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계곡을 찾아 ~ 오산 세마대 보적사와 외암리 강당사

백합사랑 2016. 8. 7. 15:15

올 여름은 너무 더워서  에어컨이나 선풍기의 도움없이는 하루하루가 힘든 날들이다

 너무 더워 계곡을 찾아 간곳이 강당리에 강당사 계곡이었다

지난해인가 겨울에 한 번 갔었던 곳인데 그땐 타 종교인과 함께 가서 사찰을 들리자고 못하고 왔는데 마침 오늘 강당사엘 오게되었다

더워도 절을 만났으니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는데 조금  높은 곳에 대웅전이 있고 그 밑에 작은 집이 있어서 들어가보니 외암선생님 문집판각이 있고 곁에 스님들이 기거하시는 작은 집이 있었다.


대웅전



외암문집판각 巍巖文集板刻

지정별 : 문화재자료 제 333호

지정년월일: 1994년 11월 04일

위치 : 충남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 196

시대: 조선시대


조선 영조 때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외암이간(巍巖李柬,  1677~ 1727) 선생의 문집

(외암유고巍巖遺稿)를 새겨 놓은 목각판으로,  외암선생이 건립한 관선재(觀善齋) 내 장판각 안에 307매가 보관되어있다.

외암이간선생은 송악면 외암리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성리학의 양대 학맥의 하나인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중심인물로 독창적인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창하여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하였던 남당(南塘) 한원진선생(韓元震,   1682 ~ 1727)과 대립함으로써 호락논쟁의 단초를 연 낙론의 대표적 인물이다.   판각이 보관되어 있는 관선재는  외암이간선생이 1707년  윤혼(1676 ~ 1725) 과 함께 유학을  강론하며 후학을 양성하고자 건립하였고  스승인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  1641~ 1721) 선생이 편액을 내려주어 불려지게 되었다.

외암문집판각내 새겨져 있는 외암유고는 이간선생의 성리학설이 대부분을 차지하나 '시 詩' 와 ' 상소문(疎)' 과  ' 서문간 (書)' 등도 많이 남아 있어,  이를 통해 선생의 철학, 문학, 생명. 환경 부분에 관한 그의 사상과 의식에 대해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지성계의  동향과 학술적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실려 있어 조선 후기 지성사를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 곳에는 이 판각을 설명한 글 외에 절에 관한 설명은 없어서 아쉬웠다



외암마을 안쪽에 있는 강당계곡에서

 




2016년 8월 5일

이 더운날에 어디로 가야 시원할까?

친구가 독산성이라는 곳을 소개해준다


오산독산성과 세마대지

독성산성(禿城山城)이라고도 하는 이 산성은, 평지에서 돌출하여 사방을 두로 살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남한산성과 용인의 석성산성 등과 함께 도성 방어를 위한 삼각체계를 형성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 성은 백제가 처음 쌓고,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조 27년 9월 11일 부터 14일까지 불과 4일만에 백성들이 합심하여 성벽을 새로 쌓았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세마대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선조25년(1592) 12월에 전라도 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權慄)이 근왕병(勤王兵) 1만을 모집하여 북상하다가  이 성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왜군 수만명이 이곳을  지나가다 이 벌거숭이 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 한 지계를 산위로 올려보내 조롱하였다.    그러자 권율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백마(白馬)를 산 위로 끌고가 흰쌀을 말엥 끼얹으며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본 왜군은 산꼭대기에서 말 씻길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오판하고 퇴각 하였다고 한다.   이 때 말을 씻었던 높은 대를 세마대(洗馬臺)라 한다.

전철 세마역에서부터 걸으면 오래 걸린다고 하여 차로 주차장까지 갔다

서울 근교 오산에 이런곳이 있다니?  입구부터 양쪽으로 숲길이 이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다


세마대에 오르기전에 보적사라는 절이 있다

절입구에서 보이는 오산 시내  멀리 아련히 보인다

보적사(경기도 전통사찰 제 34호 )

이 사찰은 삼국시대에 독산성을 축성한 후 성내인 현재의 터에 전승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된 이래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중건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내에는 조선 22대 정조가 용주사를 건립할 당시 재건되었던 것으로 전하던 주 건물인 약사전과 요사 3동이 있었으나 , 약사전은 약사여래상을 안치하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굴도리집형에 단청이 섬세한 겹처마 팔작지붕

양식이던 것을 1987년 사적의 경관에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정면 3칸, 측면 2칸의 방풍판을 설치한 맞배지붕 약식으로 증개축하였다.















절옆으로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바람까지 잘 불어주는 언덕 너무 좋은곳


절뒤로 조금 올라가면 세마대가 있는데 지금은 공사중


세마대 옆에 소나무숲

공사중인 세마대 밑으로 과녁판


세마데에서 조금 걸어 옆으로 내려가면  이곳에서 멀리 용주사가 보인다는데 나는 못찾았다.  너무 더워 찾기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