짓고 썼다.

-옮긴글-

 

 

 

 

추사선생님 묘소 오른쪽엔 대나무숲 왼쪽엔 소나무숲이 참 이쁩니다

 

 

추사 기념관

기념관 안에는 상설 전시관으로 추사선생의 출생과 가문- 탄생의 신비한 설화 축소모형 전시 명문의 후예 가계도 추사고택 설명 및 축소모형 전시/  연경에서 60일간의 청나라 스승 옹방강,   완원과의 만남 추사의 연경행 매직비전/   학예의 연찬- 추사의 학문, 추사와 불교, 탁본복원모형/  추사의 시, 서, 화 - 시, 서, 화 유물 복제전시/ 제주도 유배기, 만년기 -  추사의 적거지 축소모형 전시, 유배시절 작품세계 / 등등 선생의 탄생부터 추사체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일대기를 볼 수 있습니다  전시된 작품들은 진품과 복제로 전시하였습니다

 

추사기념관에 전시된  인장들 복사본

추사고택의 곳곳의 아름다운 곳을  보고 나오며 몇 일전에 들렀던 청백리맹사성고택을 보았을 때와 상반 되는 삶을 사신 두 분에 대해 잠간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