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조의황제(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능을 찾아 보고싶었습니다
능 입구에 있는 수령 140년(2008년) 된 향나무
나무 속살에서 강한 향기가 나므로 향나무랍니다.
향을 피우는 것은 부정을 없애고 정신을 맑게 하여 천지신명과 연결하는 통로라고 생각하였죠. 신을 불러오는 매개체로 제사를 드릴 때는 반드시 향을 피우며, 여러 종교의식에도 널리 쓰입니다. 속살이 붉은 빛을 띤 보라색이므로 흔히 자단(紫檀)이라고도 부릅니다
40여년전에 갔었떤 융건능을 오랫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곤신지
원형연못 곤신지는 융릉이 천장된 이듬해 1790년 에 조성되었으며, 곤신방(坤申方 남서방향)은 융릉의 생방(生方: 풍수지리 용어로 묘지에서 처음 보이는 물을 지칭)으로 이곳이 좋은곳 (吉地)이기 때문에 판 연못입니다.
융릉의 전경
융릉은 사도세자로 알려진 장조(莊祖 1735~ 1762와 혜경궁으로 알려진 헌경황후(獻敬皇后 洪氏 1735 ~1815)
의 합장능이다.
소론계 학자에게 학문을 배운 사도세자는 노론과 갈등을 일으키다가 1762년 영조38에 뒤주에 갇혀 죽게되었다.
정조는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숭하고 , 당시 양주에 있던 영우원(永祐園)을 이곳으로 옮겨와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다. 1899년 고종이 잔헌세자를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로, 혜경궁을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 )로 추존하고, 현릉원을 융릉으로 높였다.
봉분 아랫부분은 십이지신상 자리에 모란과 연꽃 문양을 새긴 병풍석이 감싸고 있으며, 봉분과 지면이 맞닿는 부분에는 와첨석을 깔아서 장식하는 등 정교한 조영 기술이 돋보인다.
융릉은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자 했던 정조의 효성이 빚어낸 작품으로 조선왕릉 중에 가장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합장릉 : 왕과 왕비를 하나의 능에 모신 형태
뒤주: 쌀을 담아 놓는 나무로 만든 궤짝
추숭 :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이에게 임금의 칭호를 주는 것
나무로 철책을 만들어 놓아 들어갈 수는 없어 멀리 보았습니다
융릉의 비각
현릉원비와 융릉의 비가 함께 있다
융릉에서 15~ 20여분 걸어가면 다시 정조대왕의 능 건능이 나옵니다
정조대왕의 능
언덕이 더 놓은지 능이 제대로 보이질 않습니다
건릉비
왕릉 입구에 왕릉 자료관이 있고, 그곳에는 친절하게 해설을 해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능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줍니다
해설사님께서 기념 사진도 한 장 찍어주셨습니다
묘와 원과 릉의 차이점에 관해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고, 또한 해설사님께서 친절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능 입구에 있는 재실안에 개비자나무
천연기념물 제 504호
비자나무와 비슷하게 생겨서 개비자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남해안의 따뜻한 곳에 자라는 비자나무 보다 훨씬 추운 중부지방까지도 올라옵니다. 잎 넓은 활엽수 숲의 그늘 밑에서 흔히 만나는 키 작은 바늘잎나무입니디다. 여러 포기가 한꺼번에 모여 자라기를 좋아하며 머리 빗 모양의 잎이 非자 모양으로 뻗고 주홍빛 열매가 아름다워 정원수로 잘 심는 답니다.
재실
용주사 앞에는 식당이 거의 없어서 능옆으로 갔더니 많은 식당이 보입니다
찾아간집의 국이 어찌나 시원하고 맛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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