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중국 용문석굴과 관림

백합사랑 2006. 4. 24. 20:15

龍門石窟은 하남성 락양시에서 남으로 13km 떨어진 이수입구에는 칼로 자른듯 깍아지른듯한 향산이 있다. 이 두 산은 이수를 마주하고 서로 바라보고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룡문과 같은 모양이다. 

석굴이 있는 伊闕山은 伊河를 사이에 두고 西山과 東山으로 갈라지며, 석회암의 암벽에 다수의 크고 작은 동굴을 뚫어놓았는데, 동굴 안에는 저마다 엄청난 수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그 수는 동굴 1,352, 감(龕:불상을 모시는 장)  750,  석탑 39,  불상 9만 7306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석굴은 北魏 때 만들기 시작하여  수 . 당으로 이어지고  송나라에서 끝났으나, 그 주요 부분은 5c 말에서 7c 후반에 이르는 불교미술의 전성기에 조영되었다.   북위굴이 있는 서산의 석굴군은 고양동을 비롯하여, 빈양동 . 연화동 등이 유명하며, 우수한 북위 불상이 많다.  또 서산의 중앙에 있는 봉선사등의 대로사나불은 높이 13m의 거대한 석불로서, 협시인 보살상 . 나한상. 신왕상. 인왕상 등과 함께 당나라 조각의 최고봉을 이룬 수작으로서, 그 조상기술의 뛰어남과 높은 품격은 특기할 만하다.

당나라의 고종과 측천무후가 만들기 시작하여 675년에 준공되었다.  동산의 간경사동 등은 모두 당대에 조영한 것이다.   동산의 북쪽에는 백낙천의 묘가 있다.  용문의 북위불은 윈강의 불상에 비해 조상기법이 매우 섬세하고, 작품에도 날카로움을 안에 숨긴  우려전아한 멋을 풍긴다 .  불상이 가지는 유암한 표정, 당당한 체구,  정돈된 착의와 상현좌,  힘차게 흐르는 구름을 타고 나선 신선과도 같은 천인 등 모두 남조 불상 작풍의 영향을 받았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중국 3대석굴 중 하나로  돈황의 막고굴과 대동의 운강석굴 그리고 이곳, 내 등뒤에 당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높이 17m의 노사나불 좌상이며,석굴을 조성하다가 재정이 부족하여 몇 년 동안 중지 되어있는 것을 당나라 측천무후의 시주로 석굴을 마무리 할수 있어서 불상의 얼굴을 측천무후 얼굴과 같게 조성 했다 함 . 이 동굴들은 강가의 길에서 산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 만들어져 있음  

 낙양은 서안, 개봉과 함께 중국의 3대 고도의 하나이다. 기원전 1108년에 주공이 여기에다 도읍을 정한 이후 동주, 동한 , 조위, 서진, 북위, 수, 당, 후량, 후당, 등 9개 왕조가 도웁을 정했다. 후한에서  당나라 때까지의 정치 중심지가 서안이었다면 이곳은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그 유명한 삼국지도 후한 말기의 낙양을 무대로 하고 있다. 측천무후는 서안보다 낙양을 더 중요하게 여겼을 뿐만 아니라 이백, 두보, 백거이 등 유명한 문인들의 왕성한 활동을 하던곳이다

 

용문석굴(龍門石窟)

용문산 향산에 크고 작은 1,352개의 석굴이 있다. 안에는 약 10만개의 불상이 있고 , 용문 석굴은 한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494년 북위의 도읍이 대동에서 낙양으로 천도되었을 때 운강석굴의 뒤를 이어 이 석굴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후 당대에 이르는 400년간에 걸쳐 있지만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 이외에는 서산의 석굴 만 보아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주요한 것에는 각각 이름이 붙어져 있고,  우선 입구 바로 옆 장계사동과 그 옆의 빈양삼동 건설에 80만명이나 동원되었으며 용문석굴 중에 가장 볼 만한 곳 중의 하나이다. 만불동에는 1만 5천개의 불상이 있다. 불상이라고는 하지만 양쪽 벽에 꽉차게 조각되어 크기가 몇 센티밖에 되지 않는 작은 불상, 중앙 위쪽에 봉선사동은 용문 석국을 소개하는 사진에 꼭 찍히는 것이다.

 

중국 3대석굴중의 하나로 용문석굴 보살상과 신장상 많은 파손중에 온전히 남아있는 상들임

 

용문석굴의 보살과 아란존자상

 

용문석굴

 

 

 관운장상
 

 

  관운장상 - 중국에선 관운장을 의왕이라하고 그를 모신곳을 關林堂이라하며  원래는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가 관우를 모신 곳이였으나 관우가 중국인들에게 武聖으로 여겨지는 등 세간에서 신적, 종교적으로 숭배를 받게 되자 오늘날과 같게 되었다.

관우상은 물론 역대 墓志碑도 전시실에 있다 또 벽면에는 삼국지에 나오는 명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창은 관운장이 전쟁할 때에 사용했었다는 청룡언월도로 관림당 본청 앞에 있음 너무 무거워서 꿈적도 않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