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팽성읍 농성

백합사랑 2015. 11. 5. 10:41

친구집에 가다가 평택농성 한 번도 못가봤다고 했더니 데리고 고맙게도 데려가줘서 간곳

평택시 농성( 農城)

경기도 기념물 제 74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이 성의 축성연대는 임씨의 시조인 임팔급(林八及) 공이 당의 혼란을 피해 이곳에 망명하여 축성 정착한 것으로 보이나 삼국시대(三國時代)도적 때문에 쌓았다는 설, 고려(高麗)때  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倭寇)방어를 위하여 또는 조선(朝鮮)중기 (中期)임진왜란(任辰倭亂: 1592)때 왜적을 막기위해 쌓았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성이 위치한 자세로 볼 때 이런  소규모의 토축(土築) 성곽들은 대부분 초기(初期)국가(國家)의 형성단계 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되며, 이미 이 지역에 임팔급(林八及) 토착세력 집단들이 그들의 근거지로 축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평면 형태는 타원형(楕圓形)으로 동, 서쪽에 문터가 있고 높이는 4m 안팎이며 둘레는 약 300m인데 판축(版築)의 방법으로 축조가 되었다.

이분은 충절공 임팔급의 동상

忠節公林八及

한국 林氏의 始祖이신 충절공林八及은 신라의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오르셨을 때 적병(敵兵)이 변방(邊方)을 침입하므로 公이 분연히 토벌(討伐)하여 위난을 평정한 공훈(功勳)으로 팽성군(彭城君)에 봉(封)해지고 신덕왕조(神德王朝)에서 충절공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충절공은 중국 당(唐)나라에서 18세에 등과(登科)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병부시랑(兵部侍郞)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있을 때 간신배들의 모함을 받아 칠학사(七學士)와 함께 서기 850년 경에 우리나라 평택 팽성(彭城)에 오시어 농성( 農城)을 쌓고 정주(定住)하였다.

林氏의 太始祖이신 비간공(比干公)은 중국 은나라 왕자로, 조카인 주왕(紂王)의 폭정(暴政)을 충간(忠諫) 하다가 순국(殉國)한 만고충절(萬古忠節)이시다.  정실부인(正室婦人) 진(陳)씨가 장림산(長林山) 石室에서 득남하니 이분이 임씨 득성시조(得姓始祖) 견공(堅公) 이시다.

임씨는 팽성을 발상지(發祥地)로 하여 자손들이 전국 각지로 번창(繁昌)하여 우리나라 10대 성씨 20여개 관파(貫派)로 나뉘어졌다.   후손들은 시조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 받아 긴역사를 통하여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하며 우리의  씨쪽문화를 빛내어왔다 .

2004년 3월 18일

충절공 동상건립 위원회

옮긴글

 

 

입구에서 보이는 계단을 조금 오르면

보이는 이곳이 농성 내부

 

예전엔 텅빈 성만 있었는데 요즘 이렇게 나무조성이나 나무 장막을 쳐놓은 것이라고

조금 높게 보이는 것이 4m 높이의 농성

 

 

충절공동상건립기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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