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는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시 창건되었으며, 현존하는 유일의 백제 사찰이다. 이어 고려시대와 조선초기를 지나 16세기 전반에 편찬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9 덕산현 불우조에 '덕숭산 내에는 취적루와 불운루 2개의 누각이 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수덕사는 대웅전 이외에 2개의 누각이 있을 만큼 대가람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주문을 지나 한참을 올라와야 있는 금강문
금강문 현판
금강문 안에 있는 금강역사 양쪽으로 한분씩 있음
금강문을 지나면 다시 사천왕문
사천왕상
황하정루(성보박물관)을 지나면 높다란 계단위에 많은 전각들과 금강보탑이 있읍니다.
계단에 올라 내려다보이는 황하정루(성보박물관)
날을 잘못 선택했는지 오늘은 박물관 쉬는날이었습니다.
높은 계단을 올라가면 많은 전각과 연륜이 보이는 나무들이 아름답게 서있습니다
국보 49호 대웅전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세워졌으며 연대가 확실하고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며, 대웅전은 현존하는 건물 중 백제적 곡선을 보여주는 유일한 목조건축물이라함.
국보 49호 대웅전 옆면
대웅전 삼세불 보물 제 1381호
수덕사 대웅전 내에는 1938년 만공스님이 남원 귀정사에서 이운해 온 삼존불(석가. 아미타 . 약사)이 봉안되어 있다
*수덕사에는 내가 보지 못한 노사나불 괘불도 모시고 있다는데 보물 126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종 14년(1678) 4월에 조성된 것으로 크기는 7.27mx10.59m이다.
3층석탑
유형문화재 제 103호 고려시대
수덕사 금강보탑---연등 속에 쌓여 있는 탑 꼭대기에 금 장식이 되어 있는 탑
聖域化 重創佛事 도중 전탑좌대가 현 위치에서 발견 되어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탑을 세우고 금강보탑이라고 칭하였다. 金剛이란 不壞信의 佛 . 法 . 僧 삼보와 戒體의 상징으로 이름하게 되었으니 신앙의 대상이다. 이 탑 내부에는 1988년 덕숭총림 방장 원담대선사께서 스리랑카국을 예방했을 때 스리랑카 종정스님으로 부터 한 . 스간의 友誼를 견고히 하는 뜻으로 부처님 진신사리 3과를 증정하므로 십수년간 친견법회를 거쳐 본 탑에 봉안하게 되었으며, 불상 1,000불과 탑 모형을 銅으로 주조하여 999탑을 소장하기에 이르렀으니 천불천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탑은 국태민안과 세계평화는 물론 淸風衲子 速成正覺 하여 廣度衆生하고 薄福者 福德具足하여 고통받는 이 모두는 이고득락(離苦得樂)할 것을 발원하면서 2,000년 7월 세우도다.
- 옮긴글입니다 -
관음전에 모셔진 관세음보살
명부전에 모셔진 지장보살과 목조 탱화들 -이곳은 다른 사찰 명부전과 달리 10대왕님들도 목조 양각 탱화로 되어있었습니다.
대웅전 서쪽 백년당 뒤편에 있는 이 바위는 관세음보살이 현신하신 성역으로 이 곳에서 기도를 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관음바위 전설이 담겨진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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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거쳐하시는 곳 같은데 참 이뻤습니다.
수덕사 뒷편 정혜사 오르는 길
정혜사를 오르는 길인지? 비스듬한 산길을 아무리 올라도 이정표는 없고 ~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수덕사 전경이 보입니다.
너무 힘들다고 동생이랑 조금만 더가도 없으면 그냥 돌아서자고 하면서 헉헉하고 올랐더니 香雲堂이라는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입구에는 '일반인 출입금지' 화살표는 옆길로 가면 정혜사가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근데 옆길이 모호하다.
힘이 들어서 이 계단에서 좀 쉬고서 찾아보자고 무작정 앉아 있었다.
스님들이 분주하시게 오가신다. " 나가세요!" 하는 말이라도 들을까봐 우린 조용히 앉아있었다.
힘들게 올라왔는데 만공탑이라도 보고가자고 동생과 말을하고 어떤 처사분이 보이기에 만공탑을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계단 끝을 지나 문을 열고 나가면 있다고 알려주신다.
스님에겐 아니지만 허락을 받았으니
계단끝까지 올라 옆건물 사진 한 장 찍고
며칠간 이어진 비가 이날 오전에야 그친 탓인지 아직 시야가 흐리지만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멋지다.
힘들게 올라 땀이 맺혔는데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작은 쪽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현판도 없는 전각이 있다. 반허락은 받고 올라온 길이지만 혹시라도 " 누구시오?" 하며 혼이라도 날까봐 숨소리도 죽이고 살금살금~ 아무도 안계신것 같다 참으로 조용하다.
이곳은 특별한 구역 같다.
우린 이문을 열고 나왔다. 용수철이 달린 빗장이기에 나와서도 잠글 수 있을까? 해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잠그지 못하고 ㅎㅎㅎ
드디어 만공탑이 보인다.
만공스님은 (1887~1945) 경허스님의 제자로 스승의 선지를 충실히 계승하여 선풍을 진작시킨 위대한 선지식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선학원의 설립과 선승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선우공제회운동에 참여하였다. 덕숭문중의 법맥을 형성하여 많은 후학을 배출한 그의 문하에는 비구 보월 . 용음. 고봉. 금봉. 서경 . 혜암 . 전강. 금오. 춘성. 벽초. 원담스님 등과 비구니 법희. 만성. 일엽스님 등 당대에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다.
만공탑에 새겨진 만공스님 휘호
만공스님 탑에서부터 내려오는 길은 계속되는 계단으로 1080계단
약간 힘은 들지만 계곡의 물소리 새로리 바람소리 그리고 나무들이 주는 향기가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관음보살입상 석불과 향운각이 보입니다.
만공스님이 세운 이 관음상은 높이가 25척이나 되는 자연암벽을 깍아 조성한 거대한 석불
이 곳 관음석불은 1924년 갑자년에 만공스님께서 조성봉안 하셨다고 알림판에 써있습니다.
향운각으로 관음보살 입상 옆에 있습니다. 기도 스님 거처인듯 합니다
관음입상을 참배하고 내려오는 길목에 소림초당이 있습니다.
한없이 이어지는 1080계단
四面 석불
이 사면 석불은 1983년에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서 발견된 백제시대 유일의 사면불을 그대로 재현하여 四方에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미륵존불을 조성한 불상으로 박태화거사의 정성으로 2008년 납월에 봉안하게 되었다. 라고 쓰여져 있음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일번버스를 몇 번씩 기다리고 갈아타며 왔기 때문에 너무 늦으면 집에 돌아가기 힘들 것 같네요.
수덕사 일주문을 나오면 오른쪽 길목에 이응노 화백 기념관이 있습니다
고암 이응노 화백(1904~ 1989)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20은 이응노 선생이 한때 작품활동을 하였던 곳으로 그 역사성을 기념하여 표지석을 세워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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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화백의 기념관 마당에는 이화백의 바위에 암각된 작품이 있습니다.
고암 이응노화백이 쓰시던 방이랍니다.
집 전경입니다.
이응노 화백 기념관
수덕사 禪 미술관
수덕사의 고승
경허스님(1849~1912)
경허 성우 선사는 조선말기 침체된 불교계에 새로운 중흥조로 출현하여 무애자재로운 생활속에서 전등의 법맥을 이으며, 선불교를 진작시킨 선의 혁명가이자 대승의 실천자였다. 선풍을 진작시킨 스님의 문하에는 근대 한국불교 선문을 빛낸 만공 . 혜월 . 수월스님 등이 있다.
만공스님(1887~1945)
만공 월면 경허스님의 제자로 스승의 선지를 충실히 계승하여 선풍을 진작시킨 위대한 선지식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선학원의 설립과 선승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선우공제회운동에 참여하였다.
덕숭문중의 법맥을 형성하여 많은 후학을 배출한 그의 문하에는 비구 보월 용음 고봉 금봉 서경 혜암 전강 금오 춘성 벽초 원담스님 등과 비구니 법희 만성 일엽스님 등 당대에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다.
벽초스님(1899~1986)
벽초 경선 만공스님의 법맥을 이어 1940년부터 30여 년간 수덕사 주지를 지냈으며, 1985년에 덕숭총림 2대 방장으로 추대되었다.
잠시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제자들에게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모두 공부라 하였다. 이는 오늘날 선농일여사상(禪農一如思想)으로 세간의 큰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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