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안성 청용사와 작은 민속촌

백합사랑 2010. 10. 27. 11:25

 

 이번주는 또 어디로 갈까?  병원에 계신 어머님 모시고 나와 안성에 있는 청룡사라는 절로 가기로 정하고 먼저 맛난 음식점을 찾기로 했는데  가는 길목에 아주 멋진 곳이 보입니다.

작은 민속촌이라는 이름과 함께 보리밥 이라는  메뉴가 보입니다.   우리는 모두 환호하며 그집에 들어갔습니다.

 

 

 

 

 아기자기 곳곳이 정겹습니다.

 

 

 

 한쪽에 토끼도 있네요

 

 

 

 

 

 

 

 

 

우린 메뉴를 보고 각자 다른것으로 시키려했는데,  보리밥 정식은 2인분만 된다해서 할머니와 손녀딸이 드시기로 했습니다..

 

 

 

 정식에 나오는 것으로   밥이 도시락에  나와서 모두 색다른 기분이라고 좋아합니다.

 

 

 

 보리밥정식에 나오는 메뉴인데 기름지지도 않고 아주 맛있었습니다.

 

된장도 아주 맛있습니다

 

 

 

 제가 시킨 순부부백반 입니다

 

 

 

 

 동생이 시킨 묵밥입니다.

 

 

 

 

 

 우물에 먹을 수 있는 물이 있고 입구엔 청사초롱과 수세미가 주렁주렁 열려 있습니다

 

 

 

 

우리 아기 신난다고 춤을 춥니다

 

 

 

 

 모가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화장실이 재미있습니다.

 

 

 

 입구엔 물레방아가 정겹습니다.

 

 

 

 

 이제 목적지 절로 향합니다. 가는 길목이 아름답습니다.

 

 

 

 

 절 입구엔  청용사 사적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24호

 

청룡사의 건립 연대, 변천과정, 기타 사찰에 관한 사항 등을 알려주는 사적비이다.

비문은 승려 안정나준이 지었고 글씨는 직산 현감을 지낸 황하민이 썼으며, 사헌부 지평 김진상이 전액을 썼다.

비문에 의하면 고려 말 승려 나옹이 이 절을 중창할 때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용을 보아서 서운산 청용사라 했다고 한다.  그 뒤 조선 세조가 수원지역의 논을 하사하고 서울 신흥사와 진관사에 기물을 보냈으며, 인평대군이 이곳을 왕실의 명복을 비는 원당으로  삼아 새 영정을 모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숙종 때 승려 사간이  영전을 비롯하여 대웅전, 관음전, 문수전 등의 전각을 다시 지었다.   뒷면에는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모양을 보면 비몸 위의 개석은 이수 형태로 정면에는 용머리를 한 용두가 있고, 사방의 모서리에는 여의주를 문 용머리가 새겨져 있다.  비는 큰 돌 하나로 조성되었는데  용의  비늘 모양을 한 용린을  조각하였고 용두에도  눈과 코가 조각되어 있다.

 

 

 

 청용사 입구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 명본국사가 대장암으로 창건, 그후 공민왕 13년(1364) 나옹선사가 지정연간(1341~ 1367)에 이 산을 지나면서 지혜의  해가 거듭 빛나고 자비의 구름이 광채를 냄에  이 곳에  신비한 징조가 있겠다고 생각하시고 하루를 묶게 되었는데, 과연 꽃비가 내리고 상서로운 구름이 일면서 용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이 곳에 주석을 하시면서 절을 크게 중창하여 산 이름을 서운산이라 하고 절 이름을 청용사라 명명하였다.

절 안에는  대웅전, 관음전, 관음청향각 , 명부전 등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명본국사가 세웠다는 삼층석탑이 있다.  대웅전은 다포계의 팔작집으로  고려말 공민왕 때에 지어져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것으로, 조선 후기의 기법과 양식을 잘 보존하여 보물 제 824호 로 지정되었다.  청용사에서 유명한 것은  자연미를 살린 기둥이다..구불구불한 아름드리나무를 껍질만 벗긴채 본래의 나뭇결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세웠다. 사람이 만드는 건축물에 최대한 자연미를 살린 우리나라 건축의 한 특징을 보여준다.

청용사는 공양왕의 초상화를 봉안하다가 세종 19년(1437) 세종의 명에 의하여 고양으로 옮겼고, 후에는 인평대군의 초상화를  모시고 왕실의 태평을 비는 원찰로 삼았었다.

이 곳은 조선 후기에  등장한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이들은 인근 불당골에서 겨울을 지낸 뒤 봄부터 가을까지 청용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기예를 뽐내며 안성장터를 비롯해 경기, 충청도 등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연희를 팔며 생활했다.

 

 

 

 

 절 앞 마당

 

 

 청용사 대웅전 보물  제 824호

대웅전이 다시 지어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선조 34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17세기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후 몇 차례 고쳐지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규모로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에 초석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운 다포계팔작집이다. 지붕가구는  7량을로 구성되었고, 내부 천장은 일반적인 불전과 달리 연등천장으로  구성하였다.

내부에는 중앙에 불단을 만들어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그 위에 부처를 보호. 장엄하기 위해 닫집을 달아 장엄하다.

 

 

 

 

 대웅전 부처님과 멀리 보이는 동종

청룡사 동종은 보물 제 11- 4호

 이 종은 검은 빛이 감도는 큰 종으로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 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종의 모양을 보면 소리를 좌우하는 음통이 맨위에 있고 그 옆에는 용 모양의 종을 거는 고리 용뉴가 있다. 그 아래의  배가 불룩한 포탄 모양의 종신이 있다.

종신의 표면을 보면 윗쪽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과  "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을  1줄씩 새기고 그  아래 사다리꼴로 된 4개의 유곽乳廓을 만들고 그 사이에는 연꽃 가지를  든 4구의 보살입상과  4개의 위패가 한 쌍으로 배치하였다. 이 같은 구성법은  17세기 전반기에 전통 승장계僧匠系 장인들이 주로 썼던 방식이다.

 

 

 

 

 

 대웅전 안에 벽화

 

 

 

 

 대웅전 기둥의 모습이  특이 합니다.

 청용사에서 유명한 것은  자연미를 살린 기둥으로 구불구불한 아름드리나무를 껍질만 벗긴채 본래의 나뭇결 그대로 살려 기둥을 세운것

 

 

 산신각

 

 

 

 명부전

 명부전 안에 모셔진 지장보살상과 시왕님들

 

 

 청룡사 삼층석탑: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 59호

이 탑은 높이가 2.38m로 평면 4각형의 단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렸다. 이 탑은 부분적으로 파손된 지대석 위에 3단의 받침이 기단을 받치고 있다.

기단은 4장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각 면에 모서리 기둥(우주)과 버팀 기둥(탱주)이 새겨져 있다.  탑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다른 돌로 만들어졌으며 탑몸돌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이 조각 되어있다.  1층 탑신에 비해 2층과 3층 탑신의 높이가 급격하게 낮아져 비례가  흐트러져 보인다.  지붕돌은 경사가 급하다가 전각에 이르러 살짝 반전되었으며 합각선이 뚜렸하다.  상륜부는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석탑에도 훼손이 있다.

-옮긴글-

 

 

 

고목

 

 

 

 

 범종각

 

 

청룡사입구 오른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부도군이 있습니다

이 부도군은 청룡사 입구에 있는 사적비(事跡碑)에서 하천 건너편 산기슭에 위치해있다.   석축의 대지(臺地) 위에 11기(基)의 석조(石造) 부도와 1기의 비(碑)를  안치하였는데, 대지의 한단 높인 곳에 6기를 , 중간에 청룡사 취암당대사비(翠巖堂大師碑)와 낮은 곳에 5기를 각각 조성하였다.  11기의 부도중  1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석종형(石鐘形)으로 方形과  八각 또는  원형(圓形)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1석으로 조성한 탑신(塔身)을 안치했는데 ,  8각의 지대석에는  측면과 상면 조식(彫飾)이 있는 것도 있다.

탑신부(搭身部)에도 하단에 조식이   있는 부도가 있고. 정면은 거의  보주형(寶柱形)을  이루고 있다.   또한 보주형 상륜부(相輪部)에는  보륜(寶輪)을 동일석에 조각하거나 주변에 앙련(仰蓮)을 조식하는 등 화사(華奢)한 것도 있다.  한편 석종형이 아닌 1개의  부도는  8각 원당형을 기본적으로  따르고 있다.  지대석 위에  상. 중 . 하대를  구성하고 원주형의  탑신을 놓았으며, 옥개석 위에  화려한  상륜부까지 장식했다.    상단 좌측  세 번째 부도에는  [설봉당대사관성雪莑堂大師寬性]    하단좌측  네 번째 부도에는  [묘련당대사상민妙蓮堂大師尙敏]이라 음각(陰刻)하여  기명(記名) 되어 있다.   대체로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에서 나와 길목에 흙장난 하는 어린이를 보고 우리 아기  따라하며 재미를 붙혀서 집에도 안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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